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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경 신중섭 기자]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 사업으로 을지면옥, 양미옥 등 역사 깊은 노포(老鋪)들이 철거 위기에 놓이고 공구상 거리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지역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박 시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시장은 “(공구상가와 노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며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에는 동대문 의류상가, 종로 쥬얼리, 중구 인쇄업, 공구상가, 조명상가 등 집중도심산업 근거지들이 있는데 이걸 없애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도심산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만간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이어 “과거의 문화, 예술, 전통, 역사 등을 도외시했던 개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역사적인 부분, 전통적으로 살려야 할 부분은 잘 고려해서 개발계획 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부터 추진된 세운재정비촉진사업에 따라 청계천 을지로 일대 재개발이 올 초부터 본격화하면이 지역 공구상가들은 철거를 시작했다.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이 속한 지역도 사업시행 인가를 받거나 신청한 상태여서 공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철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철거 이후에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박 시장 취임후 서울시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지양하고 도시 재생을 추진해왔다. 2015년 세운상가 재생사업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근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상가가 재개발 명분으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재생이 아닌 재개발로 시민들을 기만한다”며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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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상인, 예술가들은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에 반대하며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를 조직했다. 연대는 지난 8일 서울 청계천 관수교 사거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세운상가를 제외한 청계천-을지로 주변에 전면 재개발 사업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인허가해 현재 일부가 전면 철거됐고 또 한 곳에서는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5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있는 곳이고 서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시장과 제조업체들이 있는 거리에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을 허가하는 것은 반(反)역사적이자 비경제적, 반문화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연대는 또 “서울시는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재개발을 당장 중단하고 제대로 된 도시재생을 위해 이 일대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대 외에도 을지로 상인과 지주들은 지역 내에서 크고 작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을지면옥 등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 땅 주인 14명은 2017년 7월 중구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인가 무효 확인소송도 제기한 상황이다.
박 시장의 전면 재검토 지시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25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두루통상 강문원(60)대표는 “문서화 하기 전까지 서울시 계획을 믿을 수 없다”며 “다시세운이라고 해서 도시재생한다고 해놓고 주변은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겠다며 날개를 꺾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박 시장이 진정성 있는 정책을 발표하고, 청계천 상인들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오는 17일 중구청 앞에서 다시 서울시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상인들과 청계천에서 만나 시청까지 행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