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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침일 부당약관 고쳤지만…누진제 칼 못 댄 공정위(종합)

"한전 일방적 검침일 지정 부당"
원격검침 바로 변경 신청 가능
일반검침 한전과 협의해 변경
부득이하면 자율 검침도 가능
  • 등록 2018-08-06 오후 5:01:56

    수정 2018-08-07 오전 6:59:22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고객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검침일을 정한 한국전력(015760)에 칼을 들이댔다. 부당한 약관으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전기료 폭탄’ 빌미를 줬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공정위는 약관에 규정된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문제는 개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화나 용역의 가격 문제는 약관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게 공정위 입장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인가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적극적인 해석은 피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침일 소비자가 선택..전기료 폭탄 부담 낮춰

공정위는 한전이 고객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검침일을 정하는 불공정 약관조항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24일부터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소비자가 희망하는 날짜로 1년에 한번 검침일을 변경하도록 약관을 변경했다.

현재 한전의 전기 검침일은 매월 △1~5일 △8~12일 △15~17일 등으로 총 7차례로 분리돼 있다. 검침일 기준으로 한달간 전기료를 합산해 최대 3단계(가격은 3배) 누진제를 적용하는 구조다.

문제는 한전은 기본공급약관(69조)에 검침일을 소비자의 선택을 배제한 채 한전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된 검침원을 활용하다보니 검침일을 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간 한전측의 입장이다. 이런 구조속에서는 검침일인 15일 전후인 고객의 경우 7~8월 전기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 여름 온도가 7월15일부터 올라가는 데 15일이 검침일일 경우 한달간 전기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7월1일~15일까지 전기료를 100kWh를 쓰고, 15일부터 30일까지는 300kWh, 8월1일부터 15일까지 300kWh를 쓴 가구를 가정하자. 7월1일이 검침일일 경우 한달간 전기사용량 400kWh에 대해 6만760원의 전기료가 부과된다. 반면 7월15일이 검침일 경우에는 600kWh에 대해 13만6040원의 전기료를 내야 한다.

검침일에 따른 요금(주택용저압) 차이
공정위는 부당한 약관이라고 판단해, 한전이 고객이 희망하는 검침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실시간 전기소비량 측정이 가능한 전자식 스마트계량기(AMI, 원격검침)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경우 고객의 요청에 따라 바로 검침일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이 AMI를 사용할 경우 실시간 전기사용량 측정이 가능한 만큼 검침일을 ‘카드 결제일’ 변경처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MI가 없는 고객은 현실적으로 검침일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AMI 설치 가구는 현재 전국 2400만호 중 537만호에 불과하다. 대다수 가구는 현실적으로 한전이 지정한 검침일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은 지난 2016년 9월 ‘희망 검침일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기준 47만4000호만 신청한 상태다. 한전이 예산·인력 문제 등으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공정위는 AMI가 없을 경우 한전과 협의해 검침일을 변경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우선적으로 거주지 인근 검침순로를 감안해 조정하되, 불가능할 경우 고객이 스스로 ‘자율검침’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뒀다. 자율검침은 고객이 ‘두꺼비집(전력량 측정기)’를 열어서 전력량을 체크하고 한전에 전력량을 통보하는 방식이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도서지역 등에서는 자율검침제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최대한 빨리 자율검침제 확대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가격에 직접 개입 못해..누진제 문제 판단 못해”

하지만 공정위는 한전 약관에 규정된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의 불공정 문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재화나 용역 가격 문제는 약관 심사 대상이 아니고, 누진제는 정부정책과 관련돼 있어 인가권을 갖고 있는 산업부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게 공정위의 기본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전기요금 부담방식을 모르거나 부당하게 전기요금 부과방식을 제약받는 경우에는 공정위가 개입할 수 있지만, 가격 문제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누진제 약관 문제는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관련 민사 단체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판단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총 13건의 소송이 제기됐고, 결과가 나온 7건중 1건(인천지법)은 누진제 약관이 부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천지법은 “일반·교육·산업용 전력과 달리 상이한 요금체계(누진제)를 적용하는 데 합리적이유가 없다면 사용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소비자가 (독점사업자인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전이 누진제 방식을 알렸다는 것만으로 약관의 부당성이 해소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현재 이건은 한전이 항소심을 제기해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누진제 소송을 진행 중인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는 “공정위가 검침일 약관에 손을 댔다는 것은 전기판매 독점사업자인 한전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소비자 선택권을 배제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동일 잣대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누진제를 적용받는 것은 부당하기때문에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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