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소리꾼' 이봉근 "무덤가에서 귀곡성 연습"

판소리 명창이 공개한 '성장기'
  • 등록 2020-07-16 오후 7:59:41

    수정 2020-07-16 오후 7:59:41

[이데일리 김은구 기자] “처음에는 판소리가 재미 없었어요. 그런데 뭔가 하나씩 터득할 때마다 성취감이 남다르더라고요.”

이봉근(사진=레벨나인)
‘명창’ 이봉근은 자신이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든 과정을 이 같이 설명했다. 이봉근은 최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이데일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 판소리를 시작했다”며 “늦게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만 더 어려서 시작한 친구들보다 오히려 좋은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소리꾼’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한 이봉근은 ‘적벽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다. ‘명창’으로 불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자녀의 영재교육 등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 국악을 하는 후학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봉근에게 판소리 입문기부터 소리꾼으로 성장한 과정, 방황기 등에 대해 들었다.

“그 때 아버지 취미가 판소리였어요. 저한테도 전통적인 걸 배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서예를 하기를 원했다. 서예가였고 국전 심사위원인 자신의 길을 따랐으면 했다. 하지만 이봉근은 왼손잡이로 서예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자신이 취미로 배우고 있던 판소리를 아들에게도 권했다.

어린 시절 이봉근(사진=이봉근 제공)
처음부터 판소리에 매료된 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고 음을 빨리 기억하는 재능상의 장점도 있었다. 완창을 하려면 8시간이 걸릴 정도로 긴 판소리의 사설(가사)과 음을 남들보다 빨리 외웠다.

그 재능을 알아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음악 교사였는데 이봉근이 판소리를 할 수 있도록 어머니를 설득했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당시만 해도 이봉근이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공부를 하기를 바랐다.

서예를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문을 배웠던 것도 판소리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한 친구들보다 사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습득도 빨랐다. 이봉근은 “아버지가 완벽주의자셔서 어려서 고생을 좀 했는데 그 덕을 봤다”며 웃었다.

어린 시절 이봉근(사진=이봉근 제공)
판소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수련과정은 ‘산공부’였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 스승님을 모시고 제자들 여러명이 산에 들어가 2~4주간 합숙을 했다. 일종의 전지훈련이었다. 놀고 싶은 것도 못놀고 먹고 싶은 것도 못먹으며 연습만 했다. 겨울에는 눈을 맞아가며, 여름철 비 오는 날은 비를 맞아가며 소리를 했다. 폭포수 앞에서도 하고 토굴을 파고 들어가서도 했다. 하루 8시간,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를 했다. 힘들었지만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판소리에 푹 빠져있을 때였고 친구들과 경쟁심 등으로 재미가 컸다.

묘지 앞에서 연습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아버지가 책에서 동편제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이 ‘춘양가’의 귀곡성을 무덤가에서 익혔다는 내용을 보고 아들에게 같은 훈련을 시킨 것이다. 이봉근은 “송흥록 선생님이 무덤가에서 귀곡성을 연습하던 중 할머니 한분을 만났는데 그 할머니가 ‘이렇게 하는 것이냐’며 귀곡성을 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연습을 하다 잠이 들어 꾼 꿈이라고 했다”며 “그걸 계기로 송흥록 선생님이 귀곡성을 익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이봉근(사진=이봉근 제공)
국악을 전공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서 현실에 맞닥뜨렸다. 어려서는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성인이 되면서 ‘판소리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는 음악의 범주를 넓혔다. 대중음악 보컬 레슨을 받았다. 동서양의 다양한 음악과 국악의 크로스오버라는 이봉근 특유의 스타일이 이 때부터 시작됐다.

한예종에서 서정주 시인의 시 ‘연꽃 만나는 바람같이’에 국악과 대중음악의 컬래버레이션을 콘셉트로 ‘이별에게’라는 곡을 써서 제출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당시 한예종의 ‘듣고 싶은 우리 음악’이라는 기록물 CD에 수록됐다.

이봉근(사진=이봉근 제공)
대학을 졸업하고는 잠시 방황을 했다. 자신의 생계를 자신이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니 판소리를 직업으로 삼는 게 힘들었다. 주위 많은 친구들이 작파(소리를 그만 두는 것)를 했다. 이봉근은 부모님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전통 혼례식장에서 판소리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1년간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그 1년간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컴퓨터는 재능이 너무 없더라고요. 포기를 했죠. ‘내가 잘하는 건 음악이다’ 싶어 마음을 다잡았아요. 그러고 나서 공연 제의를 받았는데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작은 무대였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1년 방황이 끝나는 순간이었죠.”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그림 같은 티샷
  • 홈런 신기록
  • 꼼짝 마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