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관노 잠자리설' 일제 해석이 발단"

이명수 통합당 의원 "이순신 관노 동침설 허위" 주장
"일제가 최초 난중일기 해석하며 왜곡"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 물타기 위해 이순신 악용 안돼
  • 등록 2020-07-14 오후 10:43:30

    수정 2020-07-14 오후 10:43:30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35년에 일본이 최초 난중일기를 ‘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로 해석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명수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를 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퍼진 데 대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척하고 있는 모습(사진=이데일리DB)
이순신 장군의 고향으로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가 있는 충남 아산 출신인 이 의원은 14일 성명을 내고 “난중일기를 연구해 온 전문 연구가들로부터 자문해 종합한 결과,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잠을 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난중일기의 ‘여진’, ‘여진입’, ‘여진삽’ 등의 구절을 놓고 1935년 일본에서 최초로 ‘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고 해석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조선의 호남지방에 많이 이주해 살고 있던 여진족과 생활을 의미하거나 글자 그대로 ‘여진·여진입·여진삽’이라는 이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또 “‘저녁에 여산의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문구도 논란이 됐지만, 이는 장군이 백의종군하러 가던 중 여산 관아의 사내종 집에서 하룻밤 유숙한 것으로 여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관노(官奴)는 남자종을, ‘잘 숙(宿)’은 단순히 숙박을 뜻한다는 게 전문 연구가들의 견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물타기 하기 위해 위대한 영웅을 허위사실에 근거해 비교 인물로 등장시킨 것은 국민적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순신 장군을 이념 편향의 도구로 악용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의원의 성명서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충남 아산 출신 이명수 의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국정의 난맥상으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는 국민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6·25전쟁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구한 백선엽 장군의 명복을 빌고, 고인이 되신 박원순 전)서울시장께도 애도를 표합니다.

고인이 되신 박원순 전)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와 관련하여 이순신 장군을 빗댄 왜곡된 글이 SNS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전달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아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명예와 고향 아산시민의 자긍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실관계를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故박원순 전)서울시장의 지지자로 보이는 분이 인터넷에 故박원순 전)서울시장을 옹호하기 위해 “난중일기에서 관노와 수 차례 잠자리에 들었다는 구절 때문에 이순신이 존경받지 말아야 할 인물인가요? 그를 향해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건가요?”라는 문구를 써서 올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글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전달되었고, 수 많은 국민들은 “이순신 장군이 관기와 잠을 잤다”는 내용의 글이 난중일기에 기록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의원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연구해 온 노승석 박사 등 권위있는 전문 연구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종합한 결과,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잠을 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관노와 잠을 잤다는 단초를 제공한 문구는 난중일기 탈초본(초서를 정서로 바꾼 책)중, 1596년 9월 12일 여진(女眞), 9월 14일 ‘여진입’(女眞卄), 9월 15일 ‘여진삽’입니다. 이 구절은 1935년에 일본이 최초 난중일기를 “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로 해석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다수의 권위있는 전문 연구가들의 지적에 의해 당시 조선의 호남지방에 많이 이주해 살고 있던 여진족과의 생활을 의미하는 ‘함께하다(共)’또는 단순히 여진·여진입·여진삽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을 이루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1597년 4월 21일자에 “저녁에 여산의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문구도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이는 이순신 장군이 감옥에서 나온 후 모친상을 당하고 상중출사(喪中出仕)하여 백의종군하러 합천으로 가는 중에 해가 저물어 여산(익산시 여산면 소재) 관아의 남자종집[官奴家]에서 하룻밤 유숙한 것으로, 여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성관계를 했다는 표현은 다음의 역사적 사실과 전문가들의 견해에 비추어 엄연한 허위사실임을 밝힙니다.

첫째, 난중일기 9만 3천여자 속에는 “관노와 잠자리”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어거지를 핀다고 하더라도 관노(官奴)는 남자종을 의미하는 것이고 여자종은 비(婢)입니다.

둘째, 전문 연구가들에 따르면, 실제로 당시에 성관계를 표현하는 한문의 글자는 “가까이 하다, 동침하다는 뜻으로 근(近), 포(抱)가 일반적으로 쓰였고, 이 외에도 동침(同枕), 동호(同好) 등의 표현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중일기에 표현된 ‘잘 숙(宿)’도 성관계를 의미하는 ‘동침’이 아니라 단순히‘숙박’을 의미한다는 게 권위있는 전문 연구가들의 견해입니다.

셋째, 이순신 장군과 동시대의 인물인 백사 이항복은 고통제사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에서“이순신은 일찍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597년은 이순신장군께서 모친상을 당하고 상중출사하여 백의종군을 했던 때여서, 관노와 성관계를 연관짓는 것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난중일기 속의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백성들이 먹고사는 것에만 전념했던 우리 역사속 최고의 영웅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영웅을 故박원순 전)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물타기하기 위해 허위사실에 근거하여 비교 인물로 등장시켰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추앙받는 국가적 인물을 매도하는 것이요, 국민적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순신 장군은 허위사실로 매도될 수 없는 우리 민족 최대의 영웅입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국난극복을 위해 진념했던 애국자이십니다.

더 이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이념 편향의 도구로 악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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