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하기 무서워요”…감염 위기에 내몰린 택배·배달노동자들

배달·택배 늘어나는데 '감염병 예방 대책' 없어
종사자들, 사비로 마스크·손세정제 구입해 사용
노동자단체 "감염 예방 안전 지침 만들어 달라"
  • 등록 2020-02-27 오후 4:53:17

    수정 2020-02-27 오후 4:53:17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집에 세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택배 일을 하다가 감염되면 아들도 옮을까 걱정되네요.”

서울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최모(34)씨는 퇴근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택배 일을 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이들을 만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노출됐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 탓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사람이 늘면서 배송 물량도 평소보다 20%가량 늘어났다. 그런데도 최씨는 회사에서 마스크 몇 장을 지급받았을 뿐 어떠한 안전 조치도 들은 적이 없다.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한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물류를 분류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뉴스1)


배달·택배 수요는 늘어나는데…배달·택배 종사자들은 ‘우려’

최근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언택트(Untact) 소비’가 늘고 있다. 마케팅·여론 조사 전문기관인 나이스디앤알이 모바일 앱 로그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배달 앱 이용량은 지난달 셋째 주 주말과 비교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인 이달 첫째 주 주말에 13%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쇼핑 앱 이용량도 5.1% 늘어났다.

그러나 정작 배달 음식이나 택배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택배·배달 노동자들은 최씨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다. 외부에서 일하는데다가 일상적으로 고객을 만나다 보니 코로나19 감염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서 이들에게 마스크나 손 세정제 등의 감염 예방 물품이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충남 천안시에서 택배 일을 하는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충남지회 김근원 부지회장은 “(택배 종사자들) 대부분 개인 돈으로 마스크나 손 세정제를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면서 “회사에 차량 방역과 마스크·손 세정제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아울러 택배·배달 노동자를 보호하는 지침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산에서 배달 일을 하는 A씨는 “대부분 배달 앱을 사용하는 만큼 선 결제 주문 방식으로만 주문받는 등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데, 아무도 그런 지침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라이더(배달원)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만큼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커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라이더유니온이 함께 하는 택배·배달노동자 캠페인사업단 ‘희망 더하기’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배달노동자의 전염병 안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유튜브 생중계 방식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택배·배달노동자 단체 “안전 지침 만들어달라”

택배·배달노동자 단체들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배달업 관련 종사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기업 등에 촉구했다. 이들은 “택배·배달 노동자들이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며 “제대로 된 정부 지침이 없으니 기업의 적극적 안전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한 물품과 방역 조치 제공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 배달 확대 등을 요구 사항으로 제시했다. 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택배·배달업 종사자들이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자가격리에 들어갔을 때 휴업 수당 지급 등 생계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며 “그래야만 감염 확인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택배·배달노동자 단체들은 해당 업계 종사자들의 감염병 예방이 지역사회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택배·배달노동자들의 전염병 예방 조치는 노동자 개인의 안전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라며 “수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업무 특성상 이들이 매개체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건 공공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러한 요구에 택배·배달 관련 기업들도 각자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배달 앱 ‘배달의민족’ 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코로나19 의심 환자로 격리되는 라이더들에게 생계 보전비와 오토바이 대여료, 산재보험금 등을 더해 1주일에 약 50만원을 지급하는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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