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739건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Who`s Your Daddy?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86년만이다. 양키즈의 벽을 넘은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에서도 벗어났다.
올해 메이저 리그 포스트 시즌에서는 월드 시리즈보다도 라이벌 레드삭스와 양키즈 간의 게임이 야구 팬들을 열광케 했다.
지난 13일 찾아간 뉴욕 브롱스 양키 스타디움(사진)은 무척 지저분했다. 평소 야구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숙적 레드삭스와의 경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온 시리즈(ALCS) 2차전 티켓을 무려 액면가의 3배를 주고 샀다.
스타디움은 관중들로 만원이었다. 곳곳에 경찰이 서 있었지만, 양키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B` 자가 선명한 모자를 쓴 보스턴 팬들을 야유하며, 일방적으로 양키즈를 응원했다.
양키 골수 팬들은 보스턴 응원단에 대해 가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땅콩, 팝콘, 휴지 등이 쏟아지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큰 싸움이 날 정도로 심한 욕을 했다. 레드삭스(Red Sox)를 `Red Suck`이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깜짝 놀랐다. `저렇게 욕을 해도 되나` 레드삭스 팬들은 웃으면서 그냥 넘어갈 뿐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양키 팬들로 포위된 상태에서 대응은 곧 싸움이다. 관중석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는 즉시 경찰들이 달려왔다.
양키즈와 레드삭스 경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했다. 단순한 스포츠 게임이 아닌 것 같았다. 2차전 레드삭스의 선발은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 친구는 지난해 ALCS에서 아버지 뻘 되는 양키즈의 투수코치를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서 양키 팬들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양키 팬들은 마르티네즈가 공을 던질 때마다 "Who`s your daddy!"라고 외쳤다. 메이저 리그에는 별도의 응원단이 없다. 관중들은 대형 전광판에 "야유를 퍼부으세요"라고 사인이 나오면 그에 맞춰서 소리를 질렀다.
2차전은 양키의 승리였다. 적진 보스턴에서 치뤄진 3차전은 19대 8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이후 내리 4판을 져서 양키즈는 `가을의 전설 `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라이벌의 전쟁을 지켜봤다.
`미국인들에게 도대체 야구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또 `무엇이든 돈으로 연결시키는 미국인들이 어째서 프로야구 팀은 주식시장에 상장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야구, 메이저리그의 경제학은 가장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미국적이었다.
◇양키즈 vs 레드삭스
어디에나 라이벌은 있다. 그러나 양키즈와 레드삭스 같은 라이벌은 없다. 1920년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양키즈에 팔아버린 이후 둘은 앙숙이 됐다. 이것이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다.
양키즈는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로 향하는 길목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선수들끼리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에도 두 팀은 ALCS에서 만나,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양키즈가 승리했다. 올해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대0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레드삭스가 3대4로 역전승을 거뒀다.
발목 부상을 입은 레드삭스의 에이스 커트 실링이 피로 붉게 물든 양말을 신고 역투하는 모습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그런데 두 팀의 월드 시리즈 성적은 분명한 것을 보여준다. "부자 팀이 우승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양키즈는 39번 메이저 리그에 나가서 26번 우승한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의 명가다. 반면 레드삭스는 1986년 이후 18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고, 1918년 이후 천신만고 끝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양키즈의 한해 매출은 3억달러, 레드삭스보다 5000만달러가 많다. 올해 양키즈가 선수 연봉으로 쓴 돈은 1억8500만달러에 달한다. 레드삭스가 양키즈 다음으로 돈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도 양키즈에 비하면 6000만달러나 적다.
양키즈는 미국 최고 부자 야구단이다. 돈을 아끼지 않고 좋은 선수들을 끌어오니, 성적이 좋은 것이 당연하다.
◇Who`s your daddy?
마르티네즈가 등판했을 때 관중들이 "Who`s your daddy"라고 야유한 것은 상징적으로 양키즈라는 구단의 위상을 말해준다.
지난 9월 양키즈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마르티네즈는 "양키즈는 넘어설 수 없는 아버지같은 존재"라고 털어놨다. 그 이후 마르티네즈가 나올 때마다 "누가 네 아버지냐"고 야유를 하는 것이다.
마르티네즈의 고백은 사실 미국 야구 선수라며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양키즈가 배출한 걸출한 스타들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선수로 커 왔으니, 잠재의식 속에 양키즈는 모든 야구 선수들의 아버지인 셈이다.
그런데 양키즈는 물질적으로도 모든 야구 선수들의 아버지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펑펑 돈이 솟아 오른다.
현재 양키즈의 구단주 조지 마이클 스테인브레너3세는 1973년 단돈 1000만달러를 주고 CBS로부터 양키즈를 사들였다.
스테인브레너의 별명은 `보스(The Boss)`다. 그의 치세(?)에 양키즈는 9번 아메리칸 리그 챔피온이 됐고, 6번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는 단장과 감독을 멋대로 갈아치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뉴욕이라는 엄청난 야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96년 양키즈가 선수 연봉으로 쓴 돈은 6100만달러였다. 8년만에 연봉은 세배로 불어나 1억8500만달러가 됐다. 이 돈은 메이저 리그 연봉 하위 6개 구단 전체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2002년 양키즈의 연봉이 1억5000만달러를 돌파하면서 다른 구단들은 양키즈와의 `돈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경쟁팀인 레드삭스는 양키즈를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비난했다. 양키즈가 돈의 힘으로 우수 선수를 싹쓸이 한다는 것.
`보스`가 이처럼 다른 구단을 압도하는 이유는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때문에 뉴욕시가 벌어들이는 세수는 85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메이저 리그 8개 구단의 입장료 수입과 맞먹는다. 입장료 외에 각종 프랜차이즈 상품, TV 방송 중계료 등을 감안하면 양키즈는 화수분이나 마찬가지다.
야구의 상징인 양키즈가 훌륭한 선수를 뽑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뉴욕시민, 나아가 전 미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일종의 의무라는 것이 `보스`의 생각이다. 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양키즈는 얼마든지 돈을 써도 좋다. 양키 팬들은 열광하고, 미국도 따라서 열광한다.
양키즈의 이런 철학에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쓴 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거나, 왜 메이저 리그 우승이 이렇게 뜸하냐는 것. 양키즈가 선수들 몸값을 너무 올려놔서 다른 팀들의 전력 보강이 쉽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양키즈의 이같은 `제국주의적` 투자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월스트리트 투자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 `머니 볼(Money Ball)`은 값싸지만, 재능이 뛰어난 무명 선수를 영입해서 훌륭한 메이저 리거를 만든 후 비싼 값에 다른 구단으로 되파는 오클랜드 에스레틱스의 투자전략(?)을 다루고 있다. 오클랜드 에이즈(Athletics=A"s)의 `가치 투자`가 양키즈의 제국주의적 투자의 정반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사실 오클랜드 에이즈는 올해 레드삭스와 우승을 다퉜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스와 함께 월드 시리즈에서 아홉번 우승, 양키즈에 이어 두번째로 우승 경력이 많은 구단이다.
만약 양키즈와 에이즈가 둘 다 상장사라면 훨씬 적은 돈으로 성적도 우수한 에이즈의 주가가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식 가치 투자의 관점에서는 에이즈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주식과 같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만큼은 냉철한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이 더 중요하다. 야구의 세계에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는 사실은 몇가지 `확률 계산`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미국인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감성이 만들어내는 의외성, 불확실성 때문이다. 야구장은 이성과 합리의 탈출구다. 그래서 야구장에서 만큼은 fuck 이나 asshole 같은 욕을 해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것이다.
◇의외성과 불확실성의 세계
야구의 핵심적인 속성이 의외성과 불확실성이라면 야구팀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상천외한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월가에서도 프로야구팀을 IPO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야구가 얼마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특히 디비전 챔피언전이나 월드 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어째서 의외의 팀이 우승하는 일이 많은 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양키즈가 ALCS 7차전에서 레드삭스에 끝내 패한 후 10월24일 뉴욕타임즈에는 흥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1952년 하바드대 수학과 강사였던 모스텔러는 미국 통계학회지에 `The World Series Competition`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레드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모스텔러는 "왜 레드삭스같은 훌륭한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패하는 것일까. 정규 시즌 성적이 좋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패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항확률이론(Binomial Probability Theory)을 적용, "승률이 높은 팀이 월드 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상당히 높은 확률로 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25페이지에 달하는 이 논문은 야구 경기를 수학적으로 풀이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이항확률이론은 옵션 가격을 결정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모스텔러는 정규 시즌에서 승률이 60%인 강팀일지라도 29%의 확률로 7번 붙어서 최소한 4번은 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월드 시리즈가 7전4선승이므로 객관적인 전략이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고 하더라도 `승리의 여신`의 변덕에 좌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0게임 이상을 벌이는 정규 시즌에서는 객관적인 전력, 승률이 팀의 성적을 지배한다. 승률(이길 확률)이 60%라는 것은 10번 싸우면 6번 정도는 이긴다는 뜻이다. 정규 시즌에서 10연패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100게임, 200게임 게임 횟수(시행 횟수)가 늘어나면 결국 승수가 60게임, 120게임에 근접한다는 것이 수학이 말하는 승률(확률)의 개념이다.
월드 시리즈는 승률만으로 우승팀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시행 횟수가 적다는데 문제(재미)가 있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스텔러의 결론은 "단기전인 포스트 시즌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양키즈가 3번 먼저 이겨 놓고도, 레드삭스에 역전패 당하는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졌다. 3패 후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보스턴 팬들이 "우리는 아직도 믿는다"는 플랙카드를 들고 팬웨이 파크(레드삭스 홈구장)를 가득 메운 것도 바로 이런 의외성 때문이다.
실제로 정규 시즌에서 성적이 좋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50%)과 엇비슷하다. 오클랜드 에이즈의 매니저 빌리 빈도 "포스트 시즌에서 우승하는 일은 도박이다"고 말한 바 있다.
1969년 이전에는 메이저 리그가 단일 리그였고, 7전4승으로 우승 팀을 가렸다. 당시 정규 시즌에서 승률이 높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경우는 65번 중 34번으로 확률 50%를 약간 넘었다.
1969년부터 1993년까지는 월드 시리즈 전에 내셔날 리그,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을 먼저 가렸다. 5전3승 나중에는 7전4승의 디비전 챔피온 시리즈를 거쳐서 월드 시리즈를 치뤘다. 이 시기 정규 시즌 승률이 높은 팀이 우승한 경우는 25번 중 7번으로, 확률이 28%였다. 이는 동전의 앞면이 연속해서 2번 나올 확률 25%와 별 차이가 없다.
1995년 이후 포스트 시즌은 8개 팀이 참가, 월드 시리즈까지 세차례 단기전을 펼친다. 동전을 세번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 정규 시즌 성적이 더 좋은 팀이 우승한 경우는 9번 중 단 한번 밖에 없었다. 동전이 연속해서 세번 앞면이 나올 확률은 8분의 1이다.
올해도 카디날스의 정규 시즌 승률은 64.7%로 레드삭스의 61%보다 높았지만, 우승컵은 레드삭스로 돌아갔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실력`은 물론이고 승리에 대한 `의지와 열정`까지 동원해야 우승할 수 있다. 팀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다는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마우드에 피방울을 흩뿌리며 역투한 커트 실링이 레드삭스의 다른 선수들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열정이 3대0의 열세를 뒤집는 전설을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1918년부터 2003년까지 레드삭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단 한차례도 하지 못했다. 이것을 확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은 기간 양키즈는 무려 26번 우승했다. 레드삭스가 우승할 확률이 1%만 있다고 하더라도 100년 안에 한번은 우승해야 한다. 100번을 시행하면 1번은 기대하는 사건(우승)이 나타나야한다는 것이 확률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레드삭스같은 강팀의 우승 확률이 1% 이하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동안 레드삭스의 우승을 방해하는 확률 외적인 요소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수학은 어쨌든 레드삭스의 우승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독히 승운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그것을 `저주(curse)`라고 불러도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 한나라 연극 파문 "그 놈은 X 달 자격도 없는 놈"
- [오마이뉴스 제공] `호남과의 화해"를 내세운 한나라당 의원연찬회. 리허설 때부터 이미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 성적 비하와 욕설로 논란을 빚은 여의도극단(단장 박찬숙)의 본 공연은 더 노골적이고, 원색적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는 연찬회 첫 날인 28일 전남 곡성 봉조리 주민들 앞에서 창단 공연을 했다. 정치풍자극 "환생경제"라는 제목의 이 연극의 주인공은 "허구한 날 술 퍼마시고 마누라 두들겨 패고 가재도구 때려부수는, 그래서 집안 말아 먹은" 무능한 가장의 "노가리"(주호영 의원 분)가 그 주인공.
"민생"(심채철 의원 분)과 "경제" 두 아들을 둔 노가리는 둘째 아들 경제가 제대로 먹지 못해 "후천성영양결핍신경근육마비"라는 병을 얻어 죽게 되는 장례식장에서 소주병을 꿰 차고 술주정만 해댄다. 노가리는 아들의 죽음은 순전히 집터가 안좋기 때문이라며 집기둥에 톱질을 해대며 이사갈 궁리만 한다. 반면 어머니 "근애(이혜훈 의원 분)"는 이사를 반대하며 경제의 회생을 바라면서 시종일관 아들의 죽음에 슬피 흐느껴 운다.
노무현 어록과 과거사·수도이전 등 정치현안 섞어 원색적인 비난
연극 곳곳에는 노가리가 노무현 대통령이고, 근애가 박근혜 대표를 상징한다는 사실이 거의 직설화법으로 묘사된다. "이 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 등 노 대통령의 어록이 등장하며 수도이전, 과거사 문제 등 현안이 줄거리의 중심을 이룬다.
큰아들 민생은 노가리를 향해 "아버지가 바람나서 돌아다니는 동안 엄마는 집안 챙기고 그 덕분에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한 일이 뭐 있어요? 호적 타령이나 하고, 호적에서 밥이 나옵니까 술이 나옵니까"라고 과거사 청산작업을 비판한다.
아들이 대들자 노가리는 "개나 소나 힘으로 밀어붙이니 이거 애비 노릇도 못해먹겠어"라며 "이게 우리 집 꼴이요, 계급장 다 떼고 위아래도 없고 공부 잘하던 경제도 죽고 이게 다 이 빌어먹을 집터 탓이요"라며 집기둥에 톱질을 해댄다.
멀쩡한 집기둥을 자르려는 이유에 대해 노가리는 "그냥 가자면 말을 안들으니 집이 휘어야 마누라 자식이 내 말듣고 따라오지, 그게 다 고단수 전략이야, 난 한다면 하는 놈이야"라고 말한다.
아들 경제를 데려가기 위해 등장한 "저승사자"(주성영 의원 분)는 "이사를 가려면 먼저 식구들이랑 상의를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라며 "600년 넘은 고택이고 문화유산인데 전문가를 불러야 하지 않냐"고 충고하지만 노가리는 막무가내로 "늙은이 말을 뭘 들을 게 있어. 김홍신이 말처럼 재봉틀로 입을 쫙 박아버야 해"라고 광분한다.
또한 노가리의 친구로 등장한 "뻔데기"(정두언 의원 분)는 21세기 민족민주 풍수지리학회 회장으로 서울 세종로 제일대학의 교수. 그는 노가리에게 이사를 부추기며 "새끼고 뭐고 동지 아니면 다 적이야, 우리말 안 들으면 다 죽여야 해"라고 소리친다.
정부여당의 신행정수도이전사업을 맹목적인 밀어붙이기 식이라며 비판해온 한나라당의 입장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 연극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문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치적 쌓기에만 열중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남북교류사업.
노가리의 친구 "깍두기"(정병국 의원 분)는 "단군시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의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5천년 역사바로세우기 위원장. "대학 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고 운동만 하고 다닌" 그는 노가리에게 위원장 자리를 하나 제안하며 갖은 위세를 다 부린다.
실업자인 노가리가 제안받은 위원회는 그 이름도 길다. "남북통일을 위한 한민족 상호간 증오심 거두기 운동본부 산하 웃음되찾기 연구소 부설 민족민주개그위원회". 이 위원회 위원장의 자격은 "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주 싸가지 없게, 순간적으로 말을 잘 바꾸고 즉흥적이고 화려한 수사와 언변, 그리고 두꺼운 낯짝이 필요하다"며 깍두기는 "그 분야 최고"의 노가리를 추천하겠다고 약속한다.
또한 깍두기가 "못 웃겨도 좋다, 남북대화만 성사시키면 모든 것을 깽판쳐도 좋다, 너는 김정일 위원장을 웃길 수 있잖아"라고 독려하자, 이에 노가리는 한나라당이 지난 총선에서 로고송으로 사용한 일명 "개구리송"을 율동과 함께 불러 보인다.
"그 놈은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야"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작업과 관련한 묘사는 더욱 냉소적이다. 최근 정치인들의 가계 친일전력 시비가 이는 것과 관련, "고아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다"로 비꼬았다.
깍두기: 너네 대학 총장선거가 언제야. 너 출마하지. 내가 뒤봐줄께. 경쟁자가 나오면 그 명단만 보내. 내가 누구냐. 5천년 역사바로세우기 위원장 아니냐. 누구든지 할아버지, 아버지 뒤를 캐면 걸리는 게 나오거든. 아마 단군 할아버지도 뒤를 캐면 뭔가 나올 껄. 너는 고아잖아. 뒤를 캐면 뭐가 나올 게 있겠어?
뻔데기: 그래 나는 고아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깍두기: 고아가 떳떳하게 살수 있는 이 세상.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이게 바로 참회정부의 위협이야.
정치현안에 근거한 인신공격에서 나아가 "육××놈" "개×놈" "불×값" 등의 욕설과 성기묘사를 동원한 비난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근애의 친구로 등장하는 "번영회장"(송영선 의원 분), "부녀회장"(박순자 의원 분)은 장례식장에 등장, 다음처럼 노가리를 욕하며 근애를 위로한다.
번영회장: 안녕하세요.
노가리: 자식새끼 죽었는데 안녕은 무슨 안녕!
부녀회장: 인사를 해도 욕을 하는 뭐 이런 개×놈이 다 있어.
노가리: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부녀회장: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값을 해야지. 육××놈. 죽일 놈 같으니라고.
노가리: 나도 다 사정이 있어요. 경제 죽고 나니 가슴이 싸릿싸릿 하오. 근데 내 탓이 아니고 순전히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니요. 명당이라면 집안 꼴이 이런가. 그런데 마누라는 (이사를) 기를 쓰고 반대하니. 부창부수라고 하는데 복장 터지요.
(장면 바뀌어 친구들이 근애를 위로하며)
번영회장: 근애야, 이혼해.
부녀회장: 그래 이혼하고 위자료로 그 거나 떼달라 그래, 그 거시기.
번영회장: 그 놈은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야.
반면 근애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헌신적인 어머니로 그려진다. 저승사자는 "경제를 살려주는 대신 저 썩을 놈의 아버지를 데려가면 안되겠냐"고 근애에게 묻지만, 근애는 "입이 거칠어 망발하고 가볍게 처신하지만 민생이를 애비 없는 자식 만들 수는 없다"며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애원한다.
이에 염라대왕의 "판결"은 "죽은 경제를 살려주고 대신 남편을 데려가되 그 집행을 3년 연기"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3년의 집행유예는 대통령 임기를 뜻한다. 그러면서 저승사자가 노가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말.
"지 새끼 죽은지 모르고 상가집에서 춤을 추는 등신 같은 놈아. 앞으로 3년 간 어떤 짓 하지말고 제발 입조심하고 똑바로 하거라."
박근혜 대표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 호평
연극 곳곳에는 "민주세력"에 대한 비아냥도 드러난다. 노가리의 친구는 사실 "전두환 때 선거벽보에 오줌 싸다가, 그것도 얼굴에 정통으로 맞춰 민주투사가 되었"고, "운동권 학생들은 올림픽대회에 내보내 금메달을 따오게 해야 된다"는 식이다.
박근혜 대표는 숙소로 돌아와 이번 연극에 대해 "프로를 방불케하는 연기였다"고 호평했다.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시종일관 박장대소를 하며 극에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 뒷짐지고 선 주민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한 거 아냐"라는 소리가 오갔다.
연출 경험이 있는 이재오 의원은 "너무 직설적이긴 하다"며 "메시지를 줄이고 우회적으로 보여줘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줬다. 욕설과 성적비하에 대해 노가리 역의 주호영 의원은 "5일만에 급하게 배역을 소화하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며 "아마추어인 점을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비판적 창조를 통해 "재치"와 "깨우침"을 목표로 하는 풍자극. 대중문화를 통해 호남민심에 다가가려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처럼의 시도가 전남 곡성 봉조리 주민들에게 어떤 "깨우침"을 전달했는지 의문이다. 이미 리허설 동영상을 봤을 뿐인 네티즌들의 성토는 빗발치고 있다.
- (edaily리포트)풍선이 부풀다가
- [edaily 윤진섭기자] 정부가 주택거래신고제,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 원가연동제 등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해 연일 대책과 규제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세적인 가격 안정책에 강남권 아파트 값도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선 정부의 규제가 한쪽을 누르면 또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를 낳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산업부 부동산담당 윤진섭기자가 신고제이후 부동산 시장의 또다른 왜곡현상을 전합니다.
연일 치솟던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이 지난 4월 28일 주택거래신고제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그날 이후 송파구 아파트 값은 0.7%가 떨어졌고, 강동구는 0.51%, 급기야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강남구 아파트 값도 0.1%가 하락해 정부의 주택가격안정화 대책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집값 안정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인식한 정부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 연일 후속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공택지에선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엔 원가연동제를 실시하겠다고 천명했고, 채권입찰제의 도입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재건축 아파트의 늘어나는 용적률 25%를 임대아파트로 배정토록해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는 메가톤급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따져볼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시장은 정부의 희망대로 안정적으로 흐르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속칭 부동산 시장을 `들었다 놓았던`큰손들이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고 있는가 여부도 되짚어 볼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주택거래신고제 지역을 중심으로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비(非)주택거래신고제 지역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또 큰손들 역시 희소가치가 크고, 규제를 피한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 정책의 빈틈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틈새시장은 유망 리모델링 아파트와 파주 일대 토지시장, 그리고 뚝섬 일대 아파트, 강북뉴타운 재개발 등이 꼽힙니다.
최근 리모델링 사업 수주전이 한창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가 대표적이 케이스입니다. 워커힐 아파트는 리모델링 공사비만 1500억~2000억원으로 국내 최대규모 단지입니다다. 55~77평형 576가구로 한때 국내 최고의 아파트로 명성을 날리던 단지이기도 합니다.
현재 워커힐 아파트 리모델링에는 대림산업(000210), LG건설(006360), 포스코(005490)건설, 삼성건설 등 4개사가 수주 전에 뛰어든 상태인데, 무리한 홍보 전략도 등장한다는 소문입니다. 과거 재건축 수준전과 흡사하다는 게 현장 중개업자들의 중론입니다.
그런데 수주전만 비슷한 게 아닙니다. 아파트 값도 큰손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재건축 못지 않게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아파트 67평형은 지난 한 달 동안 상한가 기준으로 1억원이 올라 현재 10억5000만~16억원의 시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전 평형에 걸쳐 5000만~1억 원 정도가 올랐다고 합니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 등 주택거래신고제로 묶인 지역의 `큰손`들이 원정 매입에 나설 정도로 투자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지시장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파주 일대는 월롱면에 파주LCD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야기에 인근 적성면이나 연천군 일대 땅값이 작년말에 비해 30%나 오르고, 이런 상승세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규제로 인해 `한쪽이 눌리지만` 또다른 `한쪽은 튀어나오는` 전형적인 `풍선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주택정책의 총괄자로서 정부가 시장을 공세적으로 보고 규제하는 것은 정책적 정당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규제 홍수 속에 실상 부동산 `큰 손`투자자는 규제의 틈새를 교묘하게 빠져나가서 또다른 곳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정책이라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아직도 정부와 큰손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식의 기(氣)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또다른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이같은 일련의 대책이 전개되는 과정에 새롭게 반사이익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 있는지를 면밀히 체크, 이에 대한 대책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시중 자금을 생산적이고 투명한 곳으로 갈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과 이를 위한 장려책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방안 중 하나가 바로 리츠와 부동산펀드입니다.
그러나 부동산펀드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고, 리츠는 부동산 개발과 증시를 접목한 투자 상품인데도 각종 규제 때문에 사실상 그 존재가치가 사문화되다시피 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고, 부동산펀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개발이 절실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시장 규제를 지휘하는 건교부와 이를 시행하는 서울시, 경기도가 따로 놀고 있다며 비아냥되고 있습니다. 실상 건교부는 주택거래신고제 등 시장 안정을 위해 규제 중심의 정책을 피고 있는 반면 서울시나 경기도는 뚝섬개발, 행정신도시 등 개발 위주의 시정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책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다 보니 그것 자체가 투기의 또다른 빌미가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투자자금은 긍정적으로는 지역개발의 에너지입니다. 이런 에너지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체단체가 보다 정교하면서 에너지의 힘을 잃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투자자금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투기를 부추기는 악순환 구조가 아니라, 균형적인 지역개발을 유도하는 선순환구조를 따라가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지만, 지금 꼭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 (전문)문재인 민정수석 `사직의 변`
- [edaily 김진석기자] 문재인 민정수석은 12일 사퇴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물러나는 이유를 담은 `사직의 변`을 배포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전문]
민경찬씨 펀드건으로 말을 열고자 합니다.
민정수석실이 구체적인 정보를 처음 접한 것은 시사저널의 보도직전이었고, 그가 그런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면서였습니다. 저희는 즉시 그를 조사했고, 그는 투자회사를 이미 설립한 것이 아니라 설립할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시사저널이 보도한 내용을 대체로 시인했습니다.
그는 투자자 수가 60~70명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시사저널에는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합법적인 사업임을 주장하면서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였고, 투자자 보호를 핑계로 그 명단과 투자약정서 등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부득이 저희는 보다 전문적인 조사와 판단을 위해 금감원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는 이미 발표되어 보도딘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민씨가 금감원 조사에서 투자자 수를 줄이고, 투자회사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 시행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주식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며, 아직 투자약정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등으로 말을 바꾼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벌률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위법성을 찾지 못했다는 금감원의 발표가 미덥지 못하여 금감원 조사 바로 다음날인 1월31일 경찰로 하여금 민씨를 우선 출국금지부터 해두고 본격적인 내사에 착수하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민씨는 금감원 조사에서도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2.4일 투자금이 예치된 계좌 등 관련 자료를 가지고 민정수석실로 출두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출두를 약속했다가 막상 약속시간이 되자 기자가 사무실에 와 있어 움직이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면서 출두를 기피하였고, 그 대신 `해명서`를 보내왔습니다. 그가 출두하기 어렵다며 해명서를 보내겠다고 한 전화 통화가 저와 민씨가 나눈 유일한 통화입니다.
그와 같이 그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므로 저희는 경찰로 하여금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를 서둘도록 하였고, 경찰은 바로 그날 오후 그의 사무실과 자택 등 5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그를 임의동행시킨 다음 긴급 체포를 거쳐 지금까지 구속수사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진행 경과는 대체로 언론에 이미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느닷없이 청와대와 민씨가 말을 맞추어 사건을 조율했다는 의혹을 대문짝만하게 제기하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부분입니다. 조율했다면 조율한 내용이 있어야 할텐데 도대체 무엇을 조율했다는 것일까요. 청와대와 금감원의 조사로 끝내기로 또는 구속하지 않고 조사하는 시늉만 내기로 조율했을까요. 사건의 진행경과만 보더라도 아님이 자명합니다.
투자자 수를 줄이는 등 합법적인냥 몰아가기로 조율했을까요. 민씨가 금감원 조사 때 투자자 수를 줄이는 등 말바꾸기를 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린 것이 오히려 민정수석실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경찰에서 하고 있듯이 펀드의 실체가 없으며 모두가 거짓말이었다고 말을 바꾸기로 조율했을까요. 그러나 민씨는 저와 통화 후 언론에 배포했다는 `해명서에서도 여전히 편드의 실체가 있을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밖에 무엇을 조율했을 수 있을까요. 진행경과를 보면 출금, 압수수색, 연행좌, 긴급체포, 구속이 불가피하니 감수하라고 조율하였음직은 합니다.
얼마나 터무니없고 황당한 의혹제기입니까. 그런데도 그 터무니없는 황당한 의혹 제기가 민정수석과 민정실 직원들이 증인으로 소환되는 국회 청문회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청문회 끝나면 특검하자고 할지 모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하지 않습니까.
친인척 관리를 완벽하게 하여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기울인 노력을 보살펴보지도 않고 문제만 생기면 무조건 늑장 대응이다 부실대응이다, 축소·은폐다 제식구 감싸기다 하며 이의을 제기해 높고 보는 형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맥빠지게 합니다.
돌이켜 보면, 양길승씨 사건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합당한 근거도 없이 마구 제기된 금품수수 의혹이 결국 특검으로까지 이어졌고, 저희는 아직까지 부실조사 또는 은폐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후 여러달 동안 검찰수사와 특검수사가 있지만 그가 이원호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습니다. 특검수사 결과에서도 양길승씨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확인될 경우 세상이 그에게 진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요.
저는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는 내내 몸에 맞이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였습니다. 권력의 자리, 정치적이기도 한 자리에 제가 맞지 않으리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애당초 저에게 버거운 직책이었던 셈이지요. 버거웠던 만큼 많이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재직동안 제가 스스로 다짐했던 원칙들을 그대로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검찰에 대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배제하여 검찰의 성역없는 엄정한 정치자금 수사가 정치개혁의 원동력이 되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었던 것은 저로서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간적인 아픔들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근거없는 폭로와 의혹 제기들, 그는 그로 인해 매일매일이 비상사태 같은 긴장과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고, 대응할 길도 마땅찮은 무력함 때문에 저는 정말 지쳤습니다. 건강도 많이 상하였습니다. 근래 점점 거세지는 출마압력도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어 저는 이제 힘이 부치는 무거운 직책을 내려놓고 저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저에게 분에 넘치는 성원과 애정을 보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진우의 FX칼럼)만들어진 환율은 재앙을 불러온다
- [edaily] 오늘 칼럼은 edaily 독자들과의 작별을 위한 세리머니의 성격을 띱니다. 그 동안 왜 칼럼의 형식을 빌어 국내외 외환시장 동향을 짚어왔는지, 스스로 내리는 칼럼에 대한 성적표는 어떠한지, 그리고 환율에 대해 평소 지녀온 생각 한 가지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현재 갖고있는 저의 개인적인 뷰를 밝히고자 합니다.
시장을 사랑하고 또 시장을 떠날 수 없기에 저의 ‘환율 이야기’는 새로운 모습으로 곧 재개될 것입니다. 그 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 드립니다.
◈ 과거를 반추하며
지난 1997년 겨울의 `IMF 외환위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그 배경이나 의의 등을 논할 수가 있다. 필자는 표현이 좀 저속하기는 하지만 `국제 투기자본의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윤간`이라고 그 시절을 정의한다. 그리고 철저히 시장(Market)이라는 관점에서 살핀다면 그 때부터 한국의 증시와 채권시장, 외환시장은 상당히 먹을 것이 많은 `돈 되는 곳`이 되었다. 엄청난 고통의 시기였지만 그 시기가 일생에 한 번 도래하는 기회였던 사람들이 이 땅에도 적지 않았으며, 특히 해외자본에게 한국 시장은 그저 주워 담기만 해도 돈이 되는 곳이었다.
오랜 세월 700~800원 하던 환율이(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양갓집 규수가) 2000원 가까이 치솟는 일진광풍이 휘몰아친 뒤 대한민국 원화환율은 IBM(이미 버린 몸)이 되었다. 아주 대담하고 화끈해져서(현학적으로는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어) 예전에 본 레벨이라면 다시 못 갈 이유가 없다. 아래로는 1100원이 아니라 1000원 이하로도 갈 수 있고, 기분 내키면(?) 다시 1300원, 1400원도 못 갈 이유가 없다. 800~900원대 환율이 한두 달 만에 1900원대로 치솟았던 것이 누가 보아도 너무했기에 98년 이후 환율은 지속적인 하락국면에 접어들었고(高 환율로 인해 급증한 무역수지 흑자와 헐값의 한국 주식을 사들이기 위한 외국인 주식자금의 유입), 이후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2000년 11월 하순(1140원 돌파) 부터 이듬해 4월4일 1365.30원까지 환율이 치솟았던 장세가 있었다.
2001년 식목일 이후 필자는 줄기차게 `숏`을 주장했었고, 그래서 요즘에는 “당신 같은 `숏돌이`가 환율 빠질 요인밖에 없는 이 시기에 어찌 그리 저점매수만 외치고 있느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2001년4월부터 시작된 숏 마인드의 가장 큰 배경은 “서울에 달러가 많다.”는 수급(需給)요인 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도 서울의 달러수급은 엄연히 달러공급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숏`을 권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이따금씩 수급을 뒷전으로 미룰 수 있는 더 강력한 변수가 지배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또 시장은 대다수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고 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주었으면 하는 방향으로 잘 가주지 않는 묘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 비해 환율에 관해서는 읽을 만한 글이 없다는 사실에(우리나라 기업체들이 꼭 보고싶어 하는 외국 금융기관들의 전망이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았다는 사실에) “그럼 내가 써 보자.”하는 마음으로 칼럼은 시작되었고, 1~2원만 반대로 가도 자신의 포지션을 꺾어야 하는 은행권 딜러나 데이 트레이더들보다는 길게 내다보고 거래해야 할 기업체나 개인들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보니 “당신 칼럼은 일주일 지나 읽으니 도움 됩디다”라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구분 안 되는 얘기도 많이 들어왔다.
큰 변곡점을 앞두고 항상 워닝(warning)을 발해왔기에 스스로 판단하는 그 간의 칼럼 성적표는 80점 정도는 된다 보고, 이제 이하에서는 환율에 대한 평소 생각 한 가지와 왜 지금 이 시점에 달러매도를 말리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환율이 추가하락 해야 한다는 전망이나 이 정도에서 반등가능 하다고 보는 전망이나 그 논리의 전개는 아주 깔끔하고, 배경 자료나 근거의 제시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리포트가 아닌 칼럼 형식이기에 가능한 논리 전개로 향후 환율의 반등(더 나아가 큰 상승)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 지금은 플라자인가, 逆플라자인가?
국제금융론 책이면 조금씩 지면을 할애하는 국제통화제도의 변천사를 잠깐 살펴본다.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도로 1944년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는(쉽게 요약하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연동시키는 제도) 이후 마구 찍어낸 달러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 1971년 상반기에 실제 30억 달러를 들고 와 금으로 바꿔달라는 영국의 요구에 놀란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금태환(金兌換) 정지를 발표했고(이른바 닉슨 쇼크), 이후 금값을 올려 달러를 약세로 몰고 간 스미소니언 체제를 거쳐 1973년에는 변동환율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킹스턴 체제가 출범하게 된다.
한동안 달러약세 기조를 유지하던 미국은 1978년 2차 석유파동이 나고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 달러가치는 높아지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5년 9월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선진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을 불러모아 비밀회담을 가졌고,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며 이것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에는 정부간 협조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이끌어내었다. 85년2월 264.50엔까지 치솟았던 달러/엔 환율은 이 합의 이후 10년 간에 걸친 장기하락추세에 진입, 95년4월에는 79.77엔이라는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다. 이 때 경제가 망가진 두 나라가 바로 일본과 독일…
일본의 장기침체가 미국, 일본 모두에 보탬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자 미국은 다시 달러강세 정책으로 선회하였는데, 선진 7개국이 95년 4월에 ‘엔低 유도’를 합의한 것이 이른바 ‘역(逆) 플라자 합의’이다. 로버트 루빈 당시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은 강력한 달러(strong dollar)를 원하고 있으며 G7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외환시장에 공동으로 개입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천명하였는데, 실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중앙은행들이 대대적인 공조개입(joint intervention)을 단행하여 달러시세를 끌어올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역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강세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급증시키며 작금의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고(95년 GDP 대비 1.5% 수준인 1000억 달러 적자규모가 2000년에는 4.4%에 달하는 4300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4년에는 GDP의 7%인 8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옴), 그 당시 엔화의 급격한 절하는 달러에 연동됐던 많은 아시아 통화가 엔화에 대해 고평가되는 현상을 초래하며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달러강세를 즐기던(?) 미국은 `신경제`의 환상이 깨지면서 들이닥친 주식시장의 붕괴와 달러약세 와중에 이제는 중국이라는 타겟을 정해 위안화 절상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꾸 심기를 거스르면 들고있는 미국 국채를 던져버리겠다는 공갈도 섞어가며 배짱 부리는 중국에 비해(중국은 일본에 이어 미국채 시장의 두 번째 큰 손이다) 입으로는 “강한 달러 정책 불변”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은 달러약세 유도에 안간힘을 쓰는 미국의 민망한 모습도 필요 이상 강했던 자국통화 때문이었다. 하물며 지난 97년 겨울, 코 앞에 닥친 위기상황을 외면하고 피같은 달러를 매도개입에 소진했던 우리나라의 경우를 떠올리면 “억지로 만드는 환율은 재앙을 불러온다”는 오늘 칼럼의 제목도 억지라 볼 수 없다.
상품이나 서비스 등의 수출입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던 시기는 이미 오래 전 얘기고 지금은 자본의 세계화 이후 수시로 이 나라 저 나라 주식시장 및 채권시장을 넘나드는 국제자본의 흐름이 외환거래에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절이 되었다. 무역 불균형이 환율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정되기보다는 급속한 자본의 움직임이 환율 급변을 야기하면서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시절이기도 하다. 일시적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의 패닉(panic)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차원의 정부개입은 불가피하다고 하겠으나, 플라자 합의나 역플라자 합의 같은 힘있는 나라들의 야합에 따른 환율 조작(?)은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었다는 과거 경험을 한 번쯤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 왜 달러매도를 말리고 있는가?
지금부터의 논의는 맞고 틀리고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지극히 필자 개인적인 뷰이며, 그 논의의 전개과정 또한 지극히 주관적임을 미리 밝힌다. 수치상 확연히 드러나는 달러공급 우위의 수급상황, 당장 오늘이라도 116엔, 115엔 아래로 내려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달러/엔 동향, 연일 1~2000억원 대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하며 시장에 매물부담을 가중시키는 외국인 투자자… 환율하락(원화강세)이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망이 될 것임에도 굳이 현 레벨에서 달러매도를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달러/엔 환율의 추가급락도 쉽지않고 지금 엔화는 그 어떤 `합의`하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이루어지는 달러/엔 하락은 달러약세가 아닌 엔화강세로 해석해야 한다. 회복기미를 보이는 일본 경제에 대한 재해석과 주가가 상대적으로 너무 낮아져 있었던 일본 주식시장으로의 해외자본 유입이 유로/엔 급락과 달러/엔 하락을 동시에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표는 미국 경기 또한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달러의 주요통화 대비 강세와 엔화대비 약세가 병행할 때, 우리 원화가 반드시 엔화시세를 추종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 이후의 10년을 추세로 본다면 이후 조정국면이 이뤄지는 시기도 최소한 10년 이상은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조정국면을 야기한 변수가 역플라자 합의였고, 역플라자 합의가 마무리 되었다고 판단할 만한 정황은 아직 없다. 일본의 집요한 시장개입을 미국이 직접 뜯어 말리지도 못할 뿐더러, 미국의 엔화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또한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95년 80엔 이후의 장기 상승추세선이 밀린다고 해서 달러/엔 환율의 추가적인 급락이 보장되지도 않을 만큼 지금은 각국 외환당국의‘개입’이라는 변수가 강하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시기이다.
둘째, Critical level의 붕괴(돌파) 이후에도 급하게 액션을 취하지 않는 시장 참여자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싶다.
증시에서는 외국인들의 우격다짐에 가까운 매수공세와 지수 높이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추격매수세가 따라붙지 않고 있다. 돈이 없어 그럴 수도 있고 지난 몇 년간 축적된 `학습효과`(외국인 뒤꽁무니 쫓아가서 이익을 낸 적이 없었다는 경험에 따른)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들 또한 시장을 이루는 주축들이며 그들을 상대로 차익실현을 해야 하는 외국인들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현상이다.
엔화강세,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과 여전한 흑자기조의 무역수지 등 환율하락 요인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급하게 매물화 되지않고 있는 거주자 외화예금에도 주목한다. 1170원이 잠시 무너지기도 한 8월 하반월에 10억 5천만 달러가 감소하기는 하였으나(8월말 현재 거주자 외화예금은 144억 4천만 달러) 아직까지는 외화예금에 잠겨있는 달러가 시장에 매물로 급하게 몰려온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 한꺼번에 매물화 될 경우 환율급락을 야기할 수 잇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 당장의 환율하락 요인을 좀 더 견디며 환율이 급하게 오를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는 달러보유 세력들의 의중이 읽혀진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추이에서 확인되는 것은 거주자외화예금의 급증은 환율 급등에 선행해왔었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환율관리는 은행권이나 역외세력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안 팔겠다면 시장 재료는 하락우호적이라도 환율이 안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 기술적으로 아주 큰 삼중 바닥(Triple bottom)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년 7월26일의 1164원 저점과 금년 1월30일의 1168원 저점, 그리고 지난 8월25일의 1,166원 저점이 이중 바닥보다 더 무서운 삼중 바닥을 형성할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그리고 주목할 것은 지난 두 차례의 저점 형성 전후의 양상과 이번 1166원 저점 형성 전후의 장세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1170원 근처에서의 바닥 다지기(?)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고, 그 때와는 달리 장단기 이동평균선들이 가까이 수렴함으로써 향후 환율 방향성이 설정되면 아주 `큰 장`이 설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달러/엔 하락을 무조건 추종할 수 없다는 점, 달러보유 세력이 쉽사리 달러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 기술적으로 향후 반등장세가 예견된다는 점 등이 환율 더 빠지기 어렵다는 뷰의 골격인데, 이러한 뷰를 뒷받침 하는 재료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쉽게 말해 북한변수)`이다. 오늘(9월3일) 점심 시간 직전만 하더라도(비록 해프닝 성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는 북한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금융시장의 속성을 확인했다.
단기적인 환율하락 압력은 좀 더 이어질 수 있다. 참고 견디다 결국 마지막 고비를 못 넘기고 손절을 치고 나면 그 때서야 시장은 원하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만 더 견디고 보자면서 연말 결제수요가 있는 업체들에게는 매수 헤지(hedge)를 준비할 때라고 권해왔다. 그러나 9월 초가 1170원대 환율에 달러를 내다팔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음이 추후 판명된다면 어설픈 환율전망으로 남들을 현혹(?)해 온 자신에 대한 심각한 자아비판이 따라야 함을 각오하고 있다.
- (초점)신화에서 몰락까지..날개꺾인 이민화 신화
- [edaily] 한국 벤처의 신화로 불리던 이민화 회장의 "메디슨호"가 결국 침몰했다. 메디슨은 그간 자금난 속에서 자회사들을 하나씩 매각하며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최종 부도를 피하지 못했다.
메디슨의 이같은 좌초는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는 하지만 메디슨의 화려했던 옛 영광을 돌이켜봤을 때 여전히 충격적이다.
메디슨의 침몰은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던 이민화 메디슨 전 회장의 몰락을 의미한다. 벤처붐이 일면서 이민화 회장은 벤처업계의 대부로 부상했고 너도 나도 이민화 전 회장을 모델로 삼아 창업의 길로 나섰다. 한때 메디슨의 계열사라는 것이 든든한 힘이 됐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초라한 몰락이 아닐 수 없다.
한때 5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선단식 벤처를 운영하던 이민화 전 회장은 한국의 벤처 신화를 상징하던 인물. 결국 이민화 전 회장의 분신인 메디슨의 몰락은 지난 수년간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벤처업계의 단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공식적으로 메디슨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를 메디슨의 대표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많고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민화 전 회장은 5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공대와 카이스트를 거쳐 대한전선에서 컴퓨터 단말기를 개발하던 엔지니어였다. 그가 메디슨의 간판 상품인 초음파 진단기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대한전선을 떠나 입학한 카이스트 박사과정에서였다.
카이스트에서 초음파의 디지털 기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받은 그는 그 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85년 메디슨을 창업했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초음파 진단기를 들고 개인병원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사람이 한국 벤처 투자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벤처업계의 쌍두마차로 위세를 날렸던 서갑수 전 한국기술투자 사장이다. 서 전 사장은 메디슨 에 2억원을 융자해줬고 이 돈이 메디슨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됐다.
업계에서 나름대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성장을 거듭하던 메디슨이 95년 거래소에 상장되며 이 전 회장은 큰 돈을 만지게 된다. 이 자금으로 컬러 초음파 진단기, 디지털 3차원 초음파 진단기 등을 개발했다.
이민화 전 회장이 기업인수의 맛을 알게 된 것은 96년 오스트리아의 크레츠테크닉이라는 입체 초음파 진단기 생산업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우수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지만 상품기획력이 떨어졌던 크레츠의 잠재력을 보고 850만달러에 인수한 이 회장은 인수 당시 2천500만 달러 매출에 적자였던 크레츠를 2년여 만에 1억 달러 매출에 600만 달러의 흑자를 올리는 기업을 바꿔놨다.
이후에도 메디슨은 그야말로 초고속 성장 가도를 거침없이 달렸다. 연평균 매출 증가율 52%, 순이익 증가율 58%. 심지어는 IMF 위기 첫해였던 98년에도 전년 대비 35%가 늘어난 1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99년엔 2000억원을 넘어섰다. 순이익은 1998년 200억원에서 1999년 500억원으로 두배 이상 뛰었고 이민화 회장의 업계 위상도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고 95년 벤처기업협회 회장직을 맡게된다.
이민화 전 회장의 화려한 질주는 "벤처보국"의 깃발이 휘날리던 99년 최고조에 달했다. 코스닥 시장·벤처기업특별법 등 벤처 육성과 관련한 각종 정책을 입안했고 한글과컴퓨터, 비트컴퓨터 등 한때 내로라하는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며 명실상부한 벤처업계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회장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초음파 진단기"에서 "벤처 투자"로 주력 사업을 바꿔갈 바로 그 무렵부터 메디슨에 위기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99년 발표할 예정이었던 초음파 진단기 시제품을 결국 출시하지 못했고 영업실적은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메디슨의 회장이기보다는 벤처업계의 대부였던 이 전 회장은 오히려 "메디슨 연방제"를 주창하며 수십개의 벤처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린 선단식 경영을 시작, "재벌벤처 1세대"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자회사 지분의 평가익 앞에서 "약간의" 영업손실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차입금을 끌어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영업실적의 저조함을 벤처투자의 화려함으로 메워나가던 "메디슨 그룹"은 2000년부터 벤처업계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며 함께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모든 자회사를 매각하겠다고 선언하며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장부가치로 수백~수천억원에 달하던 자회사들이 매각될 당시엔 수억~수십억원의 헐값에 팔려나가며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됐다. 끊임없이 만기가 다가오는 단기부채의 물결 앞에서 메디슨이 자랑하던 벤처계열사들의 주식은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었다.
메디슨은 지난해 한글과컴퓨터 지분을 220억원에 매각한 데 이어 메디다스, 비트컴퓨터, 크레츠테크닉, 프로소닉 등 자회사의 지분을 1100억원에 매각하면고 또 최근엔 본사 사옥까지 310억원에 매각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민화 전 회장도 지난해 10월 메디슨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은 회장직에서 사임하자마자 메디슨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 또 한 번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 전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직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메디슨 주식 32만여주를 장내 매도했다.
촉망받는 벤처사업가에서 출발, 벤처왕국 황제로 업계에 군림하던 이민화 전 회장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세운 메디슨은 29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벤처기업 최초의 거래소 상장, 최고 공모가 신기록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식시장에 데뷔한 지 불과 6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