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1,398건
- (전문)조선아태평양평화위, 대변인 담화
-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최근 남조선의 현대그룹은 지금까지 대북경제협력사업의 주역으로 활약해온 현대아산 대표리사이며 부회장인 김윤규를 그 무슨《비리》라는데 걸어 모든 공직을 박탈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고있다.김윤규 전 부회장으로 말하면 십수년전부터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과 함께 불신과 대결의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터놓고 북남경제협력사업의 《옥동자》로 불리우는 금강산관광사업을 개척한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왔다.이러한 그가 현대그룹의 현 상층인사들에 의해 하루 아침에 쫓겨나게 된 뜻밖의 현실앞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의혹과 우려를 금치 못하고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현대그룹 내부문제만도 아니고 일개 기업의 경영과 인사권에관한 문제로만도 볼수 없다.그것은 현대와 우리와의 관계는 물론 북남경제협력사업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심중한 문제로 되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김윤규문제》가 제기되자 현대측에 신중을 기할것을 거듭 권고하였으며 그들이 리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옳바르게 처신할것을 기대하였다.남조선에서도 정주영,정몽헌선생들의 뜻을 이어 북남협력사업에 헌신하여 온 김윤규선생의 공로를 정당하게 평가할것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측은 우리의 진정어린 권고와 남조선의 공정한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서둘러 김윤규선생을 현대아산 대표리사직에서 떼버린데 이어 부회장직마저 박탈함으로써 현대에서 그의 존재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이것은 우리와 현대와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초보적인 분별력과 리성마저 저버린 심히 비정한 처사로서 내외여론의 커다란 빈축을 사고있다. 우리가 현대사태를 문제시하게 되는것은 무엇보다 금강산관광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념원을 중시하고있는데 있다.동족사이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북남협력사업에서 금강산관광사업은 그 상징으로 되고있다.우리는 현대측이 금강산관광문제를 처음 제기하여왔을 때 민족의 명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동포형제들의 간절한 념원을 헤아려 북남사이에 대결과 긴장이 극도로 첨예한 군사접적지대이지만 금강산지역을 통채로 내주기로 하였으며 쌍방사이에 군사적충돌이 일어나고 북남관계가 동결되는속에서도 금강산관광을 중단없이 계속하도록 모든 아량을 다 보이였다. 그리고 더 많은 남녘동포들이 금강산을 볼수 있도록 여러가지 관광활성화조치들을 거듭 취하였으며 누구도 엄두를 낼수 없었던 군사분계선철조망을 걷어내고 륙로관광길까지 열어주는 전례없는 대용단을 내렸다.그런데 금강산관광사업 개척과 추진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주역이 하루아침에 이름도 모를 몇몇 사람들에 의해 축출당하고 민족의 기쁨과 통일의 희망이였던 금강산관광이 전면중단의 엄중한 위기에 처하게 된데 대해 우리는 깊은 우려를 금할수 없다.우리가 또한 현대사태를 문제시하게 되는것은 우리와 현대사이의 신의를 귀중히 여기고있는데 있다.우리와 현대와의 관계는 경제론리를 초월하여 동포애에서 출발한 신의에 기초하고 신의를 우선시한 각별한 관계이다. 우리는 정주영명예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몇푼의 돈보다도 통일애국사업에 기여하려는 그의 충정을 먼저 보고 신의에 기초하여 그와의 협력관계를 맺었다.그러한 신의가 있었기에 우리와 현대와의 협력사업은 그사이 여러가지 우여곡절속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될수 있었으며 현대측의 관광대가미불금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우리는 돈보다 먼저 신의를 중시하고 금강산관광사업을 중단없이 계속하도록 모든 성의를 다하였다.참으로 우리와 현대사이의 신의관계는 천만금으로도 계산할수 없는 귀중한것이였다.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대그룹과의 각별한 신의에 기초하시여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김윤규부회장을 비롯한 현대측 관계자들을 여러차례 접견하여주시고 육친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으며 정주영선생이 사망하였을 때에는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친히 서울에 조문단을 보내주시고 위로의 말씀까지 전하시는 등 북남관계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한량없는 은정을 부어주시였다.만일 현대의 새 상층부가 이러한 특별한 신의관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을 그처럼 경솔하게 처리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지어 그들은 직접 받아안은 최고의 사랑을 저버리는것마저도 서슴지 않았다. 다 아는바와 같이 지난 7월 현대그룹 회장은 김윤규부회장과 함께 우리측 지역을방문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선임자들의 뜻을 이어 서로 합심하여 일을 잘할데 대한 따뜻한 격려의 말씀과 함께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독점권까지 받아안는 분에 넘치는 최상최대의 특전도 지니였다.그런데 돌아가자마자 야심가들의 충동을 받아 함께 접견을 받은 부회장을 따돌리고 그의 목까지 떼였으니 이 보다 더한 인사불성이나 배은망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이에 심한 배신감을 넘어 분노마저 금할수 없다.현대측은 이런 행태로 우리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하였을뿐아니라 우리와의 신의관계마저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런 사태에 대해 우리 인민들이 오늘 격분을 금치 못해하고있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우리가 또한 현대사태를 문제시하게 되는것은 현대그룹 선임자들과의 깊은 의리관계로부터 출발한것이다. 번 현대사태는 결코 김윤규개인에 한한 문제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김윤규를 제거함으로써 결국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며 북남경제협력사업의 개척자인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마저 욕되게 하였다는데 있다. 돌이켜보면 현대의 성장과 우리와의 협력사업 전 과정은 정주영,정몽헌선생들과 그들을 도와 36년동안이나 현대에 몸을 담고 투신해온 김윤규 전 부회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남조선에서 《정주영의 분신》으로,《명예회장의 친자식》으로 불리운 김윤규선생은 정몽헌회장으로부터 대북사업을 넘겨받아 더 강력히 추진시켜달라는 유서당부까지 받았다.하기에 우리는 정주영,정몽헌선생들을 떠난 현대를 생각해본적이 없듯이 정주영,정몽헌선생들을 떠난 김윤규 전 부회장을 생각해본적이 없으며 정주영,정몽헌선생들이자 곧 김윤규로 여겨왔다. 우리와 현대와의 사업은 그야말로 시종일관 의리로 해온 사업이였다.우리는 항상 의리의 견지에서 정주영,정몽헌,김윤규선생들을 하나로 생각해왔고 라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의리는 어느 한 사람에게 국한된 의리로만 지켜오지 않았다. 정주영선생에 대한 의리는 곧 정몽헌선생에게도 꼭같이 지켜졌고 또 김윤규선생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따라서 우리는 남조선에서 세론이 김윤규를 죽인것은 곧 정주영명예회장을 죽인것이며 김윤규부회장에게 매질한것은 곧 정몽헌회장에게 매질한것이라고 비분강개하고있는것이 결코 무리는 아니라고 인정한다.그래서 우리는 김윤규를 제거한 처사를 두고 의리때문에 그토록 아파하는것이며 격하는것이다.이번에 현대의 책임있는 당사자들은 그 무슨 《비리》라는것을 걸고 김윤규부회장의 흠집을 들추다못해 《대북협력기금의 류용》이니 뭐니 하는 혐의까지 들씌우려하다가 그것이 조작이라는것이 드러나 세상면전에서 공식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결국 그들이 김윤규제거명분으로 내세웠던 《비리》라는것은 어느 하나도 믿을수없게 되였다.그러면 이번에 현대측이 무엇때문에 사실여부도 분명치 않고 사람들이 납득하기도 어려워하는 문제를 가지고 본인도 없는 상태에서 서둘러 그러한 놀음을 벌렸는가하는것이다. 지금 남조선일각에서는 정씨가문의 자산을 현씨가문으로 빼돌리는데서 걸림돌이되는 정씨가문의 유일하게 남은 가신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는 여론이 분분하다. 정씨가문의 자산이 어디로 가든 우리는 그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그렇지만 남조선에서 일고있는 그러한 여론이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실지로 엄청난 비리이고 부정이 아니겠는가. 이번 현대사태에는 미국과 《한나라당》의 검은 손이 깊숙이 뻗치고있다는 설도 떠돌고있다.우리 민족끼리 하는 협력사업을 달가와하지 않으면서 코코에 방해를 일삼아온 미국은 최근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북남경제협력관계가 너무 앞서나간다고 트집을 걸면서 《속도조절》이니,《핵문제와의 병행추진》이니 하고 압력을 가했다.미국의 이러한 소동과 때를 같이하고있는 현대사태를 어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의 일이라고만 할수 있겠는가.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한나라당》은 지금 《정권》찬탈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물에 빠진 자 지푸래기라도 잡는다는 격으로 《김윤규문제》를 가지고 때를 만난듯이 그 책임을 《참여정부》에 들씌우려하고있으며 《대북경협사업의 전면재검토》와 《국정감사》까지 운운하면서 북남협력사업에 로골적으로 제동을 걸고있다.지어는 《김윤규비리》에 북도 관련되였을것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으면서 우리까지 《공범자》로 걸고들려 하고있다.제반 사실은 이번 현대사태의 배후에 반북대결을 추구하며 다음기 집권을 노리는《한나라당》의 검은 마수가 깊숙이 개입되여있다는것을 확증하여준다.현대의 현 상층과 《한나라당》 고위당직자와의 근친관계로 볼때 남조선에서 떠도는 그들사이의 밀약설도 전혀 무근거하다고만 볼수 없다.이번 현대사태는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날로 확대발전하는 북남협력사업을 차단하고 남조선에 친미반북보수《정권》을 복귀시키려는 미국과 《한나라당》에 의한 일종의 반변으로 규탄받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현대측이 북남협력사업의 개척자로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김윤규존재마저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이제 현대아산에는 대북사업의 주체가 아주 없어지고 우리가 알지도못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돈도 주무르고 사람도 료리하게 되였다. 정주영,정몽헌선생들이 떠나가고 그 자리를 메꾸어오던 김윤규부회장마저 없어진 대에서 우리가 알 사람이란 누구도 없다. 따라서 오늘의 금강산관광사업은 사실상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뺀격의 일로 되고말았다.현대의 원래 얼굴이 하나도 없는 현대는 현대가 아니다.현대측은 이번 김윤규제거조치를 《읍참마속의 결단》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겨레의 념원과 쌍방사이의 신의와 의리마저 내팽개친 랭혈인간들의 자기 기만과 위선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것이다.뿌리깊은 신의와 의리에 기초한 아태와 현대사이의 협력관계가 북남협력사업의 의미와 특수성도 알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하루 아침에 깨진것은 실로 경악할사태이다. 이제는 현대가 본래의 실체도 없고 신의도 다 깨져버린 조건에서 그전과 같은 우리의 협력대상으로 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며 따라서 우리는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검토하고 재조정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지금 일정에 올라있는 개성관광에 대해 말한다 하여도 현대와는 이 사업을 도저히 할수 없게 되였으며 부득불 다른 대상들과 관광협의를 추진해나갈수 밖에 없게 되였다.2000년 8월에 현대측이 우리와 체결한 《7대협력사업합의서》라는것도 해당한 법적절차와 쌍방 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하고있고 필요에 따라 수정보충하거나 다시 협의할수도 있게 되여있다.더우기 이제와서는 그 합의의 주체도 다 없어진 조건에서 우리는 구태여 그에 구속되여있을 리유마저 없게 되였다.우리와 현대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모든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현대측의 그릇된 처사와 관련된다. 현대의 비리성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북남경제협력사업의 의미가 크게 훼손되고 새로운 도약이 약속되였던 협력사업앞에는 엄중한 장애가 조성되게 되였다.현대측은 자신들의 배은망덕과 경솔한 처사로 말미암아 초래된 오늘의 사태와 앞으로 있게 될 모든 후과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한나라당》은 저들의 속이 검다고 남까지 검게 보려는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현대에게도 앞날은 있고 길은 있다.우리는 현대측 상층부가 본의아니게 이번 사태를 빚어냈다면 후회도 하고 뉘우침도 클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리고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금강산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주는 아량을 보이게 될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현 상층부가 민족의 지향과 대세를 똑바로 보고 바른 길에 들어서기를 기대한다.주체94(2005)년 10월 20일 평 양(끝)
- HK저축銀 최대주주는 `검은머리 외국인`
- [이데일리 김병수 오상용기자] HK상호저축은행의 최대주주인 퍼시피캡 퍼시픽 림 펀드(PPRF)가 국내 자금으로 설립된 `검은 머리 외국인`인 것으로 드러났다.또 PPRF의 단독주주이자 실소유자라고 주장하는 권덕만씨는 HK저축은행(007640)으로부터 280억원 가량을 부당 대출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상호저축은행법은 출자자에 대한 대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자금조성과정에서의 외환거래법 위반혐의도 받고 있다.검찰은 최근 이같은 혐의를 포착하고 권덕만씨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융감독원도 지난 13일부터 특별검사에 착수했다.☞10/16 08:26:56 금감원, 경영권 분쟁 HK저축銀 검사 착수20일 서울지법과 금융감독원, 관련업계에 따르면 PPRF 대표인 권씨는 지난 5월 법원에 제출한 서면자료와 증빙서를 통해 PPRF 설립자금은 전액 자신의 개인자금 및 그가 운영하는 국내회사들로부터 조달한 자금이라고 밝혔다.이는 지난 2003년 11월 PPRF가 금감원에 HK저축은행(당시 한솔저축은행) 53.6% 지분매입을 신고할 당시 밝혔던 내용과는 상반된다. 당시 PPRF측은 자신들이 미국 델라웨어주법에 따라 설립된 미국계 사모펀드로 주요출자자는 `하와이 치과의사 협회` 등 외국인이라고 신고했었다.그러나 최근 오영석 前 HK저축은행 대표가 PPRF에 대한 권한이 오씨 자신에게 있다며 권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권씨는 PPRF의 설립과정과 자금조성 방식을 속속들이 법원에 공개했다. 권씨의 진술에 의하면 PPRF는 해외자금으로 조성된 미국계 사모펀드가 아니라 국내 자금으로 조성됐다.권씨 측은 당시 참고준비서면을 통해 "남광토건으로부터 100억원을 빌리고, 자신이 경영하는 월드인월드가 투자한 자금 62억원, 자신이 보유한 현금 25억원, 동진산업과 태원전기로부터 조달한 자금 50억원, 한솔창투에서 빌린 자금 35억원 등 총 272억원으로 펀드를 조성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권씨 측의 이같은 진술과 권씨측이 제출한 입출금내역서 및 차용증서 등을 참고해 오씨가 제기한 의결권(대리)행사금지 및 처분 가처분신청을 기각하고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참고준비서면대로라면 권씨는 PPRF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HK상호저축은행을 사실상 지배해온 주요출자자가 된다. 권씨가 주요출자자이면서도 HK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혐의가 있는 것도 또다른 의혹이다. 지난 7월 검찰은 권씨 등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서울지법에 영장을 제출하면서 `권덕만씨가 HK저축은행의 출자자로서 지난 2003년 12월말부터 올 1월까지 9차례에 걸쳐 총 277억8000만원을 대출받았다`는 자료를 첨부했다. 현행 상호저축은행법은 출자자에 대한 대출을 불허하고 있다.이에 대해 권씨측 변호인은 "권덕만씨는 HK로부터 단한푼도 대출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오영석씨 등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모호한 대출항목을 모두 권씨가 실차주인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고 주장했다.권씨측은 "다만, 권씨 동생과 `월드인월드개발`이 지난 2004년 4월과 10월에 대출을 받았지만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씨가 월드인월드개발(現 새로운성남)의 대표로 있었지만 돈을 빌린 당시에는 대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권씨는 또 PPRF 자금조성 과정에서 자신의 돈 25억원을 투입하면서 오영석씨를 통해 환치기 수법으로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일단 권씨가 출자자 신분으로 부당한 대출을 받았는지 여부와 각종 금융관련 법규를 위반했는지도 이번 검사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업계에서는 HK저축은행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최대주주인 PPRF와 2대주주인 선진씨엠씨측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HK저축은행은 대주주간 경영권 다툼과 재무악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BIS비율이 5% 밑으로 떨어진 것이 최종 확인되면 증자명령 등 `경영개선권고`를 내릴 방침이다.`권덕만씨가 HK의 실질 소유주이냐`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부분에서도 검사과정에서 확인되는 사항이 있다면 검찰고발 등을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HK의 실질 소유자에 대한 한국과 미국 댈러웨어주 법원의 판결이 나오게 되면 권씨와 PPRF의 의결권도 제한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한국경제 반세기)”지하경제를 잡아라”…금융실명제③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실명제 준비팀은 두 곳의 아지트를 거점으로 비밀작업을 진행했다. 한 곳은 대치동 휘문고교 앞에 있는 모 빌딩 사무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천 시내에 있는 주공아파트였다.◇ 해외출장 명령 받고 아파트에서 합숙대치동 사무실은 양수길 박사가 친구로부터 개인용도를 내세워 임시로 빌린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보안을 위해 “국제투자연구원”이라는 엉뚱한 간판을 내걸었다. 이 곳에서는 KDI팀이 주로 작업했으며, 이경식 부총리와 홍재형 재무장관, 양 박사 등이 밤늦게 까지 실명제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막바지 작업이 피치를 올리면서 과천 정부청사 부근에도 작업실이 필요해졌다. 야간작업만으로는 부족해 아예 합숙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 평촌과 과천 일대를 뒤진 끝에 두 달간 사용 조건으로 과천 주공아파트 505동 304호(48평)를 370만원에 세내 입주했다. 과천 작업실이 확보되면서 재무부의 임동빈 관세정책과 사무관과 최규연 외자정책과 사무관이 작업팀에 새로 합류했다. 이들은 89년 실명제 실시준비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막바지 합숙 요원으로 차출됐다.김용진 세제실장은 합숙에 참여할 이들을 합법적으로 빼돌리기 위해 해외출장 명령이라는 꾀를 냈다. 출장 명령은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금융종합과세에 대한 자료수집" 명분으로 내려졌다. 가짜 해외출장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임 사무관과 최 사무관은 출발 당일까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들은 실제로 해외출장을 가는 줄 알고 7월28일 공항에 나갔다가 현지에서 상황설명을 듣고는 몸을 숨겨 과천 안가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장기 해외출장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들은 과천 안가에서 국제전화를 사칭해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를 해야만 했다.김진표 심의관과 진동수 과장은 낮에는 과천 청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안가의 합숙작업에 참여하는 이중생활을 감수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이들은 아파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에서 내려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드나들었다.주거지역인 아파트 단지에 중년 남자들이 밤낮으로 들락거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상하게 비쳐질게 뻔했다. 작업팀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대학교수들인데 방학을 맞아 공동으로 논문을 쓰고 있다”며 “수시로 여러 사람이 드나들더라도 이해해달라”고 연막을 쳤다. 실명제 발표가 있은 후 이 아파트 경비원 강모씨는 “논문 작성을 위해 매일밤 불을 밝히고 일을 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며 “매일 엄청난 양의 폐지가 쏟아져 나와 의아스러웠지만 이들이 금융실명제를 탄생시킨 실무진이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술회했다.(경향신문 93년 8월14일)◇ “D데이는 8월12일“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발표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가를 놓고 작업팀내 논의가 전개됐다.발표 형태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하기로 내부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작업팀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8월중 주말을 놓고 택일에 들어갔다. 토요일을 고르다 보니 8월14일과 21일, 28일이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8월초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는데 발표를 8월 중순 이후로 미룰 경우 보안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컸다. 이 같은 이유로 21일과 28일은 후보에서 제외됐다. 남은 날짜는 14일이었는데 그 다음날이 광복절이어서 분위기상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런 저런 고민을 진행하는 와중에 대통령으로부터 평일도 상관없다는 언질이 내려왔다. 작업팀은 주저없이 목요일인 12일을 발표 D데이로 낙점했다. 12일 발표할 경우 다음날인 13일 금융기관 개점시간을 늦춰 1차 교육을 실시한 뒤 그날 오후와 토요일인 14일 오전에 약간의 실전을 경험하면 다시 일요일로 이어지는만큼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김 대통령이 실명제 발표 시점을 12일로 최종 확정한 것은 발표 사흘전인 9일 부총리와의 면담자리에서 였다. 이 부총리는 이날 작업팀이 마무리한 금융실명제 최종 방안을 보고하면서 발표 시점을 12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대통령이 이를 수락했다.하지만 D데이 확정 사실이 작업팀에 전달된 것은 발표 하루전인 11일 오전이었다. 보안을 위해 작업팀에도 바로 하루전에야 통지가 내려온 것이다. 작업팀은 과천시내 인쇄소인 `범신사`를 전세내 11일 오후 2시부터 발표문과 보도자료 등 관련 문서 인쇄에 들어갔다. 근 두달여 동안 진행해 온 실명제 준비팀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다음날인 12일 오전 이 부총리는 “대통령에게 내년 예산에 대해 보고할 것이 있다”고 연막을 치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실명제 실시에 관한 마지막 보고와 함께 대통령 담화문 원고를 전달한다.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3부 요인에 대한 사전 통지에 이어 오후 7시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됐고, 7시30분에는 대통령 담화문이 발표됐다. 또 오후 8시에는 부총리와 재무부장관의 특별 기자회견이 이루어지는 등 실명제 발표를 둘러싼 제반 일정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우려 딛고 ‘성공적 정착’김 대통령은 후일 금융실명제 실시를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자찬했다. 두번씩이나 ‘실시 검토’와 ‘유보’가 엇갈렸던 실명제 추진은 그만큼 지난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정작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세간의 우려는 눈 녹듯 사라졌다. 약간의 마찰이 있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실명 의무전환 마감일인 93년 10월12일, 재무부 최종집계 결과 가·차명계좌 가운데 실명전환한 금액은 5조6726억원에 달했다. 전체 대상계좌의 96%가 실명으로 전환한 것이다.경제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역시 기우였다. 실시 직후인 93년 3분기와 4분기 GNP성장율은 6.8%와 6.4%를 넘어서 실명제 실시전인 2분기의 4 .8%를 크게 웃돌았다. 실명제 실시 이후 오히려 경제 회복세가 더 뚜렷해졌음을 보여준다.증권시장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실명제 발표 당시 725포인트였던 주가는 그해 말 866포인트까지 올랐고, 94년 2월에는 970포인트까지 상승하는 등 한동안 초강세를 이어갔다.금융실명제의 성공적 정착에 힘입어 정부는 95년 1월 부동산실명제를 도입, 부동산 거래시에도 실명만을 사용토록 의무화했으며, 96년부터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시행하고 있다. KDI가 제시했던 3단계 금융실명제 방안 중 2단계까지가 법제화돼 실제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실명제의 효과는 이후 자금흐름 개선으로 명확히 드러났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기업 비자금이나 정치자금 등 검은 돈의 세탁과정이 드러나면서 철퇴를 맞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다 실명제 덕분이다.도입 과정에서 곡절이 있긴 했지만 금융실명제는 이제 너무도 당연한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금융계좌를 신설하려면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데 대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11년에 걸친 난산 끝에 도입된 금융실명제는 기존의 불투명한 금융관행을 바꿔 놓으면서 지하경제의 폐해를 뿌리뽑는 확실한 기저로 자리를 잡았다.
- (정명수의 월가키워드)Consumption Tax-2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소비세
소득세는 복잡하다. 일단 기업들은 법인세를 낸다. 동시에 배당을 받은 투자자들도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낸다. 이중과세인 셈이다.
소비세는 간단하다. 벌어들인 것 중에서 저축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소비세는 판매단계별로 부가되는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부과가치세(value-added tax:VAT)의 형태가 있고, 최종 판매 가격에 부과하는 매상세(sales tax)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총수입에서 저축과 투자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 세금을 무는 것으로 `consumed income tax`가 되는 것이다.
소비세는 정치적으로 잘 선전하면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잘 못하면 치명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소비세의 철학은 이런 것이다.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당신은 일해서 번 돈을 저축한다. 나는 일은 하지만, 저축하지 않고 모두 썼다. 그래도 당신과 나의 세금은 같거나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돼 있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반면 소비세(regressive)는 역진성을 피할 수 없다. "연봉 1000만달러인 부자가 2만달러짜리 자동차를 살 때나, 연봉 5만달러인 월급쟁이가 2만달러짜리 자동차를 살 때나 붙는 세금이 같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대선 당시 동시에 실시된 남부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짐 디민트 의원은 23%의 전국적인 매상세 도입에 찬성했다. 민주당 후보인 이네즈 테넨바움은 "디민트는 조제약에서부터 아이들 분유까지 세금을 물려서 값을 올리는데 동조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디민트는 결국 낙선했다.
소비세는 정치적으로 양날의 칼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점도 많다. 소비세는 잘 조직될 경우 소득세보다 중립성(neutrality)이 강하다. 이는 세금이 뭐냐는 질문과 연관돼 있다. 세금은 일종의 마찰이다. 지구상에서 모든 물체는 운동을 할 때 마찰을 받게 돼 있다. 투수가 멋진 커브볼을 던질 수 있는 것도 마찰 때문이다. 투수의 손가락과 야구공 표면 사이의 마찰 때문에 야구공의 회전 방향이 달라지고, 공의 진로도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세금이라는 마찰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 행위도 약간씩 왜곡된다. 세금이 없으면 경제 행위의 왜곡도 없다. 완전한 중립이다.
소득에 세금을 붙이면 사람들은 일을 할 것인지, 더 많은 여가를 즐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일한 것에 대한 댓가(임금)에 세금(마찰)이 붙기 때문에 노동에 대해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와 저축에서 발생한 소득에도 세금이 붙는다면 투자와 저축도 마찰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소비에 세금을 붙였다. 소득에서 저축과 투자를 제외한 부분에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저축에 대한 마찰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소득세에 비해 훨씬 중립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실례를 들어보자. 토마스는 연봉이 1만달러다. 세율은 25%, 금리는 5%, 인플레는 제로라고 가정한다.
소득세의 적용을 받을 때 토마스는 2500달러를 세금으로 낸다. 이제 7500달러를 소비하거나, 저축 또는 투자할 수 있다. 토마스가 저축을 했다고 하자. 첫해 375달러의 이자(7500달러의 5%)를 받았다. 그런데 이 이자에 대해서도 25% 세금, 93.75달러를 내야한다. 세후 순이자는 281.25달러로, 원금과 합치면 7781.25달러가 된다. 실질적으로 1년전보다 3.75% 증가했다. 실세 시장 금리는 5%다. 1년간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을 했는데, 그 댓가로 실세 금리 5%보다 훨씬 적은 3.75%의 이자만 받은 셈이다. 저축할 맛이 나지 않는다.
소비세의 적용을 받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토마스가 1만달러를 모두 소비하면 2500달러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실질적으로 7500달러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다. 토마스는 소비대신 저축을 택했다. 첫해 이자는 500달러(1만달러의 5%)인데, 역시 비과세다. 원리금은 1만500달러가 됐다. 이제 이 돈을 모두 소비한다고 하자. 25%의 소비세율을 적용받아 2625달러를 세금으로 내고 실질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돈은 7875달러가 됐다. 1년전 저축하지 않고 소비했을 때(7500달러)보다 정확하게 5% 소비 능력이 커졌다. 시장 실세 금리 5%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금 때문에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소비력 왜곡이 전혀 없다.
소득세의 경우 세금은 첫 해에 2500달러, 두번째 해에 93.75달러로 총 2593.75달러였다. 소비세의 경우 세금은 첫 해에는 제로(0)지만, 두번째 해에는 2625달러였다. 국가 입장에서도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소비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이다. 그린스펀 의장도 "소비세는 저축률을 높이고, 자본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세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동일한 세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세율이 불가피하다. 앞서 예에서도 2년간의 세수는 소비세 쪽이 많았지만, 첫해 소비세는 제로였다.
소비세는 저축과 노동에 대해서는 중립성이 강하지만, 소비에 대해서는 중립성이 현저하게 약하다. 다시 말해 소비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마찰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득세가 근로를 억제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하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는 소비다. 소비가 과도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소비를 억제해서는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저축과 투자에서 오는 득이 소비 감소를 충분히 상쇄시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느 쪽의 임팩트가 큰 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소비세의 역진성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비세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철학적,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소득은 노동과 자본의 산물이다. 이것은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데 대해 과세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소비는 사회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간 것이다. 소득 혹은 소비 어디에 과세하는 것이 더 형평에 맞는 것인가"
◇부시는 무엇을 노리나
소비세 도입 논쟁도 소셜 시큐리티 논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시는 "세금을 줄이고, 저축과 투자를 늘리는 것이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부시는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봐도 `가진 자`를 위한 제안이다. 부시의 구호를 따른다면 이미 오너(Owner)인 사람들을 위한 세법이다.
부시의 세제 개혁은 같은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보다도 노골적이다. 1986년 레이건은 세제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탈세 구멍을 막고, 세금 유예 조치를 없앰으로써 세율을 낮추는 정책을 구사했다.
반면 부시는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유예 조치로 소비를 한껏 자극해 놓고, 이제와서 저축을 장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소비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는 소비세를 도입함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벌어들인 돈(the money people earn)`에 과세하는 것에서 `쓰는 돈(the money they spend)`에 과세하는 것으로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단일 소비세는 앞서 살펴본대로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크다. 워싱턴 정가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것은 소비세와 소득세를 절충시키는 방안이다. VAT를 도입하고, 동시에 소득세율을 약간 낮추자는 것.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전격적으로 바꾸지 않고, `세법의 철학`을 바꾸면서 점전직으로 소비세를 도입한다는 전략이다. 철학의 변화는 실체의 변화보다 더 무섭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법 시스템은 소비세 체재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전략은 소셜 시큐리티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당초 부시의 초점은 세법이 아니라 소셜 시큐리티에 있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은 세법 개정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소셜 시큐리티 문제의 중요한 부분이 세금이기 때문에 세제를 고치면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정치적으로도 세제 개혁이 더 현실적이다. 세금은 지금 당장 유권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소셜 시큐리티는 미래 유권자들의 일이다. 공화당은 소셜 시큐리티와 세법을 놓고 민주당과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망한다"
합리적 선택이 파국으로 간다고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잘못된 것은 없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시의 감세 정책도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이었다. 유권자들이 부시 정책의 허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재정적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사실 부시의 정책은 엉터리다. 세금을 깎아줬지만,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떻게 정부 빚을 갚을 것인가. 세금을 더 내는 수 밖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이 세금을 내느냐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뉴저지 플레인즈보로에 살고 있는 이보나 안자도는 부시의 감세 정책 덕에 연간 1446달러의 세금을 덜 내고 있다. 그만큼 쓸 돈이 많아진 것이다.
그는 "(재정적자가) 문제는 문제죠. 그렇지만 즉각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것보다는 부채를 지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빚을 좀 지더라도 지금 쓸 것은 쓰겠다는 것.
부시가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세금을 붙인다고 할 때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죠. 불법 노동자들은 아예 세금을 내지 않죠. 소비세가 도입되면 이런 사람들도 다 세금을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옷을 사거나, 약을 살 때 반드시 세금을 내야하니까"
욕구를 줄이느니, 차리리 빚을 지겠다는 생각, 소득세가 더 공평하다는 생각이 부시의 자유주의적 정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안자도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 불법 노동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턱없이 싼 임금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소득층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극소수 부유층은 내야할 세금을 합법적으로 내지 않음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 현재의 누진세율 체제하에서도 부자들은 실질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임금에는 세금이 꼬박꼬박 붙지만, 배당세와 자본이득세가 낮아지면서 역진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
실제로 미국 최대의 갑부 400명은 실질 연간 소득세율이 18%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배당과 자본이득이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반면 연봉 10만~20만달러인 사람들의 실질 세율은 20.6%였다.
찰스 로소티 전 IRS 청장은 "IRS가 소득의 원천을 추적하는 능력을 공평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며 "과세 행정의 수요와 자원이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소득원천은 점점 더 찾기 어려운 곳으로 숨어들고 있는데, IRS의 예산과 인력은 월급쟁이들의 소득을 추적하는데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소티는 "이런 현상이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실토했다.
안자도처럼 평범한 미국인들은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안자도가 언젠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거대한 분열`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미국 전체를 삼켜버릴 지도 모른다.
- (edaily리포트)맨해튼의 대선주자들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한참 남아있는데, `차기`를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권을 향해 뛰는 주자들에게는 지금부터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할 겁니다. 최근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잇따라 뉴욕 맨해튼을 방문했습니다. 방문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애써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대선 주자들을 만나 본 정명수 특파원의 인상기입니다.
유력 정치인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보통 뉴욕 특파원들을 만나고 가곤 합니다.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혹은 워싱턴을 들렀다 LA로 가는 길에 뉴욕에 하루 이틀 머물게 되는 것이죠. 최근 2주 사이에 차기로 꼽히는 네 명의 정치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손학규 경기지사,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고건 전 총리, 그리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입니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 뉴욕이 아니라 보스턴 하바드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인터넷으로 강연의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기자의 눈`에 비친 이들 정치인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입니다. 네 명의 정치인을 오랫동안 지켜본 것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얘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혹은 연설을 들으면서 느낀 점을 중계방송하듯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런 정치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 볼 기회가 없습니다. 언론에서 한 번 걸러진 `이미지`만을 볼 뿐이죠.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모습, 예를 들면 어떻게 악수를 하고, 밥은 복스럽게 먹는지, 영어는 얼마나 잘하는지, 옷매무새는 어떤 지 등이 궁금하실겁니다.
손 지사는 지난 10일 맨해튼의 한 한국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미국 서부와 동부의 여러 기업을 돌며 외자유치 활동을 하고 귀국하는 길에 특파원들과 저녁 자리를 마련한 것이죠. 손 지사는 예정에 없던 상담 때문에 한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오는 손 지사는 진홍빛 넥타이를 매고 있었습니다. 그 색이 너무 강렬해서 검은 양복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동료 특파원 중 하나가 "넥타이 색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하자, 손 지사는 "맨해튼이 최첨단 패션 도시 아닙니까. 뉴욕 특파원들을 만난다고 하기에 신경 좀 썼습니다"라고 받아쳤습니다.
손 지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외자 유치 실적에 대해 줄기차게 설명을 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한정식 요리를 거의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기자들은 대선 출마 여부, 한나라당 내의 역학 관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의견 등 까다로운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손 지사는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일어서서 기자들에게 맥주잔을 채워주며 시간을 벌곤했습니다. 저녁 식사 내내 서너번 손 지사가 전체 특파원들에게 맥주를 손수 따라준 것 같습니다.
손 지사는 "다른 대선 주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박근혜 대표를 의식한 질문들, 예를 들면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보니냐"는 질문에는 "성별이 문제냐, 능력이 문제지"라는 식의 원론적인 답만 했습니다.
저녁 식사 막바지 요리가 끝나고 밥을 먹을 즈음 손 지사는 공기밥을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습니다. 질문에 답하느라 허기진 배를 순식간에 채운 것이죠.
손 지사와 저녁을 한 바로 다음날 민노당의 권영길 의원을 만났습니다. 국회의장을 수행해 워싱턴 정계 인사들을 만나고 가는 길에 뉴욕에 들러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연설을 하게 된 것이죠.
권 의원은 영어 연설문을 찬찬히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참석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권 의원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미리 배포된 연설문을 주시했습니다. 권 의원 자신도 연신 목뒤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습니다.
연설문에는 그러나 한미 동맹관계에 대해 아주 직설적인 의견들이 들어있습니다. 반미 감정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반미성향을 가지게 됐는지, 솔직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일문일답을 하는데 한 미국인 청중이 권 의원의 연설이 매우 참신하고, 솔직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정치인들은 "한미 동맹관계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에 박힌듯이 말했는데, 권 의원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일문일답은 통역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권 의원은 연설할 때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연설문에 담긴 `참신한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 미국의 잘못, 미국의 실수를 조목조목 열거했습니다.
일문일답 막바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회장이자,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그레그 씨는 "북한의 김정일도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결국에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권 의원은 마무리 연설을 하면서 "사실은 지난 세월 노동운동을 하면서 카다피로부터 여러차례 만나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카다피는 자신이 나서서 남북 문제를 풀어가는데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며 권 의원을 초청을 했다는 것이죠. 권 의원은 북한을 의식해서 카다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카다피를 만나볼까 생각해봤는데 이번에는 북한이 아마도 카다피를 신뢰하지 않을 것 같아서 리비아 방문이 꺼려진다"고 뼈있는 농담을 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번역된 권 의원의 `조크`에 미국인 청중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따로 만난 권 의원은 워싱턴 방문 결과를 담담하게 전해줬습니다. 한미 동맹, 북핵 문제를 보는 제3의 소리, 진보진영의 입장을 워싱턴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영어 발음은 신통치 않았지만, 권 의원의 이날 강연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느낌, 참신한 시각을 제공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영어 실력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지난 16일 고건 전 총리는 하바드 대학에서 북한 핵문제와 한미 동맹에 대해 연설을 했습니다. 영어 원고를 차분하고, 분명한 어조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준비를 많이 한 듯 했습니다. 마치 국가 기념식에서 총리가 기념사를 읽는 것처럼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고 전 총리는 그러나 일문일답은 통역을 통했습니다. 하바드 대학생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요, 고 전 총리는 모범답안을 알고 있다는 듯이 간결하게 답했습니다. "한국과 북한 사이의 경제적 협력이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로 인해 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고 전 총리는 통계 수치를 들어가며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개성 공단의 예를 들었습니다. "현재는 시범단지 2만8000평 공사가 완료돼 15개 남한 기업이 입주 중에 있다. 공사비는 어디로 갔는가? 한국의 토지공사, 건설업체들이 개성에 들어가서 공사를 했기 때문에 그 돈은 한국 기업에 남아 있다. 북한에 떨어지는 것은 토지 임차료 1평방미터당 1달러와 노임 일인당 월 57.5달러다. 개성 공단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입주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지 한참이 됐는데도, 이런 수치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이날 강연 내용은 권 의원과 비교해 볼 때 새로운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미 동맹, 북한 문제에 있어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잘 정리된 모범답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맨해튼의 한 중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워싱턴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을 만나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뉴욕을 거쳐 LA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박 대표가 식당으로 들어오는데 첫인상은 "키와 몸집이 참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체구가 작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오버랩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표는 튀는 옷차림새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럭셔리`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패션을 잘 모르는 기자가 보기에도 "좀 비싼 옷이다" 싶었습니다. 옷 값을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박 대표의 목소리 톤은 처음에는 매우 낮았습니다. 식당 내 음악소리와 다른 참석자들의 잡담 소리에 박 대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기자는 의식적으로 박 대표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박 대표의 화장, 머리 모양, 밥먹는 모습 등을 세심하게 관찰(?)했습니다. 52년생인 박 대표는 옷차림만큼 화장도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입술선과 눈화장 등은 매우 뚜렷했습니다. 머리 모양도 사진을 통해 본 박 대표의 어머니, 그러니까 육영수 여사처럼 고전적인 스타일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머리에 꽂혀있는 장식 핀도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제법 공들여 고른 것 같았습니다.
박 대표는 연이은 연설, 언론 인터뷰 때문인지, 약간 피곤해 보였고, 식사도 그렇게 맛있게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죠.
박 전 대통령 문제와 수도이전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분 등 박 대표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나왔습니다. 조용 조용하게 답하던 박 대표는 이런 질문들이 나오자 목소리 톤을 높여서 비교적 길고, 자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혼 의향은 없는가"와 같은 질문은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여유있게 받아넘겼지만, 정치적 핫 이슈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거나 `아버지를 극복하겠다`는 식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정치를 하던 시대와 지금 내가 정치를 하는 시대가 너무나 다르다. 아버지와의 차별성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산이면서 동시에 부채라는 점을 박 대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도, 아버지를 극복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정적들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되겠죠.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나라당 대표라는 정치인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벗어났습니다.
"수도이전 관련 법안의 처리는 당론대로 했다.(당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일단 합의를 했으면 지키는 것이 대표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겠다."
박 대표의 이 말은 "합의했으면 따라야 한다"로 요약됩니다. "따르지 못하겠다면...나가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점심을 마치고 식당 밖 자연광 아래서 악수를 하며 박 대표를 다시 봤습니다. 식당안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박 대표의 키가 훨씬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정치권에 "외모 리모델링" 붐
- [조선일보 제공] 지난달 28일 여야 원내대표회담에 나온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김 대표는 사진기자들에게 “염색 후유증으로 눈이 충혈됐으니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백발(白髮)’을 2003년부터 검게 염색하고 있다.
그 며칠 전인 24일 국회 교육위원장실에선 ‘피부 관리’ 얘기가 오갔다. 국회의원인 김진표(金振杓) 교육부총리에게 “얼굴 빛이 좋다”고들 하자, 김 부총리는 “지난 총선 때 유세 다니느라 햇볕에 노출돼서 그런지 피부에 실핏줄이 터지는 등 문제가 생겨 피부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박창달(朴昌達) 의원도 “나도 선거를 마친 뒤에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을 좀 소개해달라”며 두 사람이 정보를 교환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이마에 깊게 팬 주름을 없애는 주사를 맞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정치인들에게 피부 미용, 성형, 라식 수술, 모발 이식 수술, 잡티 제거, 주름 제거, 염색 등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젊어 보이기 위해’, ‘개혁적인 이미지를 위해’, ‘피부가 처져서’ 등 이유도 갖가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함께 눈꺼풀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는 과거처럼 쉬쉬하지 않고 쌍꺼풀 수술, 라식 수술 등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는 의원들도 있다. 국회에서도 ‘외모 만들기’가 이야깃거리다.
시력 교정 수술인 라식 수술을 받고 두꺼운 안경을 벗어던진 의원들도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은 지난해 10월 말 수술을 받고 안경을 벗었다.
신 전 의장측은 “새 마음 새 뜻을 품을 때 머리를 자르듯 미용이 아니라 변화의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우리당 김영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라식 수술을 받았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의원은 라식 수술을 받았지만 “안경 썼을 때가 훨씬 부드러워 보인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고 다시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있다.
미디어 선거전을 의식, 방송이나 사진이 잘 나오도록 하는 의원들의 노력도 눈에 띈다. 천정배(千正培)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대표 경선 직후, 카메라 기자들로부터 “뿔테 안경 때문에 눈이 자꾸 가린다”는 얘기를 듣고는 테 없는 안경으로 바꿨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할 예정인 권철현(權哲賢) 의원은 검은 빛 피부를 커버하기 위해 피부 로션을 바르고 있다. 권 의원측은 “TV에 나온 모습이 조금이라도 수척해 보이면 지역구민들이 ‘요즘 어디 아프시냐’고 전화를 걸어온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의원도 남성용 컬러 로션을 갖고 다니면서 방송 인터뷰 전에 바른다고 한다. 유 의원은 얼마 전 웨이브를 넣은 파마를 하기도 했다. 뻗치는 머리카락을 다듬기 위해서다.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장관은 개혁적인 이미지를 위해 머리카락 뒷 부분을 약간 들어올린 형태의 ‘아톰 머리’로 바꿨다.
방송 앵커 출신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도 정당 생활을 할 때 파우더를 갖고 다니면서 방송 인터뷰 전 ‘손수 화장’을 하곤 했었다. 98년 국민회의가 집권한 이후 한화갑 의원(현 민주당 대표)은 얼굴에 있는 검은 티를 제거했다.
여성 의원들은 다이어트에도 신경을 쓴다. 한나라당 송영선(宋永仙) 의원은 지난 1월 단식을 위해 경희대 한방병원에 며칠간 입원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얼굴에 거의 주름살이 없다.
언론인 출신인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도 온통 ‘하얀 머리’였지만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염색을 하고 머리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요즘 과거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과거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를 보좌했던 한 관계자는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을 커버하기 위해 온갖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정치인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외모를 위해 정치인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세상이다.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우. 특유의 ‘올린 머리’를 매일 아침 직접 매만진다.
지난달 대구 지하철 참사 2주년 추도식에 참가한 박 대표는 비가 오는데도 우비에 달린 모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머리가 망가질까봐 모자를 쓰는 일도 드물다. 50살이 넘은 박 대표는 요즘 머리 앞부분에 흰 머리가 늘었지만 “자연스러운 게 좋다”며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