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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aily리포트)대우정신을 살리는 길
- [edaily 조진형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여만에 귀국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과거 세계경영을 부르짖던 그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전에 비해 많이 야위고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김우중식 경영에 대한 재평가에서부터 동정론, 단죄론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 해석이 제각각입니다. 정작 본인은 침묵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온 국민의 관심은 김 전 회장의 입에 쏠려있습니다. 증권부 조진형기자 역시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큰 우주(大宇, big universe)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기적의 사나이(miracle man)".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우리 민족의 미래라고 봤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큰 우주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해체되기 직전 대우는 국내 40개 계열사와 396개의 해외현지법인을 거느린 초국적기업이었습니다. 18조3000억원의 자본총계와 83조8000억원의 자산, 62조8000억원의 국내매출을 자랑했습니다. 그 대기업을 호령하던 김 전 회장이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김 전 회장의 원대한 세계경영 정신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수출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그는 세계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는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며 1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고 하루에 3시간은 비행기에서 보냈습니다. 한국의 징기스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지난 2002년 김용옥 교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국내의 기업들과 국내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해외시장개척에만 주력했습니다. 8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해외에서 판매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식의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우는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데 성공했습니다. 특별 전세기로 남미, 동유럽, 유럽 등을 누비며 대우와 코리아를 심어놓던 그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희망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우는 해외금융으로부터 끊임없이 자금을 조달해야했고, 멈추면 곧 쓰러지는 자전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만 했어요. 성장주의노선을 대우가 견지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약소국으로서,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일어난 우리 조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로서 어떤 필연적 역사적 운명이 우리에게 부과되었던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의 원대한 세계경영을 바탕으로 한 대우정신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었지만 대우는 그 정신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우정신이 대우를, 넓게 보면 시장을 너무 앞서나갔습니다. 세계를 개척하려는 의지는 컸지만 이에 대한 밑바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암세포의 번식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대우는 스스로 일으킨 기업이 거의 없고 주로 부실기업을 인수해 성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 전 회장이 스스로 키운 것은 (주)대우가 유일하다는 핀잔이 나올정도였지요.
그는 특히 산업중심인 제조업에 기반을 두지 않고 무역과 금융을 통해 그룹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이런 성장과정을 보이던 대우는 세계경영이라는 기치 아래 부채를 늘려 문어발식 확장을 꾀했습니다. 자연히 막대한 부채가 생기고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바닥까지 추락한 것입니다.
막대한 부채를 막기 위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끝없이 발행하면서 투신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부채비율이 높았던데다 잦은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서도 외면받았습니다. 300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손실을 입히고 나라 경제를 휘청이게 해 국민 대다수에게 부담을 안겨준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의 목표는 미래지향적이었지만 그의 수단은 과거회귀형이었던 까닭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친 김 전 회장은 로비의 귀재라는 평을 듣습니다. 새로 기업을 세우지 않고 남의 것을 차지하려다 보니 권력층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는 초라한 모습으로 공항에 나타난 김 전 회장에게서 원대한 경영이념을 이루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경제사의 바탕을 보는 듯했습니다. FT는 대우그룹 파산이 세계 최대 규모이며 한국 최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고 "이제 한국 경제사의 한막이 끝나가고 있다"고 표현했더군요.
FT의 지적에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FT가 지적한 수수께끼를 반드시 풀어야 할 것입니다. 경제가 새로운 토양위에서 발전하기 위한 통과의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스스로 일구지 못한 세계경영의 이념을 차세대 기업인들이 이루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수께끼를 낱낱이 풀어줘야할 것입니다.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에서 그는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김우중이라는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꿈이 실현될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김 전회장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잘못을 숨김없이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또 세계경영을 가로막았던 요인들을 들춰내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정·관계와 기업의 유착관계도 그 암적 요인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만이 대우는 죽었어도 대우정신이 영원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기우에 그치길 바라겠지만 혹시라도 김우중리스트를 둘러싼 정치적 계산법이나 야합, 협상에 동조하거나 휘둘려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이 먼 훗날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하는 바람입니다.
- 美 항공사들 올여름 `적자탈출`할까
- [edaily 김경인기자] 지난해 잇따라 사상 최고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던 미국 항공업계가 여름 성수기 진입을 앞두고 `적자탈출`의 단 꿈을 꾸고 있다. 대대적인 비용 삭감과 지속적인 가격인상을 단행한 터에 성수기로 수요가 급증할 경우 적자는 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업계를 휘돌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항공사들이 순이익을 내기는 여전히 멀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항공 수요는 가격 탄력성이 강해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저가 항공사들을 당해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미국 항공업체들이 손익분기점에 매우 가까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진단한다.
제라드 그린슈타인 델타 에어라인 최고경영자(CEO)는 이른바 `5% 솔루션`으로 델타의 적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공업체가 승객당 운임료를 5%만 인상할 수 있다면, 높은 연료비를 상쇄하고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컨설팅업체 포트 워싱턴의 R.W. 만도 비슷한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교통부의 데이타를 근거로 분석한 결과, 10개 주요 항공업체들이 고객당 매출을 6%, 약 8.5달러 높일 경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항공업계의 2분기 영업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올들어 소폭 가격 인상을 반복해 왔고 2분기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로 수요도 증가해, 업계의 적자탈출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NYT는 그러나 이들의 논리에 두 개의 구멍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아무리 성수기라지만 고객들이 보다 높은 운임료를 지불하면서 까지 비행기를 이용할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 둘째, 몇몇 수익성 있는 저가 항공사들이 대기업을 따라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린슈타인 CEO 역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는 "인터넷이 여행자들에게 여행에 있어 최저 비용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며 "그것은 모든 코너마다 주유소가 있는 고속도로 교차로와 같은 상황으로, 단 1페니라도 요금이 높다면 영업이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저가 항공사인 인디펜던스 에어의 마케팅 부사장 에릭 노드링은 "항공 수요는 매우 탄력적이어서 가격에 극도로 민감하다"며 "1위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가 가격 인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주에 창업 1주년을 맞은 인디펜던스 에어는 워싱턴 델레스 공항에서 웨스트 팜 비치까지 편도 티켓을 단돈 29달러에 팔고있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인디펜던스가 조만간 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디펜던스는 재정문제에도 불구하고 생존해 업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R.W. 만 연구원의 데이타에 따르면 지난해 사상 최대 손실을 낸 몇몇 항공업체들은 승객당 매출을 17% 가량 높여야 간신히 적자를 면할 수 있다. 아울러 감원 등을 통해 대대적인 비용 삭감도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가격 인상을 통해 매출을 부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일례로 지난주 델타,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컨티넨탈, 노스웨스트 등이 일부 주요 루트의 항공요금을 인상했으나, 이후 예약률이 급속히 낮아지자 가격 인상을 번복하기도 했다.
NYT는 "이른 새벽과 밤 시간 탑승률이 저조해 프라임 시간대의 경우 탑승률 80% 가량을 기록해야 한다"며 "성수기임을 고려하더라도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회복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 NYT "日 휴대폰 총체적 위기"
- [edaily 김경인기자] "전자제품의 최강국"하면 무조건 일본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일부분 사실이긴 하나 그 대상이 휴대폰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외형에선 유럽 업체인 노키아가 패권을 잡았고, 기술면에선 삼성전자(005930)의 행보가 눈부시다.
점진적으로 위축된 일본 휴대폰업계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내수시장에서 근근히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3세대(3G) 휴대폰이 본격화되면서 해외 거대기업들의 일본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어 그나마 밥그릇 지키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일본 휴대폰업계가 해외와 국내 양 시장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지나치게 많은 업체수와 보조금 지급 관례 등이 업계의 경쟁력을 좀 먹고 있다고 경고했다.
◇日 휴대폰업계, 내수시장서도 위기
일본 휴대폰업계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시작해 유럽, 그 너머로 텃밭을 넓히는 단 꿈을 꿔왔다. 그러나 오히려 적자에 못이겨 핵심시장에서 잇따라 철수,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전락해 버렸다.
도시바는 최근 중국시장으로부터 휴대폰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미쓰비시 일렉트릭은 노키아를 비롯한 세계 기업들과의 공격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 본 뒤 유럽시장에서 퇴각했다. 결국 편안한 국내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일본 업체들은 세계 수요의 약 7%를 차지하는 내수시장에서 독점적 우위를 점해왔다. 일본 2G 휴대폰 네트워크가 독특한 일본산(産) 기술에 기반해, 해외 업체들의 진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일본 휴대폰 사용자들은 고속 3G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글로벌 W-CDMA 표준으로 옮아가고 있다. 해외 기업들이 시장에 침투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선도 무선업체인 NTT도코모가 올 회계연도(05년4월~06년3월)의 하반기가 시작되는 10월경 노키아 제품인 3G폰을 런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코모 또한 올 여름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모토로라 폰을 판매할 계획이다.
키무라 미치코 IDC 애널리스트는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을 가지고있는 한 괜찮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해외 거대기업들이 조만간 국내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고, 일본 업체들이 내수시장을 잃는다면 그것은 곧 마지막 보루가 함락하는 셈"이라고 평했다.
◇정부 보조금 관행, 오히려 악영향
IT강국 일본의 휴대폰업계를 부식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NYT는 지나치게 많은 업체 수가 영업과 투자의 효율성을 저해했고,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한 결과 가격경쟁력과 자생력이 약해졌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휴대폰업체는 NEC, 마쓰시타 일렉트로닉, 교세라, 샤프 등을 포함 총 12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업체의 총 출하량은 세계 업계 1위인 노키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한되고 포화된 국내시장을 두고 12개사가 머리터지는 싸움을 벌이느라 실적은 위축되고 리서치 투자는 분산되며, 생산성 개선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선두사인 NEC와 마쓰시타 조차 지난 회계연도 휴대폰 사업부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가격 경쟁력이 낮은 점도 문제다. 해외시장의 평균 휴대폰 판가는 150~200달러 수준이나, 일본의 경우 400~500달러에 달한다. 일본 업체들은 정부로부터 몇백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소매가격을 낮추는데 사용해왔다. 단기적인 이득을 희생해 장기간 소비자들의 사용료를 통해 충당해 온 셈이다.
시마다 요키히코 UFJ 쓰바사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업체들은 보조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홈 그라운드에서 게임을 해왔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적응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카가와 수구루 요노 리서치 인스티튜트 리서처는 "일본에 너무 많은 휴대폰 업체가 있고 모두 좋지 않은 재정상태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 중 일부는 퇴출이 옳은 해답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적 우위 등 경쟁우위도 뺐겨
일본의 가장 큰 장점은 우수한 고가품과 눈부신 기술력이었다. 그러나 이 두 요소 또한 더이상 일본의 강점이 아니다. 고가품 수요가 큰 선진국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새로운 이머징시장은 저가품 선호도가 높다. 기술적 우위 또한 한국 등 해외업체들에게 빼앗겨버렸다.
미쓰야마 나호코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성숙한 선진국 시장의 극심한 가격 경쟁이 업계의 마진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의 저가제품 부문은 대규모 수요가 존재하는 곳이지만, 고가품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심지어 일본 휴대폰업계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었던 기술적 혁명 분야에서도 한국 라이벌들에게 뒤쳐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포토-스내핑 기술은 일본 휴대폰업계가 먼저 개발했지만, 카메라폰을 세계에 대량 판매한 것은 삼성전자와 같이 민첩한 타국 기업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카메라폰에 있어 일본 업체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작년 10월 세계 최초로 5-메가픽셀 모델을 런칭했으며, 지난 3월에는 7-메가픽셀 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수구루 리서처는 "7-메가픽셀 모델이 잘 팔리느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 그런 제품을 소개함으로서 삼성전자가 진보한 기술을 가진 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이명희 신세계 회장 "아버지 처럼 되는게 꿈…"
- [조선일보 제공] “솔직히 말해 국내에서의 작은 성공에 만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국내에서 제일이 된다든지 국내 경쟁에서 이긴다든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본을 축적하여 차례차례 새로운 기업을 개척함으로써 선진 외국과 당당히 맞서 이긴다. 그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세계 경제라는 격전지(激戰地)에서 싸워야 하는 우리에게 고(故)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 회장의 이 말은 등짝을 휘갈기는 채찍처럼 들린다. 이 회장이 20년 전에 했다는 이 말은, 그의 3남5녀 중 막내딸이자 신세계(004170)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명희(李明熙·62) 회장이 가장 소중히 품고 있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이명희 회장은 오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기업관과 철학,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배워 기업을 우량기업으로 일군 자신의 이야기를 밝혔다. 국내외 언론을 막론하고 그가 인터뷰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지와의 독점인터뷰는 지난 3일 강효상 산업부장이 이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으로 찾아가 2시간20분 동안 이루어졌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아버지처럼 사진찍기를 싫어해요.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자신도 없고요. (웃으며) 이번 인터뷰도 1주일 동안 연습한 거예요. 가려져 있는 것을 좋아했고, 사실 영원히 가려져 있고 싶었어요. 우리 직원들도 제 얼굴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신세계로선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현재 증축 중인 본점이 오는 8월 다시 오픈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삼성그룹에서 분리한 이후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삼성그룹에 함께 있는 동안은 신세계가 발전할 수 없었어요. 삼성의 지원은 대부분 전자나 반도체에만 집중됐지요. 그래서 오빠(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나 분리할래요’라고 말했어요. 분리할 당시 신세계는 백화점 한두 개와 조선호텔 정도였지요. 오늘날 이처럼 성장한 데에는 국제감각이 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섯 살짜리가 성인이 됐을 때는 현재 있는 직업의 90%가 사라질 것이다’는 무서운 말이 있어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마트’도 회장님이 낸 사업 아이디어였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황했어요.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프라이스클럽(회원제 창고형 할인점)과 월마트(할인점)를 가봤어요. 창고형 매장인데 TV가 너무 쌌어요. 50달러, 100달러였어요. 고장도 안 나고 잘 나오더라고요. 한국에서도 할인점을 해보자고 첫 매장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전문경영인에게 전적으로 회사를 맡기십니까?
“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전문경영인을 두고) 너무 나서면 웃기는 일이죠. 그러나 브리핑을 듣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나섭니다. 일하는 사람을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 치켜세워야 합니다. 경영은 맡기지만 나중에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요.”
―인재는 어떻게 키우십니까?
“아버지는 인재를 나무기르듯 기르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직접 면접을 보셨어요. 사람들은 아버지가 면접 때 관상(觀相)을 본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길러야 할 사람이라면 기회도 주고 끝까지 지켜봅니다. 동기부여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툭 말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순발력을 보는 거죠. 남이 자기에게 반하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그 사람에게 반해야 해요. 그러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회사 일을 맡게 됐나요?
“학창시절 제 꿈은 현모양처였어요. 결혼해서도 집에만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회사에 나오라고 하셨어요. ‘아버지 전 못합니더’라고 했죠. 자꾸 뒤로 빼니까 나중엔 화를 내셨어요. 여자도 앞으로는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백화점 사업을 하게 된 것은 그 분야에 소질이 있어서였나요?
“모든 자식이 다 회사를 물려받지는 않았어요. 제가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변화무쌍한 것,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 백화점 사업을 맡기신 것 같아요. 한때는 6개월간 기자생활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출근 전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 말씀하셨어요. 첫째가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닙니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라는 것이죠. 대신 믿지 못할 사람은 아예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무한추구죠.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는 빨리 진행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아버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죠?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연도 참 많아요. 조용필의 노래 ‘허공’을 들어보면 아버지와 저의 관계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와의 모든 약속과 사랑이 허공 속에 사라졌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는 왜 저러시지’라고 불평할 때도 전 ‘아버지처럼 해야지’라고 다짐했어요. 형제 중 저만 아버지처럼 메모하기를 좋아해요.
(이 회장은 매일 쓰고 있는 메모장(다이어리)을 보여줬다. 다이어리에는 굳은 결심에서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구두 사진까지 다양한 자료와 단상이 적혀 있었다.) 제 금고 안에 이런 공책이 20권 정도 있어요. 저는 편식 습관까지 아버지를 닮았어요. 아버지는 스트레스까지 즐기셨지만 전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가는 편입니다.”
―이병철 회장님이 반도체를 시작하려 했을 때 참모들의 반대가 많았지요?
“고민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는 68세 때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서 73세 때 64K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셨어요. 병상에서 암과 투병하시면서도 반도체 실적을 보고받으셨어요. 우리보다 앞선 세대셨던 아버지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시대를 내다보셨는지, 그분의 선견지명에 놀라울 뿐입니다.
아버지는 늘 왜 우리나라에 장보고의 동상이 없는지 궁금해하셨어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장보고와 아버지는 뜻을 같이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는 자주 나가십니까?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과 뉴욕을 다녀옵니다. 1년 이상 해외에 다녀오지 않으면 패션을 따라가지 못해요. 저는 외국을 갖다오면 완전히 바뀌어 돌아옵니다. 미국에 가면 건축에 빠지고, 미술감각도 달라져 돌아옵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드시 사진을 찍습니다. 그 물건이 몇 달 뒤엔 꼭 제 앞에 있어야 해요. 추구하지 않고 감동받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어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남산에 운동하러 갈 때 만나요. 오빠가 가끔 집으로 오라고도 합니다. 집안 문제 가지고 의논하죠. 가족끼리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할 때 말이죠. 홍 관장(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현재 삼성미술관인 ‘리움’ 관장)하고도 친하게 지내요. 서로 나이도 비슷하고, 자식들 나이도 비슷하니까요. 판단 기준도 비슷해요.”
―선대 회장님과 오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성격은 아주 달라요. 물론 예민한 건 우리 셋이 다 닮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파악하세요. 아버지는 계획적이고 통제적이시죠. 오빠는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고 철학적이며 한없이 관대하죠.”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십니까?
“9시쯤 일어나서 제일 먼저 신문을 보면서 기고문, 경제·교육분야 기사 등을 스크랩합니다. 원본은 따로 스크랩하고 복사한 종이는 다이어리에 붙여요. 식사 후에는 책을 봅니다. 요즘은 책을 보면 어깨가 아파서 다른 사람보고 읽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창조적 마인드’(하워드 가드너 지음)같이 너무 좋은 책은 직접 읽어요. 밤에는 시사프로그램 등 TV를 봅니다.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려요.(자신이 직접 스케치한 언니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얼굴과 자화상 등을 보여줬다.) 대학들어갈 때는 그림을 입학하기 위한 ‘무기’로 배웠지만 지금은 즐겨요. 앞으로 한문글씨도 배우고 싶고 펜글씨도 배우고 싶어요.”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1년 동안 8㎏을 뺐어요. 살찌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드니까 먹는 것을 방치해서인지 자꾸 살이 찌더라고요. 어느날 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번 결심한 것을 안 하면 전 입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아요.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달려듭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어요. 저녁은 샐러드를 겸해서 먹고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어요. 골프와 남산을 걷는 것이 즐기는 운동입니다.”
―오는 8월 오픈하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어떤 곳이 되길 바라십니까?
“지금 한국 백화점들은 그게 그겁니다. 내 콘셉트는 차별화입니다. 손님들이 ‘신세계는 도대체 어딜 가서 이런걸 뽑아왔어?’라고 할 정도로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업체에 백화점 매장만 빌려주는 임대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물건을 사서 들여 놓을 겁니다.”
―신세계 그룹이 장래에 삼성그룹을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십니까?
“아직 세상 끝난 것 아니잖아요? 백화점만이 유통은 아닙니다. 유통은 무궁무진한 세계입니다. 빨리 아이디어를 내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해요.”
―언제가 가장 보람있는 때입니까?
“아버지가 평가받으실 때입니다. 제가 일군 이마트도 자랑스럽지만 아버지처럼 되는 게 제 꿈입니다. 오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제 처지도 보람있어요. 그것은 저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있어서 아닙니까? 하지만 앞으로 10년 동안은 대면 인터뷰를 안 할 생각입니다.(웃음)”
―신세계의 미래 비전을 말씀해주시죠.
“비전이 크지요. (유명 브랜드) 아웃렛도 해야 하고, 홈쇼핑, 소프트웨어도 팔 겁니다. 이마트에서는 지금 하드웨어만 팔지만 앞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 갖가지 소프트웨어도 살 수 있게 할 겁니다. 또 세계에서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2013년까지 신세계를 세계 10대 유통그룹으로 키울 겁니다. 국내에 이마트를 130개, 중국에도 이마트를 25개까지 늘릴 겁니다. “
―그룹의 임직원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으십니까?
“이 상태에서 행복을 유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제가 30대에 하루는 골프를 쳤어요. 파 포(par four) 홀에서 잘 쳐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 치느라 바빠 저만 나무 밑에서 쉬었어요. 모자를 벗으며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불행이 오면 어떡하나’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행복할 때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신용분석의 세가지 색깔(2)
- [edaily] (1편에서는 신용분석의 3대축 가운데 신용평가사에 대해 주로 다루었으며, 2편은 투자자인 자산운용부문과 증권회사의 신용분석에 대한 것입니다.)
회사채 가격체계는 신용등급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직접신용시장의 신용분석도 평가사의 신용등급에 대한 검토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신용등급을 추종한다면 시장의 신용분석은 의미가 없다. 시장은 신용등급의 적정성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변화 방향을 예측하여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시장은 대개의 경우 평가사의 신용등급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스프레드 확대는 평가사 신용등급의 신뢰도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과 다름없고, 당국의 규제정책에 대한 입장표명은 신용평가사의 존립기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밀고 당기면서 관계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 자산운용부문 신용분석의 비약적 성장
최근 수년간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은 신용분석의 3대 축 가운데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2000년 채권시가평가 도입 당시만해도 자산운용부문에서 신용분석 전문인력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기관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회사채 투자규모가 작아 신용분석 전문인력이 입지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는 기관도 있고, 반대로 적지 않은 회사채 투자규모에도 불구하고 전문인력 없이 꾸려가는 기관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신용분석 전문인력 확보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카드위기 이후 시장의 불안심리로 인해 등급과 가격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상당 기간 지속되었고, 적극적으로 회사채 투자에 임한 투자자들은 모두 높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도 꽃이 피는 일방적인 흐름에서는 오히려 신용분석 전문인력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다. 일방적인 스프레드 축소의 계절이 지나고 저평가 종목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진검 승부가 시작되는 재미있는 상황이다.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국고채 중심의 자산운용이 어려워질수록, 경쟁자가 회사채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회사채 투자확대의 필요성은 커진다. 이미 그런 흐름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 자산운용부문의 신용분석 네트워크
조직의 연륜이나 규모를 생각한다면 개개 자산운용조직의 신용분석 역량을 평가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산운용부문 전체의 신용분석 역량은 그리 간단한 수준이 아니다. 판단 하나하나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절박함도 있겠지만, 시장에 폭 넓게 형성된 네트워크의 현실적인 위력 때문이다.
신용분석에서 나 홀로의 판단은 항상 위험하다. 원론에 입각한 토론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의 여건에서 개별 기관이 내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할 만큼 충분히 많은 신용분석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시장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제약을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편이며 그 자체가 새로운 위력을 낳는다. 리스크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는 쏠림을 만들고 이는 다시 평가사에게 전에 없던 압력이 되고 있다.
사실 네트워크라는 성격 규정은 매우 조심스럽다. 귀 밝고 입 무거운 것이 미덕인 자산운용부문의 문화도 그렇거니와 현실적으로 기회까지 공유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리스크 요인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 형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시장의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 이상의 신용위험 관리수단은 없다는 점이다. 시장의 아이큐는 2,000 이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 증권회사 신용분석의 화려한 꿈은 그냥 꿈인가?
2000년 채권시가평가 도입 이후 시작된 시장의 신용분석 역사에서 증권회사 페이지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신용분석 전문인력도 얼마 되지 않고 역할도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꿈만은 화려하다. 아니 오히려 꿈만 놓고 보면 다른 어떤 부문도 이만큼 화려할 수는 없다.
기업금융 업무의 비중확대는 주요 증권사의 중장기 비전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이러한 비전이 실현된다면 신용분석 역량은 당장 수십 배 확충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신용분석 역량은 평가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비전은 좀처럼 알을 깨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증권회사의 역할은 기업금융(IB)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단순중개업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업금융의 부진은 회사채시장의 성장과 안정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딱히 한가지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저런 모순이 뭉쳐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적으로 증권회사 스스로가 기업금융에서의 가치제고에 소극적이다. 어느 정도의 리스크 부담이 필수적이지만 위기의 경험과 인식의 부족으로 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리스크 부담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할 수단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영양가 있는 대형 거래는 모두 외국 투자은행(증권회사)의 차지가 되고 있다.
제도적인 모순도 매우 큰 걸림돌이다. 수천억원의 회사채발행절차가 십수억원의 기업공개만도 못하다. 특히 해외채권 발행절차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회사채 투자자들은 역차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정 국책은행에 의한 시장 싹쓸이도 큰 부담이다. 연못 속의 고래 때문에 도무지 시장의 질서를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만 할 길이라면 한걸음이라도 먼저 내딛는 것이 정답이다.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저런 변화가 태동하고 있다. 카드위기 이후 회사채 소매시장의 급성장을 보자. 초반에 이를 주도한 증권회사가 탁월한 성과를 올리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Jealousy is my middle name).
최근의 은행대전이나 금융규제완화에서는 보다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다. 구조조정기에서 확장기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기업금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너무 큰 기회이자 해볼만한 도전이다. 그리고 이에 다가서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열쇠가 바로 신용분석 역량이다.
◇ 보다 깊은 대화가 시장의 발전을 이끈다
생태계의 놀라운 균형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절묘한 역할나누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네 금융시장도 다양한 형태의 생존경쟁과 역할나누기를 통해 매일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간다. 회사채신용분석도 마찬가지다.
회사채시장과 신용평가는 조금씩 입장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서로가 서로를 끌어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따라서 최근 평가사 서비스 향상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커지는 현상은 시장의 신용분석 역량 향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장은 평가사에게 보다 실질적인 기여를 구하고, 평가사는 이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의의와 방향성을 확인한다. 평가사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시장발전을 위한 고민을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대화의 과정이다. 보다 깊어진 대화는 또 한걸음의 시장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Credit analyst
- "삼국지" 만화가 고우영씨 타계
- [조선일보 제공] 만화가 고우영(高羽榮) 화백이 25일 낮 12시30분 입원 중이던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6세. 고인의 가족들은 “3년 전 수술을 받았던 대장암이 최근 재발해 폐와 뇌로 전이돼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한국 만화계의 거대한 뿌리’ ‘국민 만화가’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고 화백처럼 세대를 가로지르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작가는 찾기 힘들다.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이후 부모의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피란길에 오른다. 만화계에 데뷔한 것은 중2 때인 부산 피란 시절. 형 둘이 모두 만화가여서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부산에서 만화 ‘쥐돌이’를 출간하며 데뷔했다. 고3 때는 요절한 둘째 형 고일영이 ‘추동식’이라는 예명으로 연재하던 만화 ‘짱구박사’를 ‘추동성’이라는 예명으로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인기 만화가 대열에 올랐다. 일본에서 활약하던 최배달의 스토리를 ‘대야망’이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역시 고우영이란 이름 세 글자를 대중들의 마음에 새겨넣은 것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사극(史劇) 시리즈다.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에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18년 동안 ‘수호지’ ‘삼국지’ ‘초한지’ ‘서유기’ ‘열국지’ ‘일지매’ ‘십팔사략’ 등의 고전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 만화계에 최초로 등장한 본격 패러디 작가라는 후세대의 별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이다.
특히 1978년 연재하기 시작한 그의 대표작 ‘고우영 삼국지’는 일본 극화와는 전혀 다른 그림체, 특유의 익살스러운 대사와 파격적인 전개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됐다. ‘쪼다’로 묘사된 유비, ‘폼나는 인물’로 그려진 관우는 그만의 참신한 해석이었다. 또 ‘수호지’에서 창조해낸 반금련의 기둥서방 ‘무대’는 좁쌀 같은 외모에 한없이 순박하고 바보스러운 캐릭터로 당시 대학가에 ‘무대 클럽’이 생길 정도였다. “상상력은 만화가의 밥”이라는 지론처럼, 그는 동양 고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버무려,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빚어낸 것이다.
고 화백은 당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18년을 연재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평균 20시간이 작업시간이었다”면서 “꿈에서 있었던 일을 줄거리에 옮긴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회고했다.
고 화백은 만화가협회 제15, 16대 회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과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예인 우정상을 받았다.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1970년대에 당국의 검열에 걸려 삭제당했던 부분을 되살린 복원판을 내놓는 등 ‘영원한 현역’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본지에 “내 인생과 한국만화 100년 역사를 만화로 정리하겠다”고 제안하며, 2회분의 원고를 보내왔다. 하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창작엔 은퇴가 없다”던 자신과의 약속은 하늘나라에서 계속 이어지게 됐다.
신문수 화백은 “고인은 ‘국민 만화가’로 불리며 우리 만화계에 큰 자취를 남긴 분”이라며 “우리 만화계에서 아까운 선배가 떠나셔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인희씨를 비롯해 장남 고성우씨 등 3남1녀.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 (031)901-4799.
- (투자!定石이 해답이다)①개미도 돈 벌 수 있다
- [edaily 김춘동기자]저금리와 수명 연장으로 개인 자산관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정석(定石)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과거와 같이 단기매매, 뇌동매매, 올인투자로 일확천금을 노리다가는 원천적으로 재기가 불가능한 사태를 맞이할 위험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투자문화가 성숙하면서 이른바 "대박"이나 "로또식"투자 보다는 "가치" 혹은 "펀더맨털"투자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냈다는 결과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도 있다.
미국 제2위 투자회사인 뱅가드그룹의 설립자이자 세계적 투자가로 명성이 높은 존 보글(John Bogle). 워렌 버핏과 어깨의 나란히 하고 있는 월가의 전설이지만 그나 워렌 버핏이나 세계의 투자자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던 성공 비결도 바로 정석투자였다.
존 보글은 대박을 노리는 단기투자를 도넛에 비유한다.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된다는 이유에서다. 정석투자는 딱딱한 빵인 "베이글"이다. 씹기에도 딱딱해 먹기에 불편하지만 영양이 많아 몸에 좋다.
이 말은 "양약은 입에 쓰나 병을 치료하는 데 이롭다"는 옛말과 같다. 이데일리는 주가가 본격적인 네자릿수를 넘나들고 있는 1000포인트 시대의 개인 투자전략도 정석투자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왜 정석투자인가에 대한 기획시리즈 7편을 테마로 묶어 소개한다.[편집자註]
◇개인 투자자는 봉?
과연 개미들도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소위 개미들이 주식투자로 돈을 번 경우는 기껏 5%미만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개인은 주로 대박의 꿈만 가지고 소문에 기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기 때문이다. 종목선택의 일관성도 매매원칙도 없다. 더 오르겠지 이익실현을 주저하며, 이제는 오르겠지 손절매를 망설인다.
더구나 하루에 수 천억원씩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과 리서치센터의 정보력, 선물·옵션과 같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외국인과 기관에게 견주어 볼 때 객관적으로도 절대 열세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계금융자산의 주식투자 비중이 가장 낮은 반면 개인의 직접투자 비중은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증시는 고위험·고수익 시장으로 투자보다는 투기의 성격이 강하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번 사례도 극히 드물다. 지난해의 경우 개인이 순매수 한 상위 20개 종목 중 14개 종목의 주가가 하락했다. 오른 종목은 5개에 불과했다.
반면 외국인 매수종목은 12개가 오르고 내린 종목은 5개에 불과했다. 지난 92년 증시개방 이후 12년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은 40%에 불과했던 반면 외국인 선호 30개 종목은 1057%나 올랐다.
주가지수가 936.06까지 올랐던 작년 4월23일과 921.44였던 지난 2월2일을 비교해 보면 외국인은 상승종목을 3조2637억원 매수한 반면 개인은 하락종목을 2조2358억원 매수해 대조를 이뤘다. 개인의 경우 상승종목은 오히려 4조3309억원어치를 매도했다.
◇대박의 꿈 쪽박의 현실
그렇다면 개인이 번번히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1: 개인투자자 K씨는 외환위기 당시 외국여행을 가기 위해 모아 두었던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약간의 애국심도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차익을 안겨줬다.
L씨는 자신만만했다. 월급으로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대박의 추억은 항상 대박을 꿈꾸게 했다. 투자대상은 KDS나 하이닉스 등 주로 주가 변동성이 큰 종목들이었다. 하지만 주가는 크게 떨어졌고 본전 생각에 주식을 장기 보유했지만 손실을 만회하지 못했다.
사례2: P씨는 2001년 초 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다. 주식을 사자말자 몇 일간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했다. 대박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코스닥은 폭락세로 돌변했고, 금세 원금을 까먹었다. 이 종목 저 종목 갈아타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한 동안 주식시장을 떠났던 P씨는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다시 객장을 찾았다. 이번엔 소위 테마주에 투자했다. 주가는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주식을 더 사지 못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에 투자금 전체를 올인했다. 날라갈 것 같던 주가는 급락세로 돌아서고 말았다.
사례3: L씨 역시 외환위기 직후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99년 주식을 시작했다. 증권사 직원과 친분이 있던 L씨는 소위 재료주에 주로 투자했다. 주가는 날아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오르면 팔아야지 했지만 결국 손실을 본 후에 내다 팔았다.
대박의 환상은 계속됐다. 한꺼번에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한 코스닥 종목에 다시 투자했다. 미수거래도 시작했다. 하지만 투자종목이 연일 하한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었다. 결국 투자원금은 10분의1로 줄어들었다.
사례4: J씨는 97년 지금은 없어진 모은행 주식을 매입했다. 외환위기로 은행주가 급락하자 소위 물타기로 원래 매입규모의 몇 배에 이르는 주식을 더 샀다. 결국 은행은 퇴출됐고 투자금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갔다.
◇개인투자자 성공의 비결은
그렇다면 개인은 주식시장에서 패배자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S씨는 개인투자의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우량종목을 중심으로 원칙투자에 나선 사례다.
주식을 시작한 지 수년째인 S씨는 여느 개인들처럼 `묻지마 투자`로 손해를 많이 봤다. 절치부심 S씨는 나름대로 투자원칙을 세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투자에 나섰다.
철저히 우량종목에만 투자했고, 손절매와 과감한 이익실현, 분산투자 등 투자원칙도 준수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꾸준히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손실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목표수익률을 낮추고 서두르지 않는 겸허한 자세도 배웠다. S씨는 이제 투기가 아니라 투자의 원리를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
◇"우량종목·손절매·분산투자가 관건"
개인투자자들은 공통적으로 대박의 환상을 가지고 주식을 시작한다. 한 두 차례 대박의 경험은 이러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손실은 수익의 몇 배로 돌아온다.
대박의 환상으로 종목선정에 일관성이 없고, 매매원칙도 없다. 실적이나 펀더멘털 보다는 소문이나 느낌으로 종목을 고른다. 투자하는 종목이 어떤 회사인지도 관심도 없다. 올인(all in)은 기본이다. 순간순간의 욕심이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매매 타이밍도 놓치고 만다.
반면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내재가치에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영혼의 투자가 존 템플턴은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이라"고, 예술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잘못 선택한 종목에서 손실을 만회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만식 삼성증권 온라인지원팀장은 "매매종목을 우량종목으로 한정하고 손절매와 분산투자 등 적절한 투자원칙을 지키면 개인들도 주식시장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