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상을 경험한 젊은 학생들이 군에 입대하면 여전히 경계근무를 서면서 혹독한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야 한다. 감시카메라와 AI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휴전선은 기본적으로 장병들의 경계근무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240㎞의 휴전선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10만명 이상의 경계부대를 배치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식의 경계근무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전방 경계부대를 대폭 줄이거나 완전히 무인화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필자가 만난 고위 장교들도 대부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한다. 지금의 경계 방식은 무장공비와 남파 간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21 사태처럼 소수의 무장공비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필요했다. 그러나 적어도 1973년 이후 휴전선을 통해 무장공비가 침투한 적은 없다. 최근에는 노크 병사와 같은 귀순병이 대부분이다. 심하게 말하면 일 년에 한두 명 있을 탈북자를 막기 위해 이 엄청난 병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작전상으로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전면적 남침 상황을 고려해도 전선 가까이에 주전력을 배치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북한의 장사정포 전력을 감안 할 경우 더욱 그렇다. 동독과 서독이 대치하던 시절, 동독에 압도적인 기갑 전력이 배치돼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독군은 적의 초기 공세를 흡수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주전력을 배치했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경계근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책임 문제가 아닐까 한다. 현재 언론 상황에서는 북한군 한 명이라도 휴전선을 넘어오면 “또 뚫렸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보수적인 언론은 말할 것 없고, 평소 경계근무에 대해 비판적인 매체 조차 ‘경계 실패’를 탓하며 군의 기강해이를 질책한다.
지상작전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한 예비역 대장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휴전선을 넘어오는 한 두 명 북한군을 위해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물 샐 틈 없는 경계”의 신화를 믿고 있는 국민에게, 휴전선 경계 개념이 왜 달라져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말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육군 지휘부다. 그들이 국민과 통수권자를 설득해야 한다. 병력 부족에 허덕이는 우리 육군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경계근무에서 우리 장병들이 자유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을지 생각해보라. 인구절벽에 대한 선제적 대비가 될 것이고, 장병들의 근무환경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경계근무에 쓸 시간을 교육훈련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육군을 정예화된 미래 군대로 재편할 좋은 기회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