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모님이 드는 '샤넬·에르메스' 가품…장인도 놀랐다[찐부자 리포트]

부자들의 '짝퉁 사랑'.."내가 들면 가짜도 진짜"
미러급보다 높은 '정동급'..전문가 "육안 구분 어려워"
제품 무게·가죽 질감·냄새 등으로 비교 가능
찐부자와 송지아 차이는 '진품 경험치'..보는 눈 달라
  • 등록 2022-02-06 오전 9:24:24

    수정 2022-11-18 오후 12:15:53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마이바흐 타는 사모님이 에르메스 가품 가방을 산다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어요? 국산차 타고 오리지널 매는 것보다 외제차 타고 레플리카(가품) 드는 게 낫죠.” (청담동 명품 가품 판매업자 정모씨(47))

▲샤넬과 에르메스 등 가품(왼쪽 라인)과 진품(오른쪽 라인). (사진=백주아 기자)
부유층 사이에서 명품 가품 구매가 성행하고 있다. 명품 대중화로 짝퉁 시장도 덩달아 몸집이 커지면서 의사·교수·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물론 재벌가 사모님까지 진품과 가품을 섞어 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5일 기자가 만난 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 가품 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재벌가 인물들 중에 실제 ‘짝퉁 매니아’가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특히 이들 부유층이 사용하는 제품은 짝퉁 중 가장 품질이 높다고 알려진 미러급보다 약 3배 비싼 제품으로 ‘정동급(정품 동일급)’으로 불린다. 최근 세간을 흔들었던 뷰티 크리에이터 프리지아(25)가 착용한 가품은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등에서 유통되는 제품으로 일반인도 관심 있게 보면 쉽게 구별 가능한 조악한 가품(B급)이다.

정동급은 육안으로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가품 생산 공장은 대부분 중국에 있지만 정동급 제품 라인은 홍콩 사무소를 거쳐야만 구할 수 있다. 판매 가격은 50만원부터 1500만원까지 형성되나 업자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설명이다. 정품과 가품의 가격 차이는 3~30배까지 난다.

▲지난 5일 명품감정사가 샤넬 캐비어 클래식 라운드 미니 크로스백을 감정하고 있다. 사진 중 블랙(정동품 가품), 네이비(진품). 오른쪽 사진에서 보증 카드 테두리 색깔을 보면 가품은 진한 노란색을, 진품은 금색을 띤다. (사진=백주아 기자)
그렇다면 부자들이 사용하는 가품은 진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에 이날 압구정로데오역 6번 출구 근처 유명 중고명품 매입점 명품감정사 A씨(남·29)에게 샤넬 캐비어 클래식 라운드 미니 크로스백 진품과 가품을 각각 보여주고 감별을 요청했다.

그는 “정확한 감별을 위해 제품 로고, 글씨체, 시리얼 넘버, 가죽 질감 및 냄새 등을 살피면 쉽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사실 육안으로 보면 뭐가 진짜 제품인지 즉각 판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가의 가품은 겉만 봤을 때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안을 열어 살펴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감정에 따라 세부적으로 보면 시리얼 넘버의 경우 진품은 엑스(X) 표시로 들어간 칼선이 희미하게 들어가 있는 것에 비해 가품은 진한 실선으로 돼 있다. 개런티 카드 홀로그램 스티커는 진품은 육안으로 봤을 때 로고가 보이지 않고 빛을 비췄을 때 반사돼 희미하게 보이나 가품은 또렷하게 로고가 드러난 게 특징이다. 카드 내부 테두리는 진품은 금빛, 가품은 진한 노란색으로 돼 있다. 내부 샤넬 로고도 글자체 크기가 미세하게 다르다. 캐비어 가죽 결은 가품이 진품 대비 더 촘촘했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 왼쪽 미디움(미러급 가품)과 오른쪽 점보(진품). (사진=백주아 기자)
이후 함께 동일 모델 제품을 포함한 에르메스와 샤넬 등 진품 11종과 가품(정동급·미러급·A급·B급) 15종도 살펴봤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는 ‘촉감’이었다. 샤넬 플랩백을 비교하면 촉감의 경우 진품은 부드럽고 약한 느낌인 반면 가품은 상대적으로 거칠고 뻣뻣했다. 눈으로 봤을 때의 차이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이 어려웠지만 진품이 가품보다 엠보싱이 더 도드라졌다.

압구정동 판매업자 유모씨(33)는 “진품은 천연 가죽을 쓰지만 품질이 좋은 대신 약해서 몇 번 사용해도 금방 스크래치가 나서 아껴 들고 상대적으로 억세고 튼튼하고 가죽이 질긴 제품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에르메스 볼리드 31(왼쪽 ,진품), 27(가운데, 진품)과 31(오른쪽, 가품-미러급). 사진=백주아 기자
이에 비해 에르메스 제품은 육안으로 진품과 가품 차이가 느껴졌다. 진품은 한 명의 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손으로 제품을 만들어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반면 가품은 공장에서 생산돼 폰트나 가방 모양 등이 일정하게 찍어낸 느낌이 있다. 진품에서는 진짜 가죽 향이 나지만 가품에서는 화학 향이 났다.

가품 판매업자들은 부자들 대부분 자신이 들면 누구도 가짜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가품을 구매한다고 입을 모았다. 프리지아가 일명 ‘금수저’ 마케팅으로 쌓은 부자 이미지로 과감함을 넘어 무모한 사기극을 벌인 배경도 이 같은 심리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찐부자와 프리지아의 차이는 ‘진품’에 대한 경험치에서 갈린다. 부자들은 오리지널 제품을 사고 똑같거나 비슷한 가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높다. 신사동에서 가품을 판매하는 임모씨(56)는 “경제력이 높은 사람들은 진품을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오래전부터 명품을 구매해온 경험이 많아 잘 나온 가품과 질 낮은 가품을 본능적으로 구별한다”며 “고급스럽고 세련된 눈을 탑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품이 가진 ‘아우라’를 알기 때문에 가품 중에서도 잘 빠진 가품을 쉽게 선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에르메스 켈리백(왼쪽 진품)과 버킨백(오른쪽 가품-A급). (사진=백주아 기자)
전문가는 가품이 부자들 일상에서 진품의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제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비가 오면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부자들한테도 진품을 소중히 여기는 심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싸고 좋은 물건을 자주 사용하면 끝이 마모되고 닳아서 소비자심리상 차마 들지 못한다”며 “정말 중요한 자리에 이따금 진품을 들고 나가는 대신 일상 생활에서는 진품 대체품으로서 가품을 활용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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