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SNS가 만들어낸 가짜 록 스타

  • 등록 2018-12-01 오전 6:06:06

    수정 2018-12-01 오전 6:06:06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어느 천재의 예술 프로젝트였을까? 누군가가 기획한 사회과학 실험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인기를 얻고 싶은 한 뮤지션이 벌인 사기극이었을까?

영국까지 가서 텅 빈 객석을 향해 연주한 미국 록 밴드 스레틴(Threatin)을 둘러싼 궁금증이 2018년 록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스레틴은 사실 유명한 밴드는 아니다. 무명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2017년에는 앨범을 발매했고, 뮤직비디오도 발표했다. 무엇보다 밴드의 페이스북 페이지 등록된 팬은 4만명에 육박한다. 유튜브에는 각종 공연과 인터뷰 영상도 올려져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홍보에 활용하는 여느 밴드처럼 보인다.

사건은 2018년 4월에 시작됐다. 당시 제레드 스레틴은 자신의 밴드 스레틴의 유럽 투어를 함께할 멤버를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을 실시했다. 물론 무명 밴드의 오디션에 뮤지션들이 제 발로 찾아오진 않는다. 스레틴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라고 밝힌 한 여성이 페이스북을 통해 뮤지션들에게 오디션을 권유하는 접촉을 했다고 한다.

스레틴은 이렇게 오디션을 통과한 3명의 멤버들에게 투어 계획을 설명했다. 자신이 독일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공연 티켓이 이미 잘 팔리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매니지먼트사에서 유럽에 가는 항공료와 투어 도중 호텔에서 묵는 숙박료 등을 모두 제공하고, 투어의 대가로 1인당 300달러를 줄 것이란 얘기도 했다.

멤버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받는 돈이 생각보다 적었지만, 유럽 구경도 하고 투어 경험도 쌓는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멤버들은 이 밴드에서 해외 공연 경험을 쌓으면 앞으로 뮤지션으로서의 이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긴 여름 동안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LA)를 오가며 공연 준비에 매진했다.

그리고 10월 말. 멤버들은 생애 첫 해외 공연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용에 대한 얘기가 달라진 건 이 때였다. 지급받는 300달러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멤버들은 투어 경험을 쌓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11월1일 영국 런던의 언더월드라는 공연장 무대에 올랐는데, 공연 표가 291장 팔렸다는 말과 달리 관객이 3명 밖에 없었다. 나흘 뒤 브리스톨에 있는 공연장 디 익스체인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관객이 아예 1명도 없는 공연장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제레드 스레틴은 “이상하다” “착오가 있나보다” “내 공연에는 원래 더 많은 사람이 온다”며 공연 기획사 탓을 했다. 멤버들은 그의 말을 믿었다. 페이스북에서 그는 유명한 뮤지션이고, 유튜브에는 그의 뮤직비디오도 있으니까. 애초에 공연장 측이 스레틴에게 무대를 빌려준 이유도 페이스북과 유튜브이 영향이 컸다. 페이스북은 스레틴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됐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선 스레틴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공연장 측이 SNS에 올린 스레틴의 ‘이상한’ 공연은 음악 업계에서 큰 이슈가 됐다. 결국 뉴욕 소재 헤비메탈 전문 웹진 ‘메탈 석스’의 취재로 스레틴의 레코드 레이블인 ‘슈퍼러티브 뮤직 레코딩’과 매니지먼트 회사인 ‘얼라인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등이 모두 유령회사라는 점이 드러났다. 심지어 페이스북 팬 수는 돈을 주고 샀으며, 공연 및 인터뷰 동영상은 조작한 것이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공연장 관계자들은 물론 밴드 멤버들까지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제레드 스레틴을 제외한 멤버들은 밴드를 탈퇴했다.

전형적인 사기 사건과 다른 점은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피해를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멤버들은 공연 대가로 받은 300달러로 밥값을 해결해야 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손해를 본 건 아니다. 공연장 측도 기대했던 주류 및 음료 매출을 올리지 못했을 뿐 무대를 빌려준 값은 다 받았다. 어마어마한 돈을 쓴 건 오히려 제레드 스레틴이었다. 예술 프로젝트이거나 사회과학 실험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제레드 스레틴의 형제이자 옛 밴드 멤버였던 스콧 에임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음악 산업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일을 벌이다 실패한 것”이라며 사기극이라는 의혹에 무게를 실었다. SNS를 홍보에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를 유명 뮤지션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음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얘기다.

만약 에임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레틴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언론 보도 이후 그의 영국 공연 동영상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음악 업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됐다.

진실은 제레드 스레틴만이 안다. 하지만 음악 전문지에 이어 메이저 언론까지 스레틴의 영국 공연을 둘러싼 논란을 다루자 그는 트위터에 아리송한 글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나는 텅 빈 공연장을 국제적인 헤드라인으로 만들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 역시 환상의 일부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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