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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난달 서울에 있는 A산부인과에서 임산부에게 낙태수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가 구속됐다. 34주차 임산부에게 제왕절개 방식으로 수술을 하다 아기가 살아서 태어나자 의도적으로 신생아를 숨지게 했다는 혐의가 적용된 것이다. 경찰은 “의사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낙태 가능 한도인) 임신 22주를 넘긴 임산부에게 낙태수술을 수 차례 했다”며 그에게 살인과 낙태 혐의를 적용해 구속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임산부는 낙태 혐의만 적용해 입건했다.
지난 4월 헌재가 낙태를 전면 금지한 형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한도로 제시했지만 태아의 기형여부를 뒤늦게 알거나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탓에 주수(週數)를 넘기는 임산부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국회가 석 달 넘게 공전 중인 상황에서 관련 후속조치가 신속하게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주수 넘기고 찾아오는 임산부들이 더 절박”
서울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중지를 결정한 당사자들 가운데 수술을 늦추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수술을 늦게 할수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 대부분은 임신 초기에 수술을 받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 대부분인 95.3%가 12주 이내에 수술을 받았다. 임산부의 건강과 태아 성장을 고려해 가능한 빨리 임신중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에게 치명적인 이상을 발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임산부 본인이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년자나 저소득층이 임신중지 시기를 놓쳐 출산하는 경우 영아 유기나 영아 살해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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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 처벌 대신 건강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입법자들이 낙태 결정 기간을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임신 몇 주까지는 사회 경제적 사유를 확인하지 않을 것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여성계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조국 사태 이후 국회가 정쟁에만 몰두해 입법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면서 정치권을 질타하고 있다.
특히 내년 12월 말까지 낙태 처벌 관련한 법안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에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세세하게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 공동집행위원장은 “초기 임신중지 상황이라면 약물을 통해 빠른 시기에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인공유산 약물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인터넷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임신중지 약을 구하는 상황에서 안전한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위원장은 “임신중지 약품 중 하나인 미페프리스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67개국에서 공식 승인, 사용되고 있는 만큼 국내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시술 주수와 의학적 안전성 등을 고려해 유산유도 약물을 검토 중”이라며 “식약처 등 관련 부처와 약물 관련 사항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나 위원장은 “임신중지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에는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도록 상담을 제공해야 하며 의료 전문인의 기준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