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옛날엔”·“노력해라”·“더 배워야”…김동연이 말하는 불통 꼰대짓 셋

대권 잠룡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영·리해 강연 눈길
①나때는 더 힘들었어→지금 청년들 더 힘들어
②청년들이 더 노력해야지→어른들이 잘못했어
③어른들이 한 수 가르쳐줄게→청년 얘기 들을게
  • 등록 2021-05-25 오전 12:00:00

    수정 2021-05-25 오전 10:13:3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신선하고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과 하얗게 샌 노년층 2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이들 중 몇몇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큰 회사 회장님들과 정치인들이었다. 강단에 선 연사는 이승빈군(18)·이현지 씨(28·유튜버명 달지)였다. 이들은 각각 70분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장님들은 많게는 40살 이상 어린 ‘선생님’들의 강연에 박수를 보내고 질문을 쏟아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의 ‘영·리해(Young·Understand)’ 행사다. 젊은이들의 꿈, 경험, 실패, 좌절, 성취를 듣고 이해하고 세대 간 소통·공감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날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대선 출마를 묻자, 김 전 부총리는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청년들”이라며 청년들을 취재해 달라고 주문했다.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금융 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청년들과 공감, 소통의 장, 영리해(Young·Understand)’ 강연에서 “청년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소통하려면 일단 청년들 얘기 들으세요

이날 행사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행사 모두발언에서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전 부총리는 “청년들과 소통하려면 기성세대들이 3가지 잘못된 신화(믿음)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나 때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어”, “청년들이 더 노력해야 해”, “어른들이 한 수 가르쳐줄게”다. 이 착각에 빠져 있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전 부총리는 “‘나 때는’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청년들이 더 힘들어’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충북 음성군이 고향인 김 전 부총리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상고를 졸업한 뒤 주경야독으로 행시에 합격했다. 그럼에도 김 전 부총리는 “요새 젊은이들은 대학 나와도 직장 잡기 어렵다”며 “저 때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하지 못하고 쉬는 인구는 237만 4000명으로 역대 최대다.

김 전 부총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기성세대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와 사회적 기회가 대물림되는 사회구조를 만든 어른들이 잘못했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10명 중 6명 이상이 “부모 도움 없이 내 집 마련 못한다”고 답했다. ‘영끌 대출’, ‘부모 찬스’ 없이는 수도권에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참조 이데일리 2020년 9월15일자<[생생확대경]‘2030’ 절망 보고서>)

끝으로 김 전 부총리는 “‘어른이 한 수 가르쳐줄게’가 아니라 ‘청년들 얘기를 들을게’라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주대) 총장 시절에 대화를 해보면, 학생들은 얘기를 할지 말지를 빠른 시간에 판단한다”며 “마음의 문이 한 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마음의 문을 닫히지 않게 하려면 눈높이를 맞추고 청년들 얘기에 경청해야 한다는 거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인 2017년 6월1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 캠퍼스에서 열린 이임식에 참석했다. 당시 한 신입생이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붉히자 김 총장이 달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청년 문제 ‘킹핀’ 쓰러뜨려야 해법 보인다


그렇다면 김 전 부총리가 청년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부총리는 “나무의 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 즉 대한민국의 진짜 문제를 봐야 한다. 그리고 나서 진짜 문제에 대한 해법, 실천을 찾아야 한다”며 “청년과의 소통 문제는 이같은 문제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단절된 공감과 소통의 벽을 허물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 문제라는 ‘킹핀’(king pin)을 가장 먼저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는 내달 초중순께 출간되는 저서를 통해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공개할 예정이다. 김 부총리는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무엇인지 △해법을 어떻게 실천할지 등이 담겨 있다고 했다. 김 전 부총리는 “공직 34년의 경험과 부총리 퇴임 후 지난 2년 6개월간 지방 곳곳을 다니면서 보고 공부하고 느낀 것을 녹인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 저서가 발간되면 김동연 전 부총리 대선 출마설이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김 전 부총리에 대해 “흙수저에서 시작해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라며 “경제대통령 얘기를 꺼내 들며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김 전 부총리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만큼 ‘세력’이 많지 않고 정치인 경험이 없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된다.

김 전 부총리는 대선 출마에 대해 “그런 것에 대한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형식적으로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년 반을 성찰하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혁신, 사회적 이동, 공감과 소통 측면에서 말만 앞서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연 대망론이 비상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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