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산업은행

경영정상화보다 채권회수 우선하면 産業 아닌 殺業
  • 등록 2014-10-20 오전 2:00:00

    수정 2014-10-20 오전 2:00:00

[이데일리 류성 산업 선임기자]
산업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동부그룹의 사업 구조조정을 두고 갈수록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재계는 채권단이 경영 정상화보다는 채권 회수에 주력하면서 잇단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듯한 채권단의 행태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런 재계의 기류에 대해 산업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회사오너로부터 경영권을 빼앗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채권단이 당연하게 이행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라는 논리다.

꼬여가는 구조조정의 여파로 동부그룹은 지금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동부는 지난 1969년 미륭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45년 만에 자산순위 재계 18위로 성장한 저력있는 기업이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 단 한 개의 계열사도 퇴출당하지 않을 정도로 내실있는 경영을 해온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힌다.

현재 매각이 진행중인 동부제철(016380)동부하이텍(000990)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 동부는 사실상 금융전문기업으로 재편된다. 비금융 계열사로는 동부건설(005960)과 동부대우전자, 동부팜한농, 동부CNI(012030)등 만 남는다. 동부그룹은 금융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005830)를 중심으로 동부증권(016610)과 동부생명등 금융계열사들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그룹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금융전문기업으로 전락하게 된 동부의 김준기 회장에게 산업은행은 곧 ‘저승사자 ’ 같을 것이다. 산업은행이 휘두르는 칼날에 자신이 평생을 일궈온 회사들이 하나 둘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데도 뭐라 항변 한마디 못하는 처지다. 채권단과 기업간 합의에 의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자율협약이라지만 산업은행이 ‘슈퍼 갑’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동부 구조조정에 있어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그간 행태를 보면 동부그룹 김 회장이 절감하고 있을 울분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특히 동부 구조조정 과정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산업은행은 동부의 매각대상 자산들을 자산유동화 회사(SPC)에 일괄 편입시켜 유동성을 지원한 뒤 2~3년 후 개별 재매각하는 방안을 동부에 제안했다. 동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산매각의 모든 권한을 산업은행에 위임했다.

하지만 이후 산업은행은 당초 SPC 운영방안을 뒤집고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 발전소를 패키지로 묶어 포스코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집했다. 개별 매각이 효과적이라는 동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포스코와의 패키지 딜은 5개월이나 끌다 포스코 거부로 끝내 무산됐다. 적정가격으로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별 매각을 주장하던 동부는 산업은행에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감히 ‘슈퍼 갑’에게 ‘을’이 신분을 망각하고 대들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포스코와 딜이 실패로 끝난 지 불과 3시간만에 산업은행은 동부제철과의 자율협약을 전격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율협약 결정을 당사자인 동부제철에는 불과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산업은행의 자율협약 결정으로 동부그룹 비금융계열사들은 신용평가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일제히 떨어지며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동부제철 대주주 주식을 100대1로 감자, 경영권 박탈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행태도 논란거리다.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동부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산업은행 스스로 그 존재 목적을 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기업 성장의 든든한 지원자로 자리매김해야 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지금처럼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채권회수를 우선해서는 안된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의 경영 정상화가 존재의 당위성임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산업(産業)은행은 살업(殺業)은행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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