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박승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 등록 2003-12-31 오전 6:01:00

    수정 2003-12-31 오전 6:01:00

[edaily 이학선기자] 친애하는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갑신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새해의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난해에도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신 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세계경제는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호전되면서 하반기 들어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섰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 경제는 물가와 경상수지 상황이 비교적 양호하였으나 성장과 고용 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연초 이래 이라크 전쟁, 북한 핵문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확산 그리고 가계신용 부실화 우려 등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여기에 노사분규 등에 따른 생산차질까지 가세하였습니다. 다행히 9월 이후에는 수출의 급신장에 힘입어 생산 활동이 활기를 되찾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GDP성장률은 3%에 다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기업의 축소경영과 공장설비의 해외이전 등으로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물가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이 목표범위의 중심선 수준인 3.1%에 머무는 안정세를 지속하였습니다. 경상수지도 중국에 대한 수출 호조 등으로 120억달러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같은 경제상황을 고려하여 당행은 연중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금리정책을 운영하였습니다. 5월중 콜금리목표를 4.25%에서 4.0%로 낮춘 데 이어 7월에는 다시 사상 최저 수준인 3.75%로 추가 인하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해외경제여건이 개선되고 두 차례의 정책금리 인하 및 정부의 추경예산 집행효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콜금리목표를 3.75%로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금융완화정책은 부분적으로 주택시장을 자극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으나 최소한의 경제 활력을 유지하고 수출 호조를 배경으로 최근 실물경제가 완만하나마 회복국면에 진입하는 데 디딤돌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지난해에는 당행의 오랜 바람이었던 한국은행법의 개정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1950년 한국은행법 제정 이후 여섯 차례의 법 개정이 있었으나 처음으로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국은행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연간 단위의 물가안정목표제가 중기목표제로 변경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파급시차를 감안하여 중기적인 시계(視界)에서 보다 유연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금융의 국제화 및 전자결제방식의 확산 등으로 날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을 위한 총괄적인 관리 및 감시기능이 당행에 부여되었습니다. 그리고 통화정책 운영과 관련한 예산의 자율성도 보장되었습니다. 아울러 당행 부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정책결정과 집행간의 연계성 또한 한층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은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요건을 상당 부분 갖추고 선진 중앙은행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들의 책무도 더욱 중차대해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은 가족 여러분! 올해 우리 경제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경제의 성장세 확대와 함께 그 동안의 경기부양정책의 효과가 보다 뚜렷해지면서 점차 호전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상반기에는 수출의 높은 신장세가 경기상승을 견인하고, 하반기에는 설비투자의 증가세 확대와 함께 민간소비도 점진적으로 회복되어 연간 GDP성장률이 5%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가는 원화환율, 국제유가 및 주택가격의 하향 안정 등으로 근원인플레이션율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모두 3% 내외에 머물러 지난해보다 오름세가 둔화될 전망입니다. 경상수지는 설비투자 증가에 따른 자본재 수입 확대 등에도 불구하고 수출의 견실한 증가로 60억달러 규모의 흑자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새해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은 지난해보다 훨씬 나아지겠지만 지난 수년간의 투자부진에 따른 공급측면의 성장기반 침하(沈下)와 고용흡수력의 약화로 집약되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안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2002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우리 경제가 달성한 6.3%의 높은 성장은 가계신용의 공급 확대에 의한 민간소비 급증에 주로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를 초래하고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금융부실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처한 가계신용 억제는 다시 민간소비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짐으로써 지난해 경기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소비진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장전략은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치유하기 어려운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금년도 우리 경제의 최우선 과제는 설비투자를 활성화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의 문제점은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여도 체감경기는 나빠지고 청년실업 문제, 직업에 대한 불안 등 많은 사회불안요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정·금융·산업정책면에서 "고용창출을 통한 성장"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하고 사회 전반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해 설비투자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교육, 정치 및 노사관계 개혁과 부동산투기 근절을 통해 불필요한 비용과 비효율을 제거하고 사회적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하겠습니다. 기업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설비투자를 적극 확대함으로써 기술력과 생산성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기존설비와 범용기술로는 중국 등 저임금 후발국의 추격을 계속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울러 국제기준에 맞춰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시스템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얻어지는 시장의 신뢰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계도 장기적 안목에서의 인내와 협력으로 산업평화를 이룩하여 고용창출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생산성 향상을 뛰어넘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잦은 노사분규는 국내기업의 투자확대와 외국인 투자유치를 가로막아 결국은 고용불안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우리 한은 가족 여러분! 이제 한국은행이 올해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역점을 두어야 할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개정 한국은행법에 의한 중기물가안정목표제의 효율적 운용체제를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보다 정치(精緻)하게 중기물가상황을 예측하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보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등을 통해 물가변동요인과 정책대응 내용 등을 상세히 밝힘으로써 물가안정에 대한 당행의 책무를 분명히 하고 통화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한층 높이는 데에도 힘써야 하겠습니다. 한편 새해에는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 측면에서 큰 불균형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 설비투자 및 민간소비가 늘어나면서 수요면의 물가상승압력이 나타날 우려가 있고 주택가격의 반등 기대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금리정책은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물가가 중기목표인 2.5~3.5% 범위내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금리자유화의 마지막 단계로서 2월부터 시행되는 요구불예금의 금리자유화를 순조롭게 정착시켜 금리정책의 파급경로를 보강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금융구조개혁의 지속적인 추진과 더불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더욱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개혁에 성공하였으나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 및 신용불량자 급증, 일부 금융기관의 경영부실 문제 등이 새로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금융부문의 안정 없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 고통과 부담이 따르더라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요인을 조기에 제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기관 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과감한 경영혁신도 긴요한 과제입니다. 중추적인 금융중개기관인 일반은행의 흑자규모가 2002년중 3조 4천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조원 정도로 대폭 축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수익규모로는 외부충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음은 물론 국제적인 재무기준을 충족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당행도 금융안정을 위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보다 능동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SK글로벌 사태 및 신용카드사 문제, 조흥은행 파업 등에 따른 금융시장 교란을 기민하게 수습한 경험이 있습니다. 올해도 금융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여 불안 징후가 감지될 경우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개정 한국은행법에 의해 당행에 명시적으로 부여된 지급결제제도의 전반적인 관리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감시 및 평가체제도 조기에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화정책 운용수단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선 금리정책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당행 대출제도의 유동성조절 및 정책기조공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금융지원의 실효성을 제고하면서 지역금융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총액대출한도의 지원체제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준제도도 금리의 전면 자유화, 금융기관 수신상품의 다양화, 전자금융거래의 확산 등에 상응하여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환보유액의 운용능력을 강화하는 데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 보유 관리하는 국가의 최종적인 대외지급자산이라는 점에서 그 운용에 한 치의 소홀함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당행은 그 동안 안전성, 유동성 및 수익성 등 세 가지 기준에 입각하여 보유외환을 운용해 왔으며 IMF, BIS 등 국제기구는 물론 유수의 국제투자은행들도 당행의 시스템과 인적자원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문인력 양성, 포트폴리오의 다양화 그리고 최신 투자기법의 활용 등을 통해 운용역량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한은 가족 여러분! 개정 한국은행법의 시행으로 중앙은행의 중립성이 한층 강화되고 역할도 더욱 커졌습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당행이 보다 엄격한 공공성과 책임성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해 10월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는 자세로 ‘한국은행의 새출발’을 다짐한 바 있습니다. 금년에는 비상한 각오로 내부경영과 업무전반에 걸친 혁신을 단행함으로써 국민의 기대에 적극 부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높여 정책개발 및 조사연구 면에서 선진국 중앙은행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자질과 능력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국내외 연수 확충 등을 통해 직원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하겠습니다. 아울러 성과와 능력 위주의 공정한 인사관리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겠습니다.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에 의한 발탁인사를 과감하게 확대하는 한편 직군간 인사교류를 늘려감으로써 직원 개개인의 자기개발의욕을 고취하고 조직운영의 탄력성을 제고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행내토론의 활성화, 민간 및 정부기관과의 교류 확대 등을 통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배양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산운용에 있어서도 자율성 확보에 상응하여 보다 엄격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고 더욱 근검절약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한은 가족 여러분! 당행이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신망을 받는 중앙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원 여러분의 부단한 노력과 헌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올 한 해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진취적인 자세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 그리고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 1. 2 총재 박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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