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이후 콜금리 인상에는 거의 예외없이 논란이 따라 붙었다. 정부와 여당이 금리인하나 동결을 환영한 적은 있어도, 금리인상에 박수를 보낸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표를 안겨주는 것은 물가안정보다는 성장의 높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성장에 경도된 그같은 태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 정부의 금리정책 간섭, 효과 있을까
2000년 2월 한국은행은 정부의 방침(?)을 어기고 첫 금리인상 단행이란 `사고`를 쳤다. 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이 13%대로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통틀어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
당시 정부는 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도록 단속했고, 시중금리가 오를 경우 한국은행에게 국채를 매입해서라도 금리를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인위적으로 물가상승을 억제했고 수출확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하락을 막았다. 한국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콜금리를 동결하고, 회사채 유통수익률을 낮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금리정책하에서 경기는 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고, 대우사태까지 금융시장을 강타해 장기금리가 속등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의 경제기사들은 이런 제목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려 13%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과 진통을 겪었는지 알만하다. 실상 금통위 직전까지도 한국은행은 내부적으로 금리 동결로 가닥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통위를 코앞에 두고 인상 쪽으로 급선회했다.
콜금리 인상으로 카드를 바꿔잡은 이유중에는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한은측의 불쾌감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여러 기사들이 이같은 정황을 전하고 있다. 정부의 금리정책 간섭이 오히려 콜금리 인상을 부추긴 꼴이었다.
◇ 왕따된 한국은행, 갈 길은?
지난 7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추가 금리인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기사가 뜨자 한국은행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특히 "금리정책을 관계기관과 협의해 추진하겠다"는 말에 경악했다. 한 고위급 인사는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정 장관뿐 아니라 정부와 여당에서 금리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 그리고 이같은 당정의 태도가 한동안 느슨해졌던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위기감을 새롭게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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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올리려던 금리를 동결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이성태 총재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반대로 동결로 기울려던 결정이 인상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어떨까. 혹시 아주 작은 불씨라도 될 수 있을까. 결정을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지만, 금통위에서 한번쯤 언급은 될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만난 한국은행의 한 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걱정이 안될 수 없다. 금리를 올리면 당장 나오는 지표가 나쁘다고 한국은행이 경기를 죽였다고 몰매를 맞을테고 금리를 동결하면 굴복했다고 할 것이다"
이성태 총재는 조사부장이던 지난 98년 12월 정부의 금리정책 간섭은 어떤 식으로 콜금리 결정이 이루어지거나 관계없이 정책에 대한 신뢰성 추락을 부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 필요와 여건은?
전과 달리 이달에는 한국은행 집행부도 인상이냐 동결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인상요인과 동결요인이 팽팽하다는 간접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의 종결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상의 필요성은 여전히 갖고 있으며, 이는 이달에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콜금리 4.25%는 `수준`도 낮을 뿐더러, 경기나 물가에 대한 한은의 판단으로 보건데 정책의 방향도 인상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콜금리의 수준에 대해서는 지난달 콜금리를 동결한 후 이성태 총재가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피력한 바 있다.
저금리 위험을 벗으려는 `수준의 시정`외에 방향으로서의 인상이라면 당연히 한국은행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보다 정확히는 향후 1~2년 안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중기적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지금의 물가상승률이 아니다.
통화정책의 `선제성`은 최근에야 어느정도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심하게 경직돼 있던 과거의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도 최소한의 선제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물가추이에 따른 금리인상 시기다. 금리가 인상된 시기(빨간 표식)는 상대적으로 물가상승률 수준이 낮을 때 이루어졌고, 되레 금리인하는 물가상승률이 꼭지를 찍은 시점에서 주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가에 대해서는 이미 이 총재가 "물가, 좋은 시절 다 지났다"고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다. "앞으로는 매달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했는데, 7월 소비자물가가 너무 안정적이어서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경기상승, 과연 떨어질 수는 있는 건지 의심스런 유가와 원자재값, 환율하락 효과의 소멸, 중국효과의 약화 또는 역효과 등등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한은의 근거는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여건이다. 여건중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경기다. 상반기까지의 성장은 이미 과거지사이고, 현실적으로 높은 확률로 추정이 가능한 하반기와 내년의 경기에 대해 자신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하반기 성장률이 둔화되겠지만 `소프트패치`라고 본다고 하고, 내년에는 올해 하반기보다 높은 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라고 했으니 최소한의 자신감은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리인상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국은행이 보는 성장세는 대략 전기비 1% 정도인 것 같다. 하반기 성장에 대한 전망치도 그 정도이고, 연율로는 4%를 약간 넘어 이성태 총재가 생각하는 잠재성장률 수준(4~4.5%)과도 얼추 비슷하다. 물론 물가안정이나 금융안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만한 위험이 있다면 일시적인 경기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금리인상에 나설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한국은행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는 성장의 하방위험은 미국의 경기둔화,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가격, 그리고 환율로 보인다. 민간연구소에서는 `소득없는 소비의 지속 가능성`과 `기대이하의 설비투자`를 거론하며 내수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내수가 그렇게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눈치다.
환율은 5월에 올리길 바랬던 콜금리를 6월로 연기하게 한 주범이다. 향후 달러약세가 돼도 환율하락 위험은 지금까지와는 크게 다를 것이라고 하니, 한은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는 조금 줄였을 법도 하다.
미국의 경기둔화 폭은, 크지만 않다면 유럽과 일본, 그리고 여전히 고성장하는 중국이 보완을 해 주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수출이 양적 팽창을 하면서 대미수출 비중이 크게 하락한 것도 한국은행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위안거리다.
그러나 안심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대중수출의 상당부분은 종착역이 미국일 것이고, 중국의 소비가 얼마나 우리 수출에 도움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 유럽의 맹주 독일은 내년 이후 경기가 불투명하다는 말이 자주 들리고, 일본의 경기회복은 현재 소비가 아닌 투자가 주도하고 있어, 한국의 수출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미지수다.
다만, 8일 연준이 2년여간의 금리인상을 중단한 것이 한국은행이 보기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아도 될 이유라는 해석은 섣부를 것 같다. 어느정도의 성장만 예상이 되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연준의 금리인상 중단으로 미국경기의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되면 "금리를 올려도 되겠구나"란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외금리차로 인한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최근 경기상승기에 나타난 자본유출을 촉발시킨 것이 미국의 금리인상이라면, 한국은행은 자신들이 원화는 과잉 유동성 축소의 목적달성에서 손도 안대고 코를 푼 격이 아닌가. 미국의 금리인상 중단은 그런 면에서 보면 한은이 직접 코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가는 정말이지 한국은행으로서도 속절없이 당하는 외생변수다.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니 말이다. 사실 한국은행이 하반기 성장률을 하향조정하게 된 가장 큰 변수도 유가와 원자재값이 워낙 예상밖 급등했기 때문이다.
올해 평균 두바이유 도입가격을 지난해말에 배럴당 55달러정도 생각했던 한국은행은 4월에는 59달러, 7월에는 63달러로 올렸다. 그러나 두바이유는 7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기타 원자재값 역시 작년말에는 보합이나 소폭 하락 정도로 보았던 모양인데, 4월에는 6% 정도의 상승을, 7월에는 27%의 급등으로 전망을 수정했다.
물론 유가 오름세는 성장으로 보면 하방위험이지만 물가로 보면 상방위험이라 인상을 재촉할지, 아니면 늦추거나 포기시킬지 모른다. 결국 국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간의 유가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재촉하면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올리기 힘들어 질 것이다.
다만, 재작년말에 작년을 예측했듯이, 작년말에 올해를 예측했듯이 쉽사리 유가가 하락할 것이란 전제로 한국은행이 경제를 전망하기는 힘들어 진 것 같다. 전에는 결국 유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견해였지만 지금은 1차 오일쇼크 때와 마찬가지로 원유가 전혀 새로운 가격의 시대에 진입했을 가능성을 적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국경기나 유가, 환율보다 한국은행이 정말로 넘어야 할 산은 `물가와 경기에 대한 기대차이` 인지도 모른다. 마치 한국은행을 빼고는 모두 물가는 안정돼 있고 경기는 침체 또는 하강국면에 진입했거나 막 진입하려는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은행이 예상한 대로 앞으로 전기비 1% 정도의 성장을 할 경우 국민들에게 익숙한 전년동기대비 성장률은 1분기 6%대, 2분기 5%대에서 3분기에는 4%대로 떨어질 것이고 4분기에는 조금만 빗나가도 3%대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더라도 막상 경제지표들이 더 나쁘게 나오면, 기대는 더욱 수그러들 게 뻔하다.
물가에 관해서는 내년 이후 물가안정목표제의 대상과 범위의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한국은행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예상되는 대로 2.5~3.5%인 현재 범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대상을 근원소비자물가에서 총소비자물가로 바꾸기만 해도 이전에 비해 목표범위가 상당히 하향조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리 정해졌다면 금리인상의 명분도 한층 커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