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씨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렇게 두렵나요”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불안하지만 하늘이 주시는 만큼 아이 낳고 싶어”
“판탈롱 바지 입고 다닌 어렸을 땐 나도 아버지를 독재자라 생각했다”
  • 등록 2005-01-27 오전 7:38:00

    수정 2005-01-27 오전 7:38:00

[조선일보 제공] 양복 상의 사이로 박지만(46)씨의 아랫배가 나와보였다. 비록 새신랑이지만. 작년말 그는 16년 연하의 변호사 서향희(徐香姬)씨와 결혼했다. “결혼하니 좋은 것도 있지만…, 좋아해야 할 의무도 있지요. 그전까지 혼자 지내던 집은 창고 같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집안에 제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오늘도 빨리 집에들어가야 되는데 하는 마음을 늘 먹게 돼요. 갑자기 이렇게 생활이 바뀌니까 재미는 있네요.” 그는 소개받은지 석달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 전에 저는 여자 소개를 많이 받았어요.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도 있었구요. 그런데 이 친구가 느닷없이 좋아 맺어졌으니. 애를 낳으려면 마흔 넘는 여자는 그렇고 서른 안된 여자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어요.주례 선생님(곽선희 목사) 말씀대로 운명인가 봐요.” -자녀는 얼마나 낳을 건가요? “하나님이 주시는대로…낳고 싶다고 낳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낳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인구가 더 늘어나야 하니까요.” 이런 신혼 재미에 빠져있어야 할 그가 매스컴의 번다한 조명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얼마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그런 뒤 가슴에 담아둔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8년만에 처음 그는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솔직히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욕하고 조롱하는 이런 것에 별로 신경 안 쓰실 꺼예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던 분이니. 하지만 전 아들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소송을 내면 그쪽 전략에 말려들어 흥행만 부추길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저는 이 영화가 꼭 상영금지 되는 것만을 바라지는 않아요. 다만 잘못된 대목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달라는 거죠.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국민들 대부분 알고 있어요. 우리 아버지나 그 시절이 그렇게 욕된 것인가요.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젊은층은 모를 수도 있어요. 왜곡된 영화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사실 관계를 알고 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봐요.” -영화 제작사나 감독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나요? “저는 정치와 관련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듣는 얘기가 있어요. 지난번에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를 내놓은 뒤, 정치권쪽에서 ‘저런 영화를 더 만들면 박근혜는 나가 떨어진다’고들 했다는 겁니다. 그런 뒤 실제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번 일을 박대표와 상의했나요. “신혼여행 중에 이런 영화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래서 누나에게 ‘제가 법적으로 대응을 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요. ‘알아서 해라’고만 했어요. 그 뒤로 저도 바빠 누나랑 한번밖에 통화 못했어요. 작은 누나(박서영씨)는 전화를 걸어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큰누나(박대표)가 정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나가 굉장히 고생하고 있어요. 제가 볼 때는 참 안됐지요. 정치를 안했으면 편하게 사실텐데. 하지만 누나가 정치를 하고 있으니 잘 되길 바랄 뿐이죠. 누나는 차기 대선에서 자기보다 더 잘하는 인물이 있으면 물러날 준비도 되어있어요. 저는 누나를 믿고 있어요.” -누나가 정치에 뛰어들때 같이 상의했나요? “아니요. 저는 그냥 돈이나 많이 벌구, 저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해서도 안되고. 다만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어 신문을 관심있게 보는 편이죠.” - 박대표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 어른인 셈이지요. “저는 깍듯이 대해요. 누나는 흠이 별로 없고 좀 어렵지요. 침착하고. 알다시피 저는 흠이 많죠.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 ‘너는 왜 근혜같이 공부를 안하느냐’고 저를 야단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누나에게 ‘맨날 공부만 하느냐’고 따졌는데, ‘하나하나 공부해서 깨달으면 너무 즐겁지 않느냐’고 해요. 어린 나이에 아주 기절할 뻔 했어요.” -부모님의 죽음 어느 쪽이 더 힘들었나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더 힘들었죠. 그 이후로 아버지가 어머니 역할까지 하셨지요. 그때 불만과 반항의 사춘기때인데, 아무래도 어버지와는 상의하기 어려웠죠. 한번은 제 방이 워낙 지저분해 제가 학교간 사이 아버지가 청소했어요. 그런데 제 방에서 양담배가 나온거죠. 당시 외국손님들이 청와대에 오면 담배를 선물했어요. 아버지는 양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았으니 그걸 쌓아두셨는데 제가 쓸쩍 했던 거죠. 양담배를 제가 피웠다는 것에 아버지가 엄청나게 화가 나셨죠.” -최고권력자인 부친의 죽음이야말로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텐데요. “그렇진 않았어요. 육사 3학년때인데, 토요일 새벽에 생도대장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집에 빨리 가봐라’고 했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결국 돌아가셨구나’라는 느낌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자신의 할 일을 하고 남자로서 멋있게 살다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방에 올라와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울기는 했지만.” -부친을 독재자로 생각하지는 않죠? “어느 정도 독재자 였지요. 그때는 저도 나름대로 판탈롱 바지를 입은 신세대였어요. 누가 장발을 하든 옷을 벗든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쪽이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경제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던 거죠. 지식인은 몰라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결과가 좋았지 않았나요.” -여하튼 요즘 매스컴에서 박 전 대통령은 주인공이 됐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신문을 보면 전부 우리 아버지 이야기예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 사람들(현 정권) 열등감 같아요. 자기네들도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안되니까 그런 게 아닌지. 과거 청산도 이런 식으로 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더 잘 살게 해주면 박정희 시절의 과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길 것 아니에요. 그러면 당연히 과거청산이 되는데. 오히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버지 보다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노력이라도 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당신은 한때 마약에 의존했는데. “그건 부모님의 죽음과는 관계없어요. 처음엔 제가 의도한게 아니고 우연히 친구가 정신이 맑아진다고 권해 시작했어요. 하다보니 빠져들게 된거죠.” -그 문제로 6번 적발되고 그때마다 안하겠다고 했지요. 앞으로 결혼생활이 이와 단절시켜줄까요? “그건 생활이 바뀌었다고 안 끊어져요. 정신치료를 받아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어느날 이게 싫어지고 혼자 약 먹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시점이 와요. 얼마전부터 그랬어요. 저는 담배도 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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