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달. 여성을 성폭행한 이석준(26)은 피해 여성 가족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앙심을 품었다. 이석준은 피해 여성이 신변 보호를 요청하자 흥신소를 통해 여성의 집 주소를 알아내 택배기사로 위장했다. 집으로 침입한 이석준은 여성의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고 남동생에게 중상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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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넘겨진 살인범 2명의 운명은 법원 판결로 갈렸다. 지인을 살해한 뒤 공범까지 숨지게 한 권재찬은 사형을, 신변 보호 중이던 피해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 이론적으로 20년 후 가석방이 가능하다.
각각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이들 2명에 대해 1심에서 다른 양형이 선고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살인범죄 양형 기준’에 따르면 중대범죄 결합 살인의 경우 기본 형량은 20년 이상·무기이며, 가중 25년 이상·무기, 감경 17~22년이다. 양형 기준은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이다. 구속력은 없지만 벗어난 경우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재판부는 ‘재범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권재찬은 특수강간 및 강도예비 등의 범죄로 징역형을 살다 만기출소한 바 있다. 재판부는 “15년간 징역형의 집행을 마치고 3년 8개월 만에 강도살인 및 살인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인이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교화 가능성이 있다거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일 범행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행법상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이석준은 특가법상 보복살인 등 7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석준)은 피해 여성 어머니의 경찰신고로 자신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것에 대한 보복의 목적으로 피해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석준에게는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피해 여성의 어머니 살해 이전 피해 여성에 대한 성 관련 범죄의 죄질이 나쁘고 참혹하다는 점, 흥신소를 통해 주소지를 알아내고 인근에서 잠복하면서 범행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점 등이 양형 이유로 고려됐다.
재판부는 이석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은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 문명국가이자 이성적 사법 국가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다. 사형선고는 누구라도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될 만큼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재판부도 사형 선고를 하지 않는 추세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권재찬과 이석준에 대한 선고에는) 사망한 피해자의 숫자와 피고인의 전과가 함께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하급심에서 사형을 선고할 때는 모든 양형 요소를 고려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에만 이뤄지는 듯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