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겸의 일본in]'유유백서' 실사화…넷플릭스의 모험은 성공할까

90년대 일본만화 3대장 '유유백서' 실사화
넷플릭스 제작에도 깊어지는 팬들 탄식
"흥행담보 원작에만 기대 실사화 고집" 비판
日 3040 여성들 '첫사랑 캐릭터' 구현 가능할지 의문
  • 등록 2020-12-20 오전 8:00:00

    수정 2020-12-20 오전 8:00:00

지난 16일 넷플릭스는 일본 90년대 만화 3대장 중 하나인 유유백서 실사화를 발표했다(사진=유유백서 제작위원회)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허구한 날 싸움박질에 바쁜 중학생 유스케. 어느 날 공놀이를 하다 차에 치일뻔한 아이를 구하고 대신 죽는다. 하지만 저승사자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는다. 사고뭉치 유스케가 선행을 하다 죽는데는 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어서 수명이 넘은 그는 천국에도 지옥에도 갈 수 없다는 것. 유스케는 환생하기 위해 인간계와 영계, 마계를 오가며 영계탐정으로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만화가 토가시 요시히로의 대표작 ‘유유백서’ 이야기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에 이어 일본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3대 만화로 불린다. 지난 16일 넷플릭스는 트위터를 통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유유백서 실사화 소식을 전했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소년점프의 황금기를 이끈 만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실사화된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유유백서 실사판 제작을 맡은 사카모토 가즈타카 넷플릭스 콘텐츠 수급 부문 디렉터는 “당시의 열광과 충격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플랫폼을 최대한 살려 작품을 만들고 원작이 가진 장대한 세계관의 매력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2017년 넷플릭스에서 발표한 강철의 연금술사 실사판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제작자의 포부가 커질수록 원작 팬들의 탄식도 깊어진다. ‘인생 만화’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사화에 실패한 전례가 수도 없다. 드래곤볼부터 바람의 검심, 포켓몬스터, 강철의 연금술사 등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원작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로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바 있다. 일본이 만화 실사화라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만화 강국’ 일본이 콘텐츠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오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쿨 재팬(Cool Japan·멋진 일본) 전략’을 추진했다. 목표는 일본 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018년 3월 “국내 콘텐츠 시장은 저출산 고령화로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없어 해외진출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덴쓰 컨설팅의 모리 유지 사장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일본 경제를 견인하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포켓몬스터의 피카추로 분장한 공연자.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쿨 재팬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펼쳤다(사진=AFP)
문제는 일본이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한 데 있다. 일본이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매달리는 데는 90년대 중반부터 작품 제작 주류를 이뤄 온 ‘제작위원회’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러 기업이 출자한 돈으로 콘텐츠를 만들기에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 역시 뚜렷하다. ‘돈 되는 콘텐츠’만 만들게 된 것이다. 디지털 할리우드대학을 설립한 스기야마 도모유키 학장은 “흥행을 담보하는 유명 만화에 치우쳐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번 유유백서 실사화는 일본 내 제작위원회가 아닌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맡는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란 기대도 있다. 넷플릭스의 자본과 연출,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다.

‘유유백서’ 12권 유스케 vs 도구로 편. 도구로가 가진 힘의 80%를 사용한 장면이다. (사진=김보겸 기자)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지난 14일 넷플릭스 일본 법인이 발표한 일간 인기 작품 ‘톱(TOP) 10’ 순위를 한국 드라마가 휩쓴 것이 대표적이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1·2위를 기록하는 등 순위권 절반은 한국 드라마가, 나머지는 ‘하이큐’, ‘불꽃 소방대’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채웠다.

일본 시청자들 사이에선 “(일본 콘텐츠 시장은) 만화 아니면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 투성이어서 일본 사회상을 그리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거의 없다”며 “애니메이션밖에 남지 않은 일본 영상 산업은 일본이 퇴보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 속, 유유백서가 넷플릭스라는 공룡을 등에 업고도 성에 차는 성과를 낼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유유백서 공식 미남 캐릭터 쿠라마(사진=유유백서 제작위원회)
PS. 유유백서의 공식 미남 캐릭터 쿠라마는 지난 10월 일본 독자들이 꼽은 ‘첫사랑 애니메이션 캐릭터’ 2020년 판에서 3위를 기록했다. 유유백서 3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3년 연속 순위권에 들어가는 캐릭터다. 이번 달 초 일본 3040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아름다운 남성 캐릭터’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원작의 비주얼 재현도 실사화의 관건일진대, 90년대 유유백서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꼽는 미남 캐릭터를 과연 실사화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 만화적 설정은 2차원에 머무를 때 가장 멋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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