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중증장애인들이 제품을 만드는 업체에서 계약업무를 하는 A씨는 사회적 기업 인증여부를 묻는 공공기관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이렇게 묻는 공공기관 상당수는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 정부가 상생경영 지표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도입했지만, 제도적 맹점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이 홀대받고 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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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업계에 따르면 사회적 배려를 우선 받아야 할 `중증장애인 생산품`이 공공기관과의 납품 계약에서 불발되거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중증장애인 고용을 많이 해 제품까지 만들었는데도 공공기관조차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에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했으나 시정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현행 경영평가의 허점 때문이다. 정부는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의 상생·협력을 평가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사회적 기업·장애인 생산품 등을 얼마나 구매했는 지를 배점 3점 내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배점은 △중소기업 생산품(0.4~0.8)△사회적·기업협동조합 생산품(0.2~0.4) △장애인 생산품(0.4~0.8) △여성기업 생산품(0.2~0.4)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현행 평가 체계에서 중증장애인 제품을 구매하든 장애인 기업 제품을 구매하든 평가 배점이 똑같아 공공기관이 굳이 중증장애인 제품을 우선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중증장애인 제품과 계약을 맺는 게 손해일 때도 있다. 한 업체가 장애인 사업장이면서 사회적 기업인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경영평가에서 장애인 생산품과 사회적 기업 생산품 배점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중증장애인 사업장의 경우에는 사회적 기업이 아닌 곳이 많아 장애인 생산품 배점만 받을 수 있다.
중증장애인 사업장 측에선 상생·협력 기조에 따라 장애인들을 많이 고용해 제품을 만들었는데도 오히려 홀대받고 있다. 중증장애인 생산품 생산시설로 인정 받으려면 전체 근로자의 7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전체 근로자의 3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장애인 기업보다 장애인 고용 비율이 높은 셈이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는 “다른 경영평가 지표들과의 형평성을 우선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반면 윤양중 한국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총연합회 회장은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은 설립·운영 취지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증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에서 밀리는 상황은 비합리적”이라며 “경영평가 지표를 장애인 기업과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등으로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고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에 과도한 평가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지표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혜경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개발팀장은 “사각지대를 보완할 지표 조정의 필요성은 있지만 평가 지표를 일일이 나열하는 수준으로 세분화할 수는 없는 만큼 사회적 합의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