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사채와의 공생관계ㅡ정현준 게이트 중간점검

  • 등록 2000-10-26 오전 8:40:40

    수정 2000-10-26 오전 8:40:40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을 둘러싼 파문은 지하자금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0대 초반의 정 사장이 이른바 "사채"를 끌어들여 기업을 인수하고 사채업자는 그를 이용해 손실 위험없는 폭리를 취한 흔적이 엿보인다.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을 둘러싼 파문이 지난달 28일 평창정보통신 공개매수 대금을 결제하지 못한 직후 수면위로 불거진 이후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붙은 표현도 "쇼크" "스캔들" "게이트" "커넥션" 등으로 커지고 있다. 사건의 중심도 한국디지탈라인에서 동방상호신용금고으로 옮겨지고 사건의 성격도 단순 부도 및 불법대출사건에서 사채업자가 낀 정치권 로비사건으로 바뀌고 있다. 이 사건이 급류를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일 충남 서산의 그린필백화점을 운영하는 (주)그린필유통이 부도처리되면서부터다. 그린필은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의 비서실장이자 디지탈라인 주요주주인 강대균씨가 대주주이자(50%) 겸 공동대표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디지탈라인도 충격파로 21일 부도를 냈다. 그러나 이같은 연쇄부도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4일 동방금고 등에서 일어난 정현준 사장 부당대출 및 유가증권 부당매입사실을 인지해 검사역 9명을 파견하는 등 특검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그러나 강력히 반발했다. 사건의 주범이 자신이 아니라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 등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사채를 빌린 것이지 동방상호신용금고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식으로 일축하고 있다. 한 때 상부상조했던 두 사람이 사건이 커지자 등을 돌린 것이다. 정 사장은 M&A를 하면서 사채자금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게 동방금고 인수. 정 사장은 고려대 선배인 하나증권의 투자상담사 K씨의 도움을 받아 150억원을 조달했다. K씨는 한 때 단자사에 근무해 거액전주들을 고객으로 상대한 적이 있고 증권사 지점장 등을 거쳐 이들과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정 사장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했으나 선후배관계와 정 사장의 화술에 넘어가 동방금고 인수자금 214억원 가운데 150억원 가량을 조달해 지원해 줬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150억원을 지원한 투자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K씨측은 한국디지탈라인이 지난 9월말 자금난에 봉착하자 채권단을 구성해 "직할관리"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동방금고 채권자(투자자)들은 담보로 갖고 있던 디지탈라인 주식가운데 약 50만주를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K씨측은 "부도가 나면 피해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란 우려로 정 사장을 도와줄 만큼 도와줬다"고 말했다. 정 사장측은 그러나 600억원대로 알려진 동방금고의 불법대출은 이경자 부회장 및 동방상호신용금고 사장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돈으로 고리의 사채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부도덕한 사채업자의 사기행각에 한 벤처기업가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고 소액주주들도 피해를 봤다며 "나도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일관되게 이 부회장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장래찬 전 국장의 주식투자 혐의를 흘린 것도 이 부회장이 "범법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전체적으로 코스닥시장 침체가 화근이었다. 주가가 하락해 사채업자를 비롯한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투자자와 정 사장간에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리의 이자는 정 사장의 자금난을 가중시켜 몰락을 재촉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거액의 사채자금이 IMF사태 이후 고수익원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코스닥기업에 주목했으나 이는 건전한 투자자금이라기보다는 "원금+고율의 이자"가 보장되는 자금이었다는 점에서 기업성장에 양질의 영양분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보다는 자본시장을 통한 부풀리기와 머니게임에 집착한 "악화"(惡貨)였고 중독자(자금수요자)를 죽음을 길로 모는 "마약"이었던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사채자금과 신용금고, 벤처기업, 고위공직자 등 배경있는 투자자간의 연결고리가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됐다. 신용금고의 경우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지만 공모주의 발행가격을 결정하는 수요예측과정에 참여해 공모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린 사례가 많았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신용금고가 기관투자자라는 명의만 빌려준 것일 뿐 실제 전주(錢主)는 사채업자라는 풍문이 있었다. 비록 이번 사건이 이처럼 사채자금이 공모과정에 개입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사채업자로 알려진 이경자씨가 금고 돈을 자기 돈 쓰듯이 빼내 사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사채자금과 일부 신용금고와의 연결고리가 단순치 않음을 보여준다. 벤처기업 역시 설립초창기의 자금조달을 엔젤투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상당수의 사채자금이 "엔젤"을 가장해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더욱 짙어졌다. 사채자금의 성격상 벤처기업의 성장 가능성 등을 보기보다는 철저하게 투자수익만을 노린다는 점에서 언제 빠져나갈지 모른다. 이번 정현준 커넥션의 파장으로 사채시장이 얼어붙고 정상적인 엔젤투자마저 끊겨 신생 벤처기업들의 자금줄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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