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족벌경영, 성숙한 자본주의 되길-이코노미스트

  • 등록 2001-04-08 오후 1:14:40

    수정 2001-04-08 오후 1:14:40

[edaily] 아시아의 족벌경영체제는 분명 많은 부를 축적해 온 성공사례로 관찰 가능하지만 가족적 경영을 기반으로한 재벌기업들이 주주들과 채권자들, 각종 법규의 테두리 내에서 감시를 받는 보다 성숙한 자본주의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근호에서 지적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 전형적인 아시아의 실업거물, 로버트 쿠옥(郭鶴年)을 보라. 모국 말레이시아에서 화교신분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자식들만큼은 좀더 나은 삶을 살게하리라는 목표를 일찍부터 가졌다. 그 방법은 부를 축적하는 한편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사업분야와 대상국가를 확장하고 그것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50~60년대에 말레이시아에서 제분, 팜유, 설탕 등을 매점하는 것에서 시작해 제조업에서 부동산업으로, 호텔에서 미디어사업으로 그 가지를 방대하게 뻗쳐나갔다. 오늘날 그는 소위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문어발기업"의 총수가 되었고 그 본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등 유수의 도시들을 수차례 거쳐갔다. 그러나 정작 사교적이고 말주변좋기로 소문난 로버트 쿠옥, 그 자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수년전 한 대형국제조사기관이 쿠옥과 그가 거느린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로버트 쿠옥; 정치적 우호관계-알려진 바 없음; 정치적 적대관계-밝혀진 바 없음; 소송-아는 바 없음; 야망-모름. 그의 유교적 경영스타일은 가히 전설적이다. 최근에 그가 주최한 만찬에서 한 손님이 쿠옥의 아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쿠옥은 재빨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요리가 나올 차례"라며 아들에게 주문을 시켜 밖으로 내보냈다. 쿠옥은 리콴유가 정치적으로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비즈니스적으로 구현한 사람이다. 문화적으로 가부장, 권위주의, 정통성 등의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그는 시장조사라는 정형화된 방식을 경멸하고 "배짱정신(gut instinct)"으로 일관한다. 그는 소위 "밤보 네트워크(bamboo network)"로 통칭되는 화교사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계약이 아닌 신용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되 정치적 불안정성과 상인 마인드를 이유로 거래는 항시 일회적으로 한정시킨다. 몇 십 년 동안 쌓아올린 부의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아시아금융위기만 없었더라면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성공사업모델의 전형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사회의 소수집단에 불과하지만 자본시장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경제위기 당시에도 국가경제는 타격입었지만 화교집단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해보이는 화교자본의 사업모델에도 난관은 있으니 그것은 제 1세대 창업자 세대에서 가족단위로 꾸려갈 수 있는 정도의 사업규모에만 적합한 모델이라는 점이다. 사업이 확장되다보면 분명 외부 자본을 유치해야만 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고 이때 가족단위의 통제는 희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본래 사업의 목적인 "가족을 지킨다"는 것과도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화교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피라미드구조"다. 홍콩 중문대학의 재정부분 담당 교수인 래리 랭과 레슬리 영, 그리고 세계은행(WB)의 스티즌 클래슨즈는 "배당과 몰수(Dividends and Expropriation)"라는 주제의 공동연구에서 많은 화교집단들이 피라미드구조로 사업을 꾸려나간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상호자본출자, 기업간 비공식적인 연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자회사의 고리들이라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결국 모든 계열사에서 51% 이상의 지분을 반드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피라미드의 목적은 외부자본을 유치하되 결국은 가족 내에서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즉, "자본시장의 내면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러한 연계 과정은 상당히 복잡해서 추적하기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내셔널뱅크(PNB)가 그 대표적 사례다. 필리핀 화교자본의 대표적 인물인 루시오 탄은 필리핀 전 대통령인 조셉에스트라다와 친분관계에 있었는데 정부가 4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PNB가 신주발행을 한다는 소식에 거기에 참여하게 된 네 기업에게 자신 소유 은행에서 대부를 해주었다. 결국 그 대부금을 담보로 탄은 PNB 93%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도 이러한 족벌경영체제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족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일본이 10% 미만이고 한국과 대만이 50% 이하, 타이와 말레이시아가 60~70%,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그 이상이다. 그러나 유럽 역시 이러한 경영체제들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시아적"이라는 단어로 몰아세우기에는 섯부른 감이 있다. 대신 아시아와 유럽, 양자의 차이라면 그 족벌경영체제의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냐 하는 점일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법규와 변호사, 판사들이 항상 기업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채무자와 주주들이 권리행사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모든 성숙한 자본주의적 시스템들이 주주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감독하고 소액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자본주의도 이런 방향으로 분명 성숙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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