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사례 1.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산행을 온 줄 알았다. 공연장을 들어서자마자 울긋불긋 튀는 아웃도어 복장을 한 대략 30여명의 단체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오페라공연에 등산복이라니. 황당함도 잠시. 공연시작 직전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은 기본이요 미주알고주알 잡담에 옷이 서로 부딪쳐 내는 부스럭대는 소리에 이날 제대로 된 관람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사례 2. 이래도 되나 싶었다. 요즘 같은 겨울의 공연장 단골민원은 ‘발 냄새’란다. 최근 찾은 극장도 다르지 않았다. 공연시작 10여분이 지나자 어디선가 구운 오징어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한 것. 진원지를 찾아 주위를 살피던 중 두 개 좌석 건너 가죽 롱부츠를 가지런히 벗어놓은 여성관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관크에 당했다.” 요즘 공연계에선 ‘관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공연관람층이 급증하면서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만큼 늘어났다.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다른 관객의 공연관람을 방해하는 무례한 행위를 말한다. 온라인게임에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힐 때 쓰이는 ‘크리티컬’이란 말이 관객이란 단어와 합쳐 쓰인다. 주로 공연마니아가 주로 쓰는 은어였는데 지금은 일반화됐다. 공연족 사이에서 회자하는 관크의 종류는 기상천외하기까지 하다. 유난히 큰 머리로 뒷자리 관객의 시야를 가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공연장 내 음식물 반입, 과한 애정행각, 심지어 공연 중 설사나 구토를 하는 관크까지 등장한단다.
△설마…나도? 공연장선 똥머리·모자 금지
찬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오면 공연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한다. 극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11월부터 3월 초까지 객석 난방을 시작하면 ‘기침대란’이 발생해서다. 실제로 지난 1월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말러의 ‘교향곡 1번’ 3악장 도중 갑자기 연주를 중단했다. 1부 연주 때부터 내내 기침릴레이가 이어지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심할 때는 제2의 민원을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 초연 당시 60대 여성관객이 공연 중 쿠키를 먹다 옆자리 관객이 직접 항의하는 과정에서 욕설이 나와 큰 싸움으로 번졌던 것.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고 나서야 마무리된 이 일은 공연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연말연초 ‘음주관객’도 문제다. 이선옥 LG아트센터 하우스매니저는 “회식에서 술을 마신 뒤 송년회 또는 신년회 형식으로 단체관람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공연 중 속이 안 좋아 구토를 한 관객도 봤다”며 “이럴 때 제2의 항의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블록 ○열 ○번 관객 ‘특별’ 지적·기침엔 물과 사탕
영화와 달리 뮤지컬·클래식·오페라 등은 라이브로 진행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티켓값이 10만원 이상의 고가일수록 ‘관크’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장 측에 따르면 일반관객 중 90% 이상은 관크를 경험했다. 하지만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관객은 의외로 적었다. 40%가량은 ‘그냥 내버려 뒀다’. 직접 시정을 요구하거나 공연장 관계자에게 불편사항을 전달하는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므흣’한 베스트 관객도 있어
반면 베스트 관객도 있다. 현장서비스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편지나 따뜻한 음료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관객, 착오를 인정하고 현장규칙에 따라주는 관객이다.
일각에선 공연장 내 전파 차단, CCTV 설치 등 강력한 수단을 요구하지만 국내서는 지금 이상으로 관객에게 관람태도를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공연장 관계자는 “기본 권장사항이 갖는 한계는 배려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서로 조금씩 배려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관크 없는 공연문화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기대하는 만큼 자신이 매너를 지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우스매니저들은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