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①日규제 '플랜B' 없어…소재·장비 국산화 시급해

'제조업 석학'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제조업 경쟁력 떨어지고 글로벌 경제도 침체, IMF 때보다 위기
'제조업 르네상스' 반기지만, 탁상공론 그치면 안 돼
제조업 경쟁력 회복하려면 화관법·화평법 등 규제 완화해야
日수출 규제 "지금도 늦지 않아. 소재·장비 국산화 나서야"
  • 등록 2019-07-10 오전 5:05:00

    수정 2019-07-10 오전 5:05:00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강경래·김호준 기자] “핵심 소재와 부품, 장비 등 그동안 외산에 의존해온 분야에 대한 국산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일본이 최근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식량을 무기화하는 것처럼 소재와 부품, 장비 등은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역량을 키웠어야 했다. 이번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을 보면 이러한 ‘플랜B’가 없었다. 이제라도 비용 문제가 아닌, 생존 문제로 보고 국산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1998년 서울대 1호 실험실 벤처기업 에스엔유(080000)프리시젼을 창업한 우리나라 1호 교수기업인이다. 에스엔유는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차관급)을 비롯해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과 포스코 사외이사 등을 맡고 있다.

박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대로부터 최근 공학원사 학위를 받았다. 원사는 글로벌 명문대학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 중인 해당분야 최고학위다. 이렇듯 ‘제조업 석학’으로 불리는 박 교수를 만나 최근 어려움을 겪는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 제조업 현주소와 함께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최근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 경제지표가 부정적이다.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해 평가해달라.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열이면 아홉은 한계상황이라고 이야기한다. 올 1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였다. 지금을 외환위기(IMF) 때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은데 당시엔 단순히 외화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외환위기 때는 펀더멘탈(Fundamental, 경제기초)이 견고했기 때문에 외환을 확보한 후 곧바로 리바운드(재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 경쟁력도 바닥이고 글로벌 경제도 둔화중 중이다. 리바운드 할 수 있는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 투자해도 될까. 돈을 써도 될까.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제조업이 문제다. 제조업 재고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선과 철강, 자동차에 이어 우리 제조업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 성장마저도 꺾였다.

▷제조업은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는데 지금은 경쟁력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상황이다. 우리 제조업 분야에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여러 해 전부터 나타났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나 R&D(연구·개발) 등을 통해 혁신하지 못했다. 특히 중국 제조업이 갑작스레 부상하며 위기상황에 내몰렸다. 여기에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등에관한법률)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등 정부 규제가 한계상황인 제조업에 ‘카운터블로우’를 날린 상황이다.

-정부가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제조업 르네상스’를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가 뒤늦게라도 제조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반길 만하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이번 발표를 포함해 정부가 내세우는 대책은 대부분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다. 기업과 산업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책이라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이 밖에 컨트롤타워가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과정이 있으면 되는 데 이게 없다. 그러니 기업들은 ‘또 선언 했군’이란 반응이다. 한 마디로 발표만 하고 시행은 제대로 안되는 거다.

-반도체 등 우리 제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이 최근 반도체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등 핵심산업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일본이 이번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소재를 규제키로 했다. 하지만 이들 3종 소재 외에 우리 제조업 전반에 걸쳐 일본에 의존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3종 소재는 일본이 아주 작은 카드를 내민 거다. 일본 기업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한국 기업에 피해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대안이 없는 입장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 등은 단기간에 ‘퀀텀점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식량을 무기화하는 것처럼 핵심소재와 부품, 장비는 늘 무기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플랜B’를 준비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만 소재 등을 국산화하는데 있어 화관법과 화평법 등이 가로막을 수 있어 우려스럽다.

-포스코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인데, 한국 철강산업은 어떤 상황인가.

▷우리 제조업 위기가 모두 반영된 분야가 철강산업이라고 본다. 특히 철강산업에 있어 중국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세계 10대 철강사 중 중국 기업만 5개다. 중국 철강산업은 이미 우리보다 더 나은 생산력과 원가경쟁력을 갖췄다. 동남아시아 지역 철강 수요가 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데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프로세스도 구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기존 철강시장은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는 중국의 도전으로 우리가 수세에 처한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로 가동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용광로는 조업을 중지하면 불을 다시 살리는데 3개월이 걸린다. 이는 한국에서 철강사업 하지 말란 이야기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철강산업을 도와줘도 쉽지 않은 상황에 오히려 가동 중인 고로마저도 중단하려고 한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미래형자동차(수소·전기차) △시스템반도체 등을 3대 중점 육성산업으로 선정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에서 어떤 분야를 육성한다고 할 때 이를 시행하고 성과를 내는 건 기업이다. 결국 정부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 인력양성과 규제개혁, 금융시스템 등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하니까 따라오라고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 바이오헬스 분야는 규제에 막혀 있다. 미래형자동차는인프라가 부족하다. 중국 비야디(BYD)를 알수 있다. 비야디 성장배경에는 정부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가 전기자동차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를 지원해줬다. 여기에 전기자동차와 전기버스 등이 실제로 운행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는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분야다. 우리가 메모리반도체는 1등이지만 시스템반도체는 대만 TSMC 등 해외에 강력한 리더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스템반도체를 연구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3대 육성산업 모두 걱정이 앞선다.

-제조업이 되살아나려면 정부와 민간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우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화관법·화평법·산안법 등 법들은 기업과 함께 기업가까지 처벌하는 ‘양벌제’다. 모두 기업가정신을 근본적으로 갉아먹는 법이다. 우리만의 갈라파고스 같은 규제다. 또 제조업에 인력이 없다. 이는 산학협력으로 풀어야 한다. 우리 대학·연구소는 우수 인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등 제조업과의 산학연계가 부족하다. 대학과 제조업을 연계해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조업이 또 하나 어려운 게 금융이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지니 대출을 회수하는 기간도 확 줄었다. 과거 1년 단위로 했던 회수를 최근에는 6개월, 3개월로 줄이고 있다. 기업 역량과 잠재력을 보고 금융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경기 김포 출생 △우신고·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영국 맨체스터대 기계공학박사 △포스텍 산업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이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차관급)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포스코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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