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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국악계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소리꾼 이자람(36)이다. ‘내 이름 예솔아’를 불렀던 네 살 꼬마는 어느덧 국악계를 이끄는 판소리계 재주꾼으로 성장했다. 대표작은 창작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착한 사람’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전으로 만든 판소리극에 직접 대본과 연출, 작창까지 맡으며 국악공연으로는 드물게 대형극장에서 전회·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사천가’와 ‘억척가’가 프랑스, 폴란드, 브라질 등 세계 공연에서도 큰 주목을 받으며 이자람을 ‘우리 시대 소리꾼’으로 우뚝 세웠다.
△4년만 신작 ‘이방인의 노래’…“맨손으로 무대 선 기분”
그런 이자람이 4년 만에 신작 ‘이방인의 노래’(5월 3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본 보야지 프레지던트’(‘대통령각하, 즐거운 여행을’)를 모티브로 한 판소리극. 영웅적 서사를 그렸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무대에선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주인공인 대통령, 극의 해설자, 웨이터, 보석상점 상인까지. 이자람은 수십명의 인물을 쉴 새 없이 오가며 혼자서 80분을 노래하고 연기한다. 이자람은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에 도망 다니다가 만난 작품”이라며 “맨손으로 무대에 서는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이자람의 신들린 연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얄궂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인을 이야기한 ‘억척가’에서도 다른 등장인물 없이 혼자서 1인 15역을 소화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천재’나 ‘국악계의 모차르트’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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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팔방미인’…올가을 파리서 판소리 워크숍
지난 1월에는 호주 최대 규모의 문화행사 ‘시드니페스티벌’에 ‘억척가’가 초청받아 현지 관객과 처음으로 만났다. 공연 중간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을 정도로 현지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올 가을에는 파리에서 열리는 아티스트 워크숍에 초청받아 강사로 나선다. 일인극으로 진행하는 판소리의 메커니즘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프로그램을 협의 중이다. “단순히 판소리라는 형식 외에 ‘전통과 과거를 잇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 어떻게 연극과 판소리를 접목했는지 그 고민의 과정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국악 신동에서 판소리계를 이끌어갈 기대주로.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만큼 이자람의 행보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본능에 충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주요섭, 톨스토이 등을 작품으로 선택할 때도 본능적으로 끌렸다. 관객 앞에 서면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간절히 원했겠구나’라는 생각에 겸손해지기도, 공연의 참맛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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