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부자=죄인' 프레임을 깨라

  • 등록 2017-09-12 오전 5:38:39

    수정 2017-09-12 오전 5:38:39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강남에 산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넘게 한 집에 살았는데 단지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세금 폭탄’을 걱정하던 날들이 있었다. 집 한 채 말고는 별다른 재산도 소득도 없는 노인들에게 “세금 낼 돈 없으면 이사 가라”고 폭언하는 사람이 경제부총리 자리에 앉아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증세는 ‘부자=죄인’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마치 ‘죗값’을 치르라는 식으로 이뤄지는 모양새여서 불편하다. 이런 형국에서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낼 부자가 얼마나 될까 싶어 또한 불안하다.

정부는 지난달 세법개정안을 통해 초고소득자들에게 적용하는 소득세 구간을 신설하고 명목세율을 인상했다. 정부는 일반 서민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핀셋 증세’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일부 부자에게 과도한 세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인데도, 이들은 방치한 채 이미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하니 ‘징벌적 과세’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위한 군불을 때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초(超)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달 17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말한 것과 연관지어 보면 당·청의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정부는 보유세 강화 역시 일반 서민에게는 전혀 부담이 없다고 강조할 것이다. 다수 국민은 소득세율 인상 때처럼 “속이 시원하다”고 환호할 것이다. 이러한 여론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유세를 높이면 주택시장 전체가 냉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소득세율 인상에 이어 보유세율까지 오르면 소비 위축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까진 보유세 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다만 소득세·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을 결국 단행했듯 청와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을 기재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 ‘김동연 패싱’은 예고된 셈이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무상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바람직한 조세 원칙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인용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이 말은 세수 확보를 위해 급격히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늘려선 안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는 부자의 ‘깃털’을 대놓고 뽑으면서 ‘비명’에는 귀를 닫고 있는 것 같다.

부자가 억울함 없이 세금을 내기 위해선 세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면 부자만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증세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어렵다면 복지 공약을 축소해야 한다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게 대통령이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뒤 ‘이게 나라냐’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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