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록의 미식로드] 세월 주름 깊게 밴 원조 보양식 '추어탕'

  • 등록 2019-03-08 오전 5:00:00

    수정 2019-03-08 오전 5:00:00

서울식 대표격인 용금옥 추어탕


[서울=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번에 소개할 미식로드는 ‘추어탕’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추탕’이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서울식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로 끓이는 탕(湯)이다. 요즘은 도시의 전문식당에서 사철 내내 만날 수 있지만, 과거에는 논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나 맛볼 수 있던 별미였다.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뒷밭의 푸성귀를 넣고 푹 끓여 온 가족이 나눠 먹었다. 그러다 보니 들어가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은 특별히 정해진 게 없다. 지방마다 집마다 맛이 제각각인 이유다.

용금옥 추어탕
그래도 지방마다 끓이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경상도에서는 미꾸라지(미꾸리)를 먼저 삶아 통째로 으깬 다음 배추 우거지나 무청 시래기 등을 함께 넣어 끓인다. 전라도 추어탕은 경상도식처럼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다. 단, 국물에 된장과 들깨 등을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강원도식은 고추장을 풀어 요리하고, 서울식은 사골 육수에 두부나 버섯을 더해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끓인다.

이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 물고기는 대부분은 끝 돌림자가 ‘어’나 ‘치’다. 민어·잉어·농어·숭어처럼 ‘어’자로 끝나는게 있는가 하면, 꽁치·삼치·갈치처럼 ‘치’자로 맺는 종류도 있다. 물론 도미나 대구, 명태처럼 소수 예도 있다. 그런데 추어는 밴댕이나 망둥이처럼 평상시엔 격이 낮은 이름인 ‘미꾸라지’나 ‘미꾸리’로 불리다가 죽어서야 추어가 된다. 정확히는 사람의 식탁에 오르는 추어탕(추탕)이란 음식이 되면서 ‘어’로 격상하는 것이다.

용금옥 추어탕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추어탕 재료에 있다. 요즘은 추어탕 재료 하면 으레 미꾸라지인 줄 안다. 하지만 원래는 미꾸라지와 미꾸리 두 종류가 있었다. 둘 다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민물고기다. 생김새나 생태도 비슷하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종이다. 미꾸리는 입가 수염이 짧고, 몸통이 동그스름하다. 반면 미꾸라지는 수염이 좀 더 길고 세로로 납작하다. 미꾸리는 주로 진흙 바닥에 살고 미꾸라지는 맑은 물에서도 잘 자란다. 다 자란 성체는 미꾸라지가 좀 더 크다. 원래 한반도엔 미꾸리가 더 많았다. 당연히 추어탕 재료도 미꾸리가 더 보편적이었다. 옛날 기록을 봐도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리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1610년경 쓰인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한자로 추어(鰍魚), 한글로는 ‘밋꾸리’ 라고 적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19세기 초에 지은 ‘임원경제지’에는 니추(泥鰍)라고 적고 한글로는 ‘밋구리’라고 썼다.

맛도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더 구수하고 깊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추어라는 이름 그대로 가을이 제철이기 때문에 자연산만으로는 사시사철 영업하는 그 많은 추어탕집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양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꾸리보다는 미꾸라지가 더 빨리, 더 크게 자란다. 추어탕 재료가 미꾸리에서 미꾸라지로 역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역을 대표하는 추어탕 맛집은 전국에 있다. 경상도식은 대구 상주식당, 전라도식은 남원의 새집추어탕, 강원도식은 원주의 원주복추어탕, 서울식은 무교동 용금옥이다. 네 곳 모두 대물림하면서 오랜 세월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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