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0만 그루 百百한 비밀의 숲..몸속까지 '초록샤워'

충북 옥천 산기슭에 숨은 '화인산림욕장'
50만㎡ 넘는 숲에 10만 그루 나무 빼곡
빽빽한 나무 하늘 가려 한여름에도 오싹
시인 정지용 나고 자란 구읍도 들러볼 만
  • 등록 2021-06-04 오전 6:00:01

    수정 2021-06-04 오후 2:32:12

화인산림욕장의 메타세쿼이아 숲


[옥천(충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봄의 끝자락,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걷는다. 지금이 피톤치드의 ‘덕’을 보기에 가장 좋은 철이어서다. 여기에 숲에는 오감을 두루 만족시켜주는 풍경까지 널려 있다. 숲의 빛깔이나, 소리, 그리고 향기와 촉감까지…. 비가 와도 좋고, 바람이 불어도 더없이 좋은 곳이 숲이다. 늦봄의 고즈넉한 숲을 찾아 나선 곳은 충북 온천의 안남면. 이 시골마을 산기슭에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은 숲, 화인산림욕장이 있어서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그리고 새소리, 물소리까지 더해진 숲길이 펼쳐지는 곳. 어느새 답답했던 마음도 저절로 비워져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화인산림욕장에 핀 엉겅퀴


화인산림욕장을 47년간 홀로 가꾸어온 정용홍 대표
◇국내 최대 메타세쿼이아 숲을 조용히 산책하다


화인산림욕장은 안남면과 안내면 사이 여수울산(235m) 산자락(50만 ㎡ 임야)에 자리하고 있다. 이 숲에는 메타세쿼이아, 니까다솔, 낙엽송, 잣나무 등 10만여 그루의 굵은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옥천 출신 사업가인 정홍용(77) 씨가 산을 사들여 48년간 정성으로 일군 숲이다. 이전에는 인근 3개 마을의 공동 소유였다. 이곳에 전기를 들이기 위해 마을은 이 산을 팔기로 했고, 1975년 정 씨가 사들인 것이다. 이후 정 씨는 틈틈이 고향 땅으로 내려와 나무를 심으며 숲을 가꾸기 시작했고, 2013년 일반에 수십년간 베일에 쌓였던 ‘비밀의 숲’을 공개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피톤치드 샤워에 나선다. 출발점은 주차장 앞 매표소. 이곳에서 오르는 길(1481m)과 내려오는 길(2525m)을 걸으며 다양한 나무와 함께 산림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르고 내려오는 길은 두세 번 쉬며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입구부터 하늘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로 가득하다. 사실 이곳은 국내 최대 메타세쿼이아 군락지다. 정 씨는 이곳에다 3만 5000여 그루의 메타세쿼이아를 심었는데, 약 1만 여그루만이 살아 남아 지금의 숲을 이뤘다.



숲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다. 메타세쿼이아 숲 그늘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다. 한낮에도 햇빛보다는 나무 그늘이 온몸을 감쌀 정도로 나무가 빼곡하다. 산허리를 감고 이어지는 숲길 내내 피톤치드의 향기도 출렁거린다. 조금 더 오르니 소나무 숲과 참나무와 밤나무, 편백 숲도 반긴다. 산 정상에는 산 너머로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옥천의 들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화인산림욕장의 메타세쿼이아 숲
산림욕장 오르막길에는 ‘비상연결로’라는 이정표가 있다. 노약자를 위해 산중턱을 연결해 놓은 비상통로다. 이 통로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가지 않고도 피톤치드 내뿜는 메타세쿼이아와 편백이 주위를 채운 평탄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다리가 불편한 정씨가 노약자를 배려해 만든 코스다. 여기에 계단이 없어 다리가 조금 불편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코스를 구성했다. 또 쉼터 곳곳에는 커다란 바위 의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게 했다.

화인산림욕장의 가장 큰 미덕은 조용하고, 고즈넉하다는 것. 물론 눈을 확 휘어잡는 경관은 없다. 그래도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제 발걸음 소리만 데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청량한 기운이 온몸에 번진다. 산책로는 서너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구간이 잘 꾸며져 있다. 2시간의 숲길을 걸은 후 정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그는 “봄도 좋지만, 가을이 가장 예쁘다”면서 “메타세쿼이아에서 황금색 낙엽이 눈처럼 떨어질 때가 장관이니 가을에 꼭 다시 오시라”고 손 흔들었다.

충북 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 한권의 시집이 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다.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 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된 곡. 사실 이 노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이 노래 덕분인지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랐다.



그가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한 고향이 바로 옥천 구읍이다. 구읍은 예전 옥천의 중심지.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이곳에는 정지용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이다.

정지용 생가는 구읍사거리 청석교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지금의 생가는 1996년에 옛 모습을 복원했다. 생가 앞 청석교 아래에는 여전히 ‘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물론 그 모습은 변한지 오래지만,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기만 하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면,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보고 있다. 정지용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의 죽향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14살 때는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했다.

옥주사마소


생가 바로 옆은 정지용문학관이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죽향초등학교도 지척이다. 이 건물은 1926년 지어진 건물로, 70년 넘게 보존돼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학교 운동장에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그 세월의 간극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전통체험은 물론 한옥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하룻밤 쉬어가며 시간여행을 즐기기 좋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조선시대 지방 고을마다 사마시(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과거시험) 합격자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옥주사마소’, 지역민과 여행객의 사랑을 받은 생태공원 ‘교동저수지’, 여기에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한 ‘육영수 여사 생가지’도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옥천 구읍 실개천 골목에 그려진 벽화
여행메모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을 내려서자마자 바로 군청이 있는 중심가다. 군청 앞에서 문정삼거리까지 가서 좌회전, 곧이어 나오는 문정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구읍이다.

△먹을곳= 옥천의 터줏대감 맛집으로는 문 연 지 60년을 넘긴 구읍할매묵집이 첫손에 꼽힌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열었다. 지난 2009년 주인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 막내아들 내외가 식당을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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