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는 이날 지역 바닥민심을 훑는 데 전력했다. 주말 일정을 세종시 예정지 이장단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부부처 이전보다는 주요 대기업이 들어가는 수정안이 주민 생활에는 도움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이날 정 총리 일행은 `냉온탕`을 번갈아 겪었다. 일부 주민들은 충청 출신 정 총리에게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 행정도시 원안 사수를 주장하는 주민들은 정 총리 일행이 지나갈 때 강한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조치원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을 찾았다. 저잣거리의 여론을 온몸으로 부딪치겠다는 의미다. 찐빵집과 과일가게, 건어물 가게 등을 방문하며 “세종시에 기업이 들어오면 장사가 더 잘된다”며 설득했다. 지갑도 후하게 열었다. 만두와 진빵, 딸기, 멸치 등을 사는데 15만원이나 들였다.
지역의 완고함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확인했다. 정 총리는 건어물 가게에서 한 70대 할머니에게 멸치 한 박스를 선물했다. 이 할머니는 정 총리에게 “이 지역을 위해 투쟁합시다”고 말했다. 고무된 정 총리는 “수정안은?”이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원안 사수 합시다. 충청도 사람들은 고지식 해서 한번 정하면 그대로 가는 겨..”라는 것. 오히려 그 상황을 지켜본 한 50대 남성은 정 총리에게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호통쳤다.
재래시장에서 빠져 나온 정 총리는 세종시 예정지에서 이주해온 정헌교(72)씨 집을 찾았다. 정 씨는 6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아 3000만원짜리 전세 주택에 살고 있다. 지체장애 3급인 정 씨의 부인은 정 총리와의 대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그대로 있었으면 집이라도 있어서 집 가지고는 서러움 안 받는데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 안 나올 수도 없었다”며 한탄했다. 순간 정 총리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 총리와 이날 점심을 했던 예정지 이장들은 주로 "원주민들은 원안이 됐던 수정안이 됐던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로 인한 불확실성이 조속히 종식돼야한다는 정부 입장과 같은 부분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 지역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충청 출신 정운찬 총리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주민들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사수대책위 추진위원회가 많은데 이 지역에 정말 원안 수호를 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정치적으로 활동하는분 많다고 들었다"며 "여러분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빨리 표출해주면 반영하겠다"고 말한 정 총리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