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엄청난 재난이 우리를 뒤덮고 있다. 27일 오후 4시 기준 국내 확진자가 총 1766명으로 확인됐다. 이미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자인 186명을 훌쩍 뛰어 넘은지 오래다. 확진자가 집중된 대구에는 중심가도 한산하다.
비상시국인 만큼 정부의 리더십에 시선이 모아진다. 메르스 사태 당시 정권의 무능함과 불통에 크게 실망한 만큼 현 정권에 기대가 컸다. 실제로 연일 고군분투하는 질병관리본부와 방역 관계자들을 향해 ‘고마워요_질병관리본부’ 응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합격점을 줄 수가 없다. 단지 확진자가 하루에 100명 이상 급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우선 마스크 품귀에 대해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는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지만 시중에서 마스크 하나 구입하기 어렵다. 가격도 평소보다 훨씬 비싸다. 중국으로 국내 생산량 절반이 수출된 탓이다. 뒤늦게 정부는 마스크 수출을 제한하고 당일 생산량의 절반을 약국, 우체국 등에서 판매하기로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아침 일찍부터 줄서는 모습이 상상되고, 장애인이나 노약자는 구입하기가 어렵다. 그냥 마스크를 정부가 주도하여 시민들에게 공급하면 안 될까.
헌법에는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에게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할 때다. 정부가 마스크를 전량 구매해서 가구당 일정량을 공급하자. 늦어진 개학에 맞추어 보상을 전제로 학원을 휴원하게 하고, 맞벌이 부부가 불편함이 없게 긴급 돌봄 서비스도 대폭 확대하며,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물론, 특히 대구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도 포함되면 금상첨화다. ‘코로나19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이 필요하다.
지금 대구 지역 내 병원은 포화상태다. 그렇다고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경기도 소재 병원에 확진자가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구 지역 확진자들을 서울시립병원으로 이송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해가지 않는다. 우리가 연방제 국가도 아닌데 이런 비상시국에 정부가 각 지역상황을 고려해서 통일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현재와 같이 어느 지역은 거절하고 다른 지역은 수용하는 것은 재난이 극복된 이후에 후유증만 남게 된다.
끝으로 앞으로는 전문가집단의 의견을 조금 더 경청해야 한다. 대한감염학회는 정부가 2월 3일 후베이성에 대한 입국 제한을 시행하자마자 “주변 국가의 유행이 적절히 통제되기 전까지는 위험지역에서 오는 입국자들의 제한이 필요하다”며 “후베이성 외의 중국지역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40%를 차지해 후베이성 제한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됐다”고 전폭적인 차단 전략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2014년에 헌법재판소도 결정했듯이 외국인은 헌법상 입국의 자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한감염학회의 입장은 전염병 방지를 위한 것이지 외국인 혐오와는 무관하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보장이므로 감염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태 초기에 중국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은 모두 입국금지를 했어야 했다. 오히려 지금은 한국인을 입국 금지하는 나라가 홍콩, 베트남 등 16개국에 달하고, 중국 일부 지역에서조차도 입국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사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는다. 천주교회는 236년 역사상 최초로 모든 미사를 중단했고, 대표적인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도 지난 23일 예배 등 모든 교회 모임을 중단했다. 정부도 잘못한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보다 과감한 정책을 시행해서 조속히 재난을 극복하기를 바란다. 대구 이마트 앞에 길게 줄선 시민들을 보게 되면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정부가 주민센터나 구청을 통해 가구구성원에 맞춰 마스크를 저렴하게 팔거나 무상으로 공급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