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25일자 30면에 게재됐습니다. |
| ▲ 천민정 `포케맨`(사진=성곡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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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950년대 중후반 미국 미술계에 새로운 기류가 일기 시작했다. 추상표현주의의 엄숙함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매스미디어와 광고 같은 대중문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줄기.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이 나서 활활 불을 지폈던 이 경향은 바로 `팝아트`다.
`포퓰러 아트(Popular Art)`를 줄인 팝아트는 말 그대로 풍자다. 현대 산업사회를 격렬하게 타고오르는 대중적 형상을 `정숙한` 미술에 수용하고자 한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 미술계에선 친해지기 어려운 분야였다. 풍자의 유머코드가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새해 첫 전시로 미디어 아티스트 천민정의 팝아트를 세웠다. 게다가 `폴리팝`이다. 대중문화에 현실정치를 얹은 `폴리티컬(Political) 팝아트`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 도미, 메릴랜드와 뉴욕 등에서 활동해왔다. 커뮤니케이션시대에 넘쳐나는 가공할 정치문화와 자극적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적 풍자세계에 일찌감치 눈이 틔었다. 전시장을 채운 작품들은 그 전부다. 마치 대대적인 정치적 선동으로 보이는 그의 `폴리팝` 전은 코리안인 동시에 아메리칸으로서 체득한 혼재된 팝문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주제도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오바마 방` `독도의 방` `다이아몬드 방`. 이들 전시실에선 최근 정치·팝문화의 대표 아이콘이 된 오바마를 빗대고 한국과 일본, 북한과의 관계를 에두르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문제를 콕 집어낸다.
| ▲ 천민정 `예스, 위 캔! 오바마와 나`(사진=성곡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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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원색과 미디어아트로 무장한 디지털페인팅·조각·영상 등의 작품들은 그럼에도 위압적이거나 낯설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경쾌하다. 가령 `예스, 위 캔! 오바마와 나`라는 디지털페인팅에서 불끈 솟은 알통을 자랑하는 두 사람은 오바마와 작가 자신이다. 작품은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여성들을 근로현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만들었던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포케맨`도 있다.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을 일본 만화영화 포켓몬에 빗대 세운 이 작품은 절대권력의 획일성을 대놓고 조롱한다.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건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귀여운 포켓몬의 허세다.
민감한 정치이슈들을 한 데 뭉쳐 쏟아부은 재기발랄한 이미지 폭격은 3월11일까지다. 02-737-7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