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별로 계좌번호 숫자 개수와 배열 순서 등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공통으로 담긴 것은 계좌를 개설한 지점 코드와 계좌의 종류다.
12~14자리…은행 및 상품코드
KEB하나은행 계좌번호는 14개 숫자로 돼 있어 가장 길다. 처음 시작하는 앞에 숫자 3개는 계좌를 튼 지점코드다. 맨 마지막 숫자 2개는 적금, 예금, 대출, 신탁 등 상품을 구분한다. 가운데 두는 숫자 9개를 가지고 겹치지 않는 선에서 무작위로 추출한다.
국민은행도 14자리다. 맨 앞에 숫자 4개는 은행 영업점 코드다. 다음에 붙는 숫자 2개는 상품 종류를 의미한다. 나머지 8개 숫자를 갖고 무작위로 계좌번호를 뽑는다.
우리은행은 13자리다. 점포 코드와 상품 코드가 3개씩 총 6개 붙는다. 나머지 7개 숫자로 계좌번호를 만든다.
이런 터에 각 은행은 고객의 계좌 번호를 보면 구분해낼 수 있다. 어디 지점에서 계좌를 텄는지, 어떤 상품인지 등을 구분해낼 수 있다. 더 이상의 정보는 담지 않는다.
다만 해당 계좌번호가 실제로 유효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은행별 고유의 식별 방식이 숨겨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당 계좌번호에 정해진 변수를 적용했을 때 나오는 결과 값을 보면 계좌번호가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다”며 “영업 방식이라서 설명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길고 복잡한 계좌번호 시대 안녕
길고 복잡하기만 하던 계좌번호 시대는 갔다. 원하면 고객이 계좌번호도 직접 만든다. 신한은행은 평생계좌번호 서비스를 통해 입출금 통장에 한해서만 고객이 원하는 10~14자리로 된 계좌번호를 준다. 맨 첫 자리 숫자는 무조건 0으로 시작해야 한다. 숫자 0이 14개로 된 계좌번호도 선점만 하면 쓸 수 있다.
은행은 사라져도 계좌번호는 살아 있다. 신한은행이 합병한 동화은행과 조흥은행(강원은행과 충북은행 합병)의 계좌번호는 지금도 쓰인다. 국민은행이 흡수한 주택은행 등, 우리은행이 합병한 상업·평화·한일 은행, KEB하나은행에 속한 외환·하나·서울·충청·보람 은행 계좌도 마찬가지다. 다만, 숫자만 살린 것이라서 은행명은 통합한 쪽 명칭을 따라야 한다.
계좌번호 부족? 아직은 넉넉
원하면 계좌번호를 없앨 수 있다. 당사자나 상속인이 은행에 신청하면 된다. 한번 없앤 계좌번호는 다시 안 쓴다. 앞뒤 사용자의 금융거래가 섞일 수 있어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속인 간에 분쟁으로 이미 수년 전에 사망한 피상속인의 폐지 계좌 금융거래 내용을 확인하려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폐지한 계좌번호를 재활용할 수 없는데, 언젠가 번호가 바닥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정해진 숫자 안에서 신규 계좌번호를 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현재 숫자 정도면 넉넉하다”며 느긋하다. 예컨대 우리은행은 한 지점에서 입출금 통장 계좌를 999만9999개 만들 수 있다. 계좌번호 13자리 가운데 7자리 숫자로 조합한 결과다. 한 지점에 할당된 계좌 수가 동나면 다른 점포를 통해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은행 점포는 전국에 887곳 있다. 산술적으로 입출금 통장 계좌번호 88억6999만개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