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의 톡톡아트]마담 퐁파두르는 왜 아르테미스가 되었나?

'까도녀'와 '차도녀'들 홀로 오지로 떠나다
  • 등록 2012-08-24 오전 8:58:45

    수정 2012-08-24 오전 8:58:45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여성들 속에는 각자 저마다의 여신이 산다. 분석심리학자 C. G. 융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내면에 ‘신화적 공간’이 있으며, 신화 속의 여신은 여성들 자신의 인생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신화 속의 어떤 여신들이 나와 닮았는가를 알아보는 일만으로도 신화는 이미 수천 년 전의 전설이 아닌, 현실적인 역할모델로서 내 무의식 속에서 나의 절친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내 안에 어떤 여신이 사는가? 내 마음 속 여신의 유형은 내가 맺는 남성들과의 관계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친다. 내가 어떤 유형의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떤 유형의 남자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되는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여신이 내가 그 남성을 좋아하도록 이끈다니,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퐁텐블로파, 사냥꾼 아르테미스, 1530-60년경 :이 작품의 모델은 프랑스 국왕 앙리 2세(1519-59)의 연인, 디안 드 푸아티에로 전해진다.


신화 속에는 수많은 여신들이 있지만, 여기 소개하는 아르테미스는 생각보다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비너스나 아테나보다 아르테미스에 더 끌릴 때가 많다. 젊어서는 비너스를 열망하게 마련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르테미스에 매혹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어떤 성향이기에 그런 것일까? 아르테미스는 사냥과 달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야생동물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특히 그녀는 어린 야생동물의 수호신인데, 수사슴, 암사슴, 수토끼, 메추라기 같은 것은 그녀의 붙잡기 어려운 성질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암사자, 멧돼지, 곰 같은 거친 동물을 수호신이기도 한데, 암사자는 사냥꾼다운 용맹과 위엄을, 사나운 멧돼지는 파괴적 성향을 드러낸다. 또한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아르테미스의 역할은 곰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렇듯 아르테미스는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을 만큼 제멋대로이고, 강인하며, 독립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녀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독립심과 자신감의 원형인 동시에, 마치 자웅동체처럼 그 자체로 완전함의 원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남자 없이도 인생을 재미있고 활기차게 사는 여성들의 수호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 마르크 나티에, 다이아나로 분한 마리 아델라이드, 1745년
서양미술사 속에서 특별히 아르테미스로 분한 실존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좀 더 지적인 해답을 구해보도록 하자.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 속의 중요한 인물들이 스스로를 신화 속 인물로 분하여 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르테미스로 분한 여자들이 꽤 존재하는데, 독특하게 기억에 남는 여자들이 있다. 18세기 로코코 예술의 선봉에 섰던, 오늘날로 말하자면, ‘패셔니스타’이자 ‘잇걸’이었던 마담 퐁파두르, 마담 퐁파두르가 사랑했던 루이 15세의 어머니 마리 아델라이드, 프랑스 앙리 2세의 연인이었던 디안 드 푸아티에, 아르테미스로 코스튬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냥꾼으로서 자신을 그리게 했던 마리 앙트와네트. 모두 왕과 왕실에 관련된 이 여자들은 기꺼이 자신을 사냥꾼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그려지길 원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들은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보호하고 무장하기 위해서 아르테미스가 되고 싶어 했고, 혹은 무장을 해제하고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서 아르테미스를 닮고 싶어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 마르크 나티에, 마담 퐁파두르, 1746
먼저 마담 퐁파두르는 왜 그 수많은 여신들 중 아르테미스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야만 했을까?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는 20년 가까이 왕의 측근으로 예술문화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였을 뿐 아니라 섭정까지 했던 여인이다. 요즘말로 하면 외모가 ‘베이글녀’였던 퐁파두르는 ‘왕관 없는 여왕’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권세를 누렸는데, 그녀가 얼마나 실세였던지 당대 예술을 ‘로코코 스타일’이라고 부르지 말고, ‘루이 15세 스타일’이라고도 부르지도 말고, 그저 ‘마담 퐁파두르 양식’으로 부르자고 할 정도였다. 그녀는 9살 때 왕의 애첩이 된다는 점성술사에 예언에 따라 유별난 어머니에 의해 왕의 여자로 길러진 존재다. 왕의 측근과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마침내는 왕의 눈에 띄어 왕의 가장 오랜 연인으로 남는데 성공하고, 끝내 왕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며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그녀는 1756년 베르사유조약을 이끌어내고, 7년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여자로 반대파에 낙인을 찍히게 된다. 신흥국가인 프로이센을 견제키 위해 평소 앙숙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외교혁명을 이끌어내는데, 훗날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트와네트와 루이 16세의 정략결혼의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는 능력 밖의 일에 지나친 월권행위를 하게 됐던 것이고,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는 격언처럼 42세의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이 죽음은 여전히 불분명하고 미스터리한 것으로 남아있다.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들은 대부분 드레스를 곱게 입고 다소곳이 카우치에 앉아 책을 펼쳐들고 있는 이지적인 분위기의 것들이다. 이에 반해 아르테미스로 분한 퐁파두르의 모습은 매우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왕을 중심으로 한 로얄패밀리들의 신격화는 자연스럽지만, 애첩이었던 그녀가 여신으로 격상됐던 것은 당대 그녀가 얼마나 왕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누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아마 그녀가 자신을 아르테미스가 담았던 진정한 이유는, 왕의 애첩들의 질투와 음모가 난무하는 궁정생활과 반대세력들의 악평이 난무하는 정치생활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 자신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 그러니 ‘니들 조심해! 나 잔인하고 대범한 여자야!’를 강조해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억압된 궁정생활을 훌훌 떨쳐버리고 홀연히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원초적인 야생의 삶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돌프 울리히 베르트뮐러, 사냥복을 입고 있는 마리 앙트와네트, 1785년
마리 앙트와네트는 아르테미스로 분하지는 않았으나 사냥하는 모습, 사냥꾼의 모습으로 드러내길 좋아했다. 그녀의 취미생활이 소젖 짜기였다는 사실은 바로 그녀가 얼마나 아르테미스적 인간이 되고자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리 앙트와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천진하게 되물었다는 무개념의 왕족으로 기억된다. 정략결혼의 희생양인 오스트리아의 공주님이었던 그녀가 말 많고 탈 많은 까다로운 프랑스 귀족들과 함께 해야 하는 궁정생활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는가? 그런 궁정생활의 무료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은, 바로 루이 15세와 마담 퐁파두르를 위해서 만든 쁘띠 트리아농 궁전에서 소와 양과 닭 같은 동물을 키우는 한편, 소젖을 짜고 낚시도 즐기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마리 앙트와네트에게는 농사도 낚시도 소젖 짜는 것도 생업이 아닌 호사취미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빡빡하기만 한 왕실생활에서 유일하게 벗어나는 길은 소젖을 짜고 동물과 교감하는 등 얼마간의 노동에 바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시간만이 자신의 야성이 되살아나는 생(生)체험을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 순간만이라도 자유인이 되는 착각에 빠졌을 것이다. 마치 아르테미스가 벌거벗고 사냥개와 같이 들판을 맘껏 뛰어다니는 것처럼!

미국의 현대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젊은 남자의 오토바이에 타고 자신의 동네인 뉴멕시코 애비큐를 달리는 도중, 잠시 포즈를 취하다.(1944년)
18세기의 두 여자가 야생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실패한 비극적인 존재들이었다면, 진짜 야생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생을 마친 성공적인 아르테미스가 있다. 바로 미국의 현대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이다. 그녀는 40년 가까운 세월, 거의 홀로 뉴멕시코 오지의 거친 황야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엄청난 친화력과 진정한 자유를 누린 예술가였다. 오키프는 도시에서의 삶과 세속적인 미술계,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뉴욕 주 북부의 조지아 호수나 뉴멕시코주의 타오스로 떠나곤 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찾은 곳은 풍요의 땅이 아니라 사막과 같은 오지의 거친 황야였던 것이다. 그녀의 삶과 작품을 보면, 황야는 황야를 아름답게 보는 시선에 의해 아주 아름다운 곳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의 황야행은 자신 안의 황야(상처)를 찾아가 어루만져 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인간은 사막과 황야와 같은 원초적인 땅에서 가장 명상적이 되며, 가장 단순하고 명징한 삶을 살게 된다. 오키프 역시 그런 삶 속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던졌고, 그 속에서 오랜 병과 마음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100세까지 아주 활력 있게 창조행위를 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키프가 가장 아르테미스다웠던 점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절친’들을 내쳤는데, 그중 자신의 평전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미술사가 아니타 폴리처와의 40년 우정을 단칼에 내칠 정도로 잔인한 여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 속의 아르테미스는 건재한가? 내 안의 아르테미스를 발견하기 위해 반드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의 야생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아르테미스의 환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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