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화재로 건물 내부가 타버린 서울 송파구 잠실동 나우고시텔. | |
이곳은 ‘21세기 쪽방촌’. 밤에는 화려한 네온불빛으로 눈부시고, 낮에는 아파트 단지로 번듯한 서울 강남. 하지만 그 화려함의 그늘속엔 밥벌이가 절박한 서민들이 살고 있었다. 월세 20여 만원의 최저가 숙소를 찾아 고단한 몸을 뉘었던 일용직 근로자, 취업 준비생, 유흥업소 종사자, 가난한 가장이 이곳의 주민들이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고시원엔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만 남았다.
◆쌍둥이 두 딸 두고 간 기러기 아빠
▲ 수영장에 가자는 쌍둥이 딸들과의 약속을 아빠는 끝내 지키지 못했다. 20일 오후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에서 쌍둥이 자매 지수와 혜수가 고시원에서 화재로 숨진 아버지 손경모씨의 영정 앞에 서 있다. | |
외환위기 이후 손씨는 ‘생계형 기러기 아빠’가 됐다. 1998년 손씨가 운영하던 목욕탕 매점은 망했다. 학원 영어강사였던 아내 이모(42)씨가 쌍둥이를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두자, 그가 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차린 가게였다. 재기(再起)는 힘겨웠다. 2년 전쯤 잠실의 13평짜리 주공아파트를 팔아 아내에게 피부관리실을 차려줬다. 전 재산이었다. 하지만 여성전용 피부관리실에서 가족이 함께 사는 건 불가능했다. 아내 혼자 관리실에 딸려있는 방에서 지냈고, 쌍둥이 딸은 전남 구례의 외가(外家)에서, 그는 고시원에서 지냈다. 그렇게 떨어져 산 지 1년.
“그렇게 어렵게 살더니, 어떻게 이렇게 혼자 갈 수가 있어….” 20일 경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아내 이씨는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친구 조모(41)씨는 “다 내 탓”이라고 엎어져 울었다. 고시원에 불이 난 당일 오전 11시. 손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석촌호수에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손씨는 평소 고시원 방이 좁아서 답답하다며 근처 석촌호수를 즐겨 산책했다. 조씨는 “피곤하니까 다음에 가자”고 했고, 손씨는 “그럼, 할 수 없지. 저녁에 일하러 나가기 전까지 눈이나 붙여야겠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