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 정중원(33).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그는 “진짜보다 진짜 같은 복제품으로 원본과 복제에 대한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즐겁다”고 극사실주의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를 말했다.
정 작가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부터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고흐 등 역사적 인물, 심지어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까지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생생히 되살려 냈다. 고흐처럼 자화상을 통해 어렴풋이 생김새는 알지만 실제 얼굴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재해석을 통해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초상화로 뚜렷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자화상의 복제품이지만 털 한 올까지 살려 그린 그림은 마치 실제 고흐 얼굴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초상을 직접 SNS에 공유하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정 작가는 본인과 모델만 아는 비밀을 그림 속에 숨겨두기도 한다. 그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를 그리는데 사료를 보면 와일드의 눈동자는 파란색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참고로 한 모델의 눈동자 색을 따라갔다”며 “미세한 부분이지만 마치 이게 실제인 양 장난을 치는 게 재밌었다”며 웃었다.
정 작가는 책을 통해 초상이 갖는 개인적·사회적 맥락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초상은 미술관에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지갑 속 지폐의 인물들, 연인의 사진, 명동 거리에서 보는 유명인의 모습도 다 초상이다”고 설명했다. 각 초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사회와 개인에 대해서 많은 걸 설명하는데 한 예로 지폐 속 초상이 500년 전 사람인 점은 근현대사에 대한 합의가 안 된 우리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책 속에서도 ‘사회와 초상화’ 부분을 가장 공들여서 썼다고 했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2011년부터 극단에도 서고 있는 정 작가는 “연극과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에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연극도 결국 내가 생각하는 극 중 인물을 연기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연극을 하면서 만난 개성 있는 사람들에게 초상화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며 “램브란트, 미켈란젤로, 마르크스 등 그리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이 가득하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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