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연극은 있다

60대 배우, 70대 연출·작가가 그린 쓸쓸한 자화상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안하는 하루하루" 무력감이 무대를 휘젓고…
"오래 산 사람들이 들려주는 삶과 지혜에 대한 이야기"
  • 등록 2010-03-18 오후 12:00:00

    수정 2010-03-18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일흔 넘은 독거노인 장윤수가 빈 소주병들 사이에 엎어진 채 발견됐다. 냉장고는 비어 있었다. 사인(死因)은 알코올 중독과 영양실조로 인한 과로사였다. 연극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윤대성 작·임영웅 연출)은 이 쓸쓸한 죽음을 내시경 삼아 고령화시대를 들여다본다. 지금 부모 세대가 겪는 외로움과 공포, 다음 세대에도 닥칠 노년의 불안한 자화상이 펼쳐진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4층. 집의 형태를 표시하기 위해 바닥에 테이프를 붙인 다락방에서 연습이 한창이었다. 연극과 현실이 겹쳐졌기 때문일까. "우리 나이에 누가 밥을 해 주냐. 알아서 때우는 거지"라는 대목에서 너나없이 웃는다. 《한 번만 더…》는 작가와 연출가가 70대이고, 배우 4명도 평균 60세다. 오는 2018년이면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로 접어들게 되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실버 연극'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은 노년문제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한다. 왼쪽부터 이호성·손봉숙·권성덕·이인철. /산울림 소극장 제공

◆잊혀진다는 쓸쓸함

연극은 방송작가 나상일(권성덕), 명예퇴직한 은행 지점장 서우만(이인철), 배우 이영호(이호성) 등 친구들이 문상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의 대화나 독백을 들으면 우리 사회의 70대가 서 있는 비탈이 보인다. 빨리 출세하는 게 좋은 줄 알았던 우만은 명퇴 후 등산이나 다니며 시간을 죽이는 신세다. 상일은 방송 트렌드가 바뀌면서 잊혀졌다. 영호도 "PD들이 젊어져서 우리 같은 늙다리는 쓰려고도 안 한다"고 푸념한다.

노년은 길다. 상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지옥"이라고 말한다. "노인이 되면 망각이 다 잊게 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생생해진다"는 것이다. 무력감이 무대를 지배한다. 영호는 쓸쓸하게 말한다. "내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나이가 되었다. 죽음만이 저만치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장식이 없는 무대

장윤수의 시골집 마루가 그대로 장례식장이 된다. 무대는 간소하다. 영정과 향, 병풍과 술상이 있을 뿐이다. 배우들은 분장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다. 연극은 장윤수와 이혼한 전처 홍 여사(손봉숙)가 등장하고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새 물길을 낸다. 화장(火葬) 장면에서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홍 여사의 진혼무(안무 조흥동)가 펼쳐진다. 박윤초 명창의 구음(口音)도 곁들여진다. 연습할 때 영정이 들어갈 액자는 텅 비어 있었다. 연출가 임영웅은 웃으며 "내 사진을 쓸까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희곡 《출세기》 《남사당의 하늘》을 썼고 드라마 《수사반장》으로도 알려진 극작가 윤대성은 《한 번만 더…》의 주제에 대해 "점차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생각, 이 시대에 당면한 노년의 문제를 나와 친구들의 사례를 들어 고백적인 솔직함으로 접근한 작품"이라고 했다.

연극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기도 하고, 웃음도 터진다. 연극을 하기로 의기투합하는 엔딩은 삶의 의지의 상징이다. 임영웅은 "'노인 드라마' 같지만 핵심은 오래 산 사람들이 들려주는 지혜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산울림소극장 25주년 기념무대다.

▶23일부터 5월 2일까지 서울 산울림소극장. (02)33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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