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히포크라테스를 부정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 4강 의(醫)
모르가니, 2000년간 이어진 히포크라테스 이론 부정
피르호의 병리학, 제너의 면역학으로 현대 의학 정립
챔버랜드 필터, 바이러스 발견에 기여
  • 등록 2020-05-26 오전 5:30:00

    수정 2020-05-26 오전 5:30:00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 의(醫)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히포크라테스(왼쪽)와 갈레노스.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정윤철 PD, 정리=김무연 기자] 의학은 순환의 역사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출발한 의학은 고대 로마와 중세 페르시아를 거쳐 다시 르네상스 시대 로마로 돌아와 현대 의학으로 발전했다. 또 의학의 발전은 혁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2000년을 이어온 거장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부정하면서 현대 의학이 싹틀 수 있었다.

현대 의학은 병리학과 면역학이란 두 축으로 완성됐다. 다만 현대 의학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위기를 맞았다. 임규태 박사는 현대 의학이 직면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선 다시금 출발점,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현에 반기, 현대 의학의 밑바탕 되다

서양 의술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악령 때문에 병이 깃든다는 당시의 관점과는 달리 기술적인 부분으로 질병에 접근했다. 인간이 점액, 혈액, 흑담즙, 황담즙으로 구성됐다는 4체액설을 바탕으로 이 액체들의 불균형이 병을 불러온다고 짚은 것.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은 향후 2000년 간 유럽의 의학적 사고를 지배한다.

히포크라테스 사후 약 500년 뒤에 나타난 로마제국의 갈레노스는 ‘해부학’에 관심을 보였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시체 해부를 할 수 없었던 갈레노스는 콜로세움 검투사들을 치료하거나 사체를 살피고 가축을 해부하는 방식으로 인체의 내부를 유추했다. 4체액설과 해부학을 결합한 그의 이론은 고대 의학의 체계를 완성한다.

이븐 시나
신이 지배한 중세 유럽은 의학의 암흑기였다. 질병이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신의 벌로 여겨지며 갈레노스의 의학도 점차 잊혔다. 갈레노스의 유산은 중동으로 넘어가 꽃을 피웠다. 중세 페르시아의 의사 이븐 시나는 갈레노스의 지식에 자신의 의술을 더해 ‘의학전범’이란 의서를 썼다. 갈레노스의 지식을 기반으로 쓰인 의학전범이 라틴어로 번역돼 다시금 유럽으로 유입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럽에 도래한 흑사병은 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의학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켰다.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면서 의학 수준도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이론이 부정되며 의학은 혁명적 변화를 맞는다.

베살리우스(왼쪽)과 모르가니
르네상스 시대 로마의 베살리우스는 인체를 직접 해부해 ‘인체의 구조’라는 인체해부도 모음집을 남겼다. 그는 인체를 해부하며 갈레노스 이론의 오류들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파두아 대학의 학장을 역임한 모르가니는 히포크라테스를 부정했다. 병의 원인은 4체액의 불균형이 아니라 장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2000년간 이어진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임 박사는 베살리우스가 진행한 해부학이야말로 르네상스 시대 인본주의를 대표한다고 짚었다. 그는 “르네상스 당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주인으로서 대접받았고 이에 따라 사체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도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실제로 베살리우스가 몸담은 파두아 대학은 극장 한가운데에서 시신을 해부해 관람석의 학생들에게 해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등 진일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의학의 두 축, 병리학과 면역학의 정립

모르가니가 모든 병은 장기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한 뒤 후세 학자들은 이를 기초로 이론을 확장해 나갔다. 프랑스의 사비에르 비샤는 모르가니의 이론을 확장해 모든 병은 조직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루돌프 피르호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모든 병은 세포에서 발생한다는 세포학 이론을 내세웠다.

루돌프 피르호.
피르호의 등장으로 현대 의학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바뀐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 세포 검사를 통해 병명을 진단 받고 이에 따라 처방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성립된 것. 현재도 암을 진단하는 방법은 많지만 최종적으로는 암세포를 발견하는 것으로 확정한다. 진단과 처방이라는 병리학의 기본이 피르호를 통해 성립된 셈이다.

의학은 통계학과 만나 병의 감염 경로도 새롭게 규정했다. 1854년 영국 런던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의사 존 스노우는 지도에 환자가 발생한 위치와 발생자 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콜레라 환자들이 대부분 식수원 펌프 근처에 거주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병의 전파 경로가 냄새가 아니라 물이란 사실을 입증했다. 스노우의 발견은 집단 감염 대응에 필요한 ‘예방의학’의 원류가 된다.

에드워드 제너.
한편 비슷한 시기 병리학과 함께 현대 의학의 두 축을 이루는 면역학도 등장한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당시 소의 우두를 경험한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우두농을 사람에게 주입해 약한 우두를 앓게 한 뒤 다시 천연두균을 주입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면역력을 키워 병을 억제하는 ‘백신’의 발견이다.

이후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메치니코프는 신체 내부에서 세균에 저항하는 백혈구와 면역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자연 면역의 개념을 정립했다. 이로써 인류는 질병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진단과 처방, 면역력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확보한다.

너는 누구냐? 바이러스의 등장

하지만 병리학과 면역학 모두 세균을 통해서만 질병이 감염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는 맹점이 있었다. 이 맹점이 드러나게 된 건 모순적으로 세균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파스퇴르 때문이었다.

챔버랜드 필터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선 세균과 접촉한 실험군과 세균과 접촉하지 않은 대조군이 필요했다. 파스퇴르의 조수였던 찰스 챔버랜드는 세균이 통과할 수 없는 용기, ‘챔버랜드 필터’를 개발했다. 대부분의 세균 실험은 챔버랜드 필터를 통해 이뤄졌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도 챔버랜드 필터를 이용해 담뱃잎에서 발생하는 병을 연구했다. 문제는 챔버랜드 필터에 보관했던 대조군에서도 병이 발생했단 점이다. 이바노프스키는 실험을 지속해 1892년 세균보다 작으면서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있다는 점을 공표했다.

네덜란드의 미생물학자 마티너스 바이어링크 또한 이바놉스키와 비슷한 실험을 통해 극미생물의 존재를 입증했다. 그는 이 미생물을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1935년 미국의 생화학자 웬델 메러디스 스탠리는 당시 최신 기술 장치였던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이바놉스키가 예측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연구했다. 실험 끝에 스탠리는 바이러스가 단백질과 리보 핵산(RNA)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혀내 194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

임 박사는 “인류는 거듭된 의학 발달 끝에 병의 원인이 세균과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았고, 병에 걸렸을 때 진단과 처방을 하는 임상의학과 사전에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공공의료의 기틀을 마련했다”면서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의료 시스템은 이 토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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