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금융 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이후 목돈을 쥐고도 어찌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럴 때는 일단 현금을 쥐고 상황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잘 지켜보는 것이 상책.
이렇게 불안해진 사람들의 투자 심리를 유혹하듯, 은행권의 고금리 예금 상품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들 상품은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는 동안 증시로 빠져나가는 뭉칫돈을 거둬들이려고 은행들이 황급히 내놨던 고육지책(苦肉之策) 상품들. 그런데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금융 불안기의 대안 상품으로 뜻밖의 관심을 끌고 있다.
◆‘펀드 환매 부추길라’ 홍보 안하는 은행들
은행들은 표정관리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다. 증시에서 은행으로 돈이 되돌아오는 것은 반색할 만한 일이지만, 드러내놓고 이를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 잘못하면 ‘은행들이 고금리 상품을 미끼로 개미들의 펀드 환매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들썩한 홍보를 자제하고 조용히 이들 고금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이번 주부터 1년 만기 연 5.4%의 금리를 주는 ‘고객사은 특판 예금’을 내놨다. 이 상품은 총 2조원이 모일 때까지만 한정판매한다. 신한은행은 지난 17일 이 상품을 출시한다고 홍보 계획을 세웠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황급히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하나은행이 지난 9일 출시한 ‘고단위플러스 정기예금’은 1년 만기 연 5.5%의 금리를 준다. 10여일 만에 1조1000억원을 유치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수익률이 올라가는 CD연동금리정기예금
은행 대출·예금 금리의 기준이 되는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는 지난 석 달 새 약 0.3%포인트 올랐다. 이에 따라 CD 금리와 연동되는 대출 금리가 올라 주택 담보 대출자들은 울상이지만, CD 금리와 연동되는 예금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은 조금씩 높은 금리의 이득을 보고 있다.
우리은행 오렌지정기예금은 현재 금리가 연 5.35%로(1년 예금 시), 지난해 말과 비교해 0.5%포인트 올랐다. 인터넷으로 가입하면 0.1%포인트의 우대금리가 붙어 최고 5.45%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의 ‘탑스(Tops) CD 연동 정기예금’도 현재 1년 만기 연 5.35%의 금리를 주고 있다. 하나은행의 ‘하나 CD 연동 정기예금’은 1년만기 기준 연 5.4%의 금리를 준다.
◆저축은행 예금과 수시입출금 상품도 ‘고금리’
수익률만 보면 저축은행이 단연 앞서간다. 인천 모아저축은행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6.35%, 인천 에이스저축은행은 300억원 한도 특판정기예금에 1년 만기 기준 연 6.4%의 금리를 준다. 이 밖에 HK저축은행과 경기지역 토마토저축은행도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6.1%에 이른다. 5000만원까지 원리금 보호가 되는 것은 은행 예금과 똑같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정되는 기미를 노려 언제라도 돈을 주식시장에 넣을 준비를 갖추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금리 수시입출금 상품을 이용해 볼 만하다.
현재 은행권에서 주목받는 수시입출금 예금 중 하나가 HSBC의 ‘다이렉트 뱅킹’이다. 지난 6월부터 8월 말까지 3개월간 한시적으로 금리를 연 3.5%에서 연 5%(3000만원까지)로 높여 주는 이벤트를 열면서 막대한 시중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벤트 마감을 10일 앞두고, 앞으로 계속 5% 금리를 주기로 했다. HSBC 정지향 이사는 “계좌 이체 수수료가 무료이므로, 수수료가 붙는 다른 수시 입출금 상품에 비해 보이지 않는 ‘+α’의 수익이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