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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불법 리베이트는 철저하게 감시하되 국민 건강을 위해 부작용 조사는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리베이트 근절과 의약품 안전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약사들 ‘리베이트 도구’로 악용..규제 강화 원인 제공
복지부가 시판 후 조사 제도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제약사들이 이 제도를 리베이트의 도구로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판 후 조사는 제약사가 신제품을 처방하는 의사에게 환자 1명당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처방이 이뤄지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판 후 조사는 의사들의 신제품 처방을 유도하는 이른바 ‘랜딩’ 목적으로 활용됐다.
업계에서는 의료진이 특정 의약품의 처방을 시작하면 최소 1년 정도는 처방을 유지하는 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시판 후 조사를 계기로 자사 의약품의 처방을 유도하면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의사들도 합법적인 시판 후 조사를 대가로 금품을 제공받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 시판 후 조사를 명목으로 한 제약사와 의료진간의 뒷거래는 만연해졌다.
예를 들어 매일 1정씩 한 달 동안 복용하는 500원짜리 의약품의 경우 제약사가 시판 후 조사를 의뢰하고 환자 1명당 5만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의사는 한 달(30일) 동안 총 1만5000원어치 의약품을 처방하고 3배가 넘는 금액을 챙기게 된다. 제약사는 의약품의 부작용을 점검하면서 일정 기간의 처방실적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최근 규제가 강화된 이후 뜸해졌지만 시판 후 조사는 부작용 조사의 목적보다는 랜딩 목적으로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합법적인 리베이트’라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부작용 조사는 적극 장려..리베이트 감시 강화”
전문가들은 리베이트 규제와는 별도로 신약의 부작용 조사는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약사가 충분한 시판 후 조사를 통해 부작용 조사를 취합하면 식약청은 해당 내용을 허가 사항에 반영한다. 발매 이후 추가로 발견된 부작용을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알리면서 안전한 의약품 복용이 이뤄지게 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2007년 최초의 금연치료제 ‘챔픽스’가 등장하자 담배를 끊으려는 흡연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챔픽스의 사용상 주의사항에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금연을 시도한 환자들에서 자살관념, 자살시도 및 자살행위 등의 신경정신과 증상이 보고됐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약물과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상시험에서 나타나지 않은 ‘자살 욕구’ 부작용이 실제 환자들이 복용한 시판 후 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최혁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홍보이사는 “부작용 조사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많은 사례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대가성 여부에 따른 불법 행위는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부작용 조사는 장려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은 강화하되 리베이트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차단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송형곤 의사협회 대변인은 “시판 후 조사의 건수를 제한하면 정상적인 부작용 검증 작업이 위축될 뿐더러 과도한 규제에 따른 희생양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면서 “정당한 판촉 활동과 불법 행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해 정부, 학계, 산업계가 의견을 모아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때다”고 강조했다.
식약처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시판 후 조사의 최소건수 규정을 없애고 제품별로 엄격한 관리하에 부작용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