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모두가 가난하던 1970년대 초. 학교에서 늦은 귀가를 하면 어머니는 ‘멀덕국’을 끓여 저녁을 차려줬다. ‘멀덕국’은 충청도 청양지방에서 쓰던 말로 건더기가 없는 멀건 국을 뜻한다.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그릇이 부딪치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한창 식욕이 왕성한 아들은 행여 고기라도 한 점 있을까 국그릇을 숟가락으로 뒤적이지만 딱히 건져지는 건 없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속으로 막막한 서러움을 삼켜야 했을 것이다. 훗날 시인이 된 아들은 ‘별국’이란 시를 통해 당시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한 뒤 ‘맑은 슬픔’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1986년 ‘동서문학’에 등단한 후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담장을 허물다’ 등을 발표해 온 저자가 등단 30년 만에 낸 첫 산문집이다. 그간 지면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발표한 글을 다시 고치고 다듬어 41편의 산문을 담았다. 표제작인 ‘맑은 슬픔’을 비롯해 ‘아버지의 일생이 담긴 소주병’ 등을 읽으면 문학의 치기나 광기에 휘둘리지 않은 채 성실한 생활인과 시인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담백한 결이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고전과 당대의 글을 읽고 써라’ 등 시인을 지망하는 독자에게 전하는 ‘시작론’도 눈에 띈다. 자신의 실수와 한계까지 솔직하게 적어낸 덕에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