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패션산업을 뒤흔든 록의 시대정신

  • 등록 2018-07-14 오전 7:07:07

    수정 2018-07-14 오전 7:07:07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검은색 라이더 재킷을 입은 장발의 남자. 1980년대 헤비메탈 뮤지션을 떠올리면 저절로 연상되는 이미지다. 이에 비해 1990년대 그런지록 뮤지션들은 ‘떡진’ 단발머리에 체크무늬 남방셔츠로 그려진다.

뮤지션이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과 패션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레이디 가가에 이르기까지 인기 음악인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은 팬들과 공유되면서 유행을 만들었다.

특히 1970년대 펑크록와 1990년대 그런지록은 단순한 패션 유행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 현상이 되면서 관련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1974년 영국에 오픈한 ‘섹스’ 부티크.
펑크 문화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1970년대 초반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는 CBGB라는 라이브 뮤직 클럽이 문을 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스투지스, 뉴욕 돌스, 텔레비전, 패티 스미스 등 실험적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들은 이곳에서 공연을 하며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CBGB는 단지 새로운 음악을 듣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반체제(anti-establishment) 문화의 통로가 됐다. CBGB는 텔레비전의 리처드 헬이 찢어진 티셔츠와 검은색 가죽 재킷, 검은색 모터사이클 부츠, 체인, 그리고 뾰족뾰족 세운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킨 곳이기도 했다. 전형적인 펑크 패션이 이곳에서 탄생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불황으로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난 런던에서도 반체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뉴욕에서 CBGB의 패션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영국인 말콤 맥라렌은 런던으로 건너가 젊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끌어모아 밴드를 구성했다. 조니 로튼, 스티브 존스, 폴 쿡, 글렌 매트록의 섹스 피스톨스가 그들이다.

당시 맥라렌이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1974년에 오픈한 옷가게 ‘SEX’는 섹스 피스톨스의 의상을 전담했다. 오늘날 영국 ‘패션의 대모’라고 불리는 웨스트우드는 맥라렌과의 만남을 통해 주류 문화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태도를 갖게 되고, 이를 표출하는 패션의 힘을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펑크 뮤지션들에 의해 유행이 된 의상은 20년 가까이 록 음악인들의 패션 아이콘이 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적어도 블랙 레더 재킷은 이들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펑크 밴드 라몬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너바나를 위시한 그런지 밴드들은 록 뮤지션들의 패션 코드를 따르지 않았다. 패션 코드 따위가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외모만 보면 노숙자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grunge’라는 단어는 먼지, 때 등을 뜻한다.

그런데 그런지 록이 인기를 끌면서 커트 코베인을 비롯한 뮤지션들이 대충 걸쳐입은 듯한 옷들이 유행을 탔다. 이른바 그런지 룩이다. 물 빠진 청바지와 헐렁한 체크 셔츠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이 느끼는 염세주의와 좌절을 표현한다는 해석이 뒷따랐다.

펑크 패션 확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길거리 패션인 그런지 룩을 하이패션에 처음 소개한 디자이너는 마크 제이콥스였다.

페리엘리스 여성복 디자이너였던 그는 1993년 봄/가을 페리엘리스 컬렉션을 통해 그런지 음악과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넝마주이 패션을 소개했다. 플란넬 체크 셔츠와 큰 사이즈의 스웨터 등을 컨버스 운동화나 닥터마틴 군화와 함께 ‘믹스 앤 매치’했다.

처음엔 평가가 좋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난장판(mess)’이라고 혹평했고, 결과적으로 페리엘리스 여성복 라인은 종말을 고했다. 다만 제이콥스는 그런지 컬렉션을 계기로 1992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협회(CFDA)가 주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고, 그런지 룩은 당시를 대표하는 주요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펑크 패션과 그런지 룩 이전에도 비틀스의 모즈 룩, 데이빗 보위의 글램 룩 등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이었다. 록 음악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며 패션 산업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셈이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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