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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립 이화학연구소가 전자업체 후지쓰와 함께 개발한 슈퍼컴퓨터 ‘후가쿠’가 전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톱500’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미국 ‘서밋’과 ‘시에라’가 각각 2·3위로 그 뒤를 이었고, 중국 슈퍼컴퓨터들이 각각 4·5위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500위권 내 3기만 이름을 올렸다. ‘누리온’이 17위, 기상청의 ‘누리’와 ‘미리’가 각각 138위와 139위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매년 순위가 밀리는 형국이다. 국내 컴퓨팅 분야 전문가들은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들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컴퓨팅 분야에 투자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컴퓨팅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0일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접목하며 슈퍼컴퓨터 생태계도 매년 급변하는 상황”이라며 “현재와 같이 5~6년을 주기로 한 국가 센터 슈퍼컴퓨터 구축으로는 새로운 추세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과는 다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美·中·日 등 슈퍼컴퓨터 투자 지속, 한국은 외산에 의존
일반적으로 슈퍼컴퓨터는 성능 기준 세계 500위 안팎의 고성능 컴퓨터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은 국력을 보여주는 한편, 첨단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동안 슈퍼컴퓨터 개발 경쟁을 벌여왔다.
미국과 중국 역시 차세대 슈퍼컴퓨터 도입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은 국립연구소와 대학을 중심으로 슈퍼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린다. 중국은 자국 기술을 접목해 중간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대량으로 제작, 기업들이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해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한 산업 기반이 약하다. 이뿐 아니라 관련 인력 역시 부족하다는 평가다. 우리 정부가 핵심 부품을 중심으로 국산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슈퍼컴퓨터를 자체 개발할 역량을 보유하지 못해 외산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슈퍼컴퓨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과감한 재정적 투자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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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슈퍼컴 로드맵 착수…양자컴퓨팅 기술 발전도 빠르게 이뤄져
이에 한국은 뒤쳐진 슈퍼컴퓨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 부품 국산화 작업과 함께 로드맵 마련에 나섰다. 여기에 양자컴퓨터와 같은 신기술 개발도 추진 중이다. 오는 2023년쯤 슈퍼컴퓨터 6호기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국가슈퍼컴퓨팅센터가 구축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누리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슈퍼컴퓨터를 선보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테스크포스(TF) 팀을 구성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관련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7월 초까지 로드맵을 기획할 주관 업체를 선정한 후 8개월 동안 10명 이상 참여하는 전문가 위원단을 가동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고성능 컴퓨터 구축과 활용을 위한 로드맵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또 슈퍼컴퓨터 핵심인 중앙처리장치(CPU)를 국산 기술로 개발하는 사업자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슈퍼컴퓨터와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 작업도 병행할 방침이다.
이준구 KAIST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ITRC 센터장은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는 독립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있다”며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풀고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보안에도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자컴퓨터 기술에 대한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슈퍼컴퓨터와 공존할 가능성 역시 커졌다”며 “양자컴퓨터는 빠르면 5년, 길게는 10년 이상 바라봐야 하는 기술로 현재 기초연구개발 단계에 있다. 하지만 보안 등 슈퍼컴퓨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