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귀재를 꿈꾸는가 야성부터 잠재워라

유망한 트레이더의 황당한 투자손실
생물학적 요인서 원인 찾아
수익 커질수록 남성호르몬 분비 증가
자신감 과열…대형매매로 이어져
시장 판단력·리스크 이해도 키워야
…………………………………………
리스크 판단력
존 코츠|414쪽|책읽는수요일
  • 등록 2013-06-05 오전 9:17:24

    수정 2013-06-05 오전 9:17:24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승승장구하던 30대 트레이더 제롬 케르비엘(선물 중개인)이 사고 친 그날은. 2008년 프랑스 2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직원이던 그는 미승인 선물거래로 단숨에 49억유로(약 7조원)의 손실을 낸다.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 기록이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아직 살아있으니 그나마 나은 축에 들지 모른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은행은 잘나가던 트레이더(외환 딜러)의 사고로 한순간에 파산했다. 1995년 베어링스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있던 20대 닉 리슨이 파생금융상품 불법거래로 13억달러(약 1조 4500억원)를 날려버린 것. 은행은 233년 역사를 접으며 단돈 1파운드에 네덜란드 ING그룹으로 매각됐다.

케르비엘과 리슨에겐 공통점이 있다. 사고 친 그날까지 젊은 패기로 연전연승했다는 것. 이성적이고 똑똑하던 이들이 그 시점에서 재앙 수준의 무모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뭔가.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치명적인 금융사고의 원인이 ‘생물학적 요소’에 있다면? 법정에 선 케르비엘은 이렇게 변명한 적이 있다. “쳇바퀴에서 정신을 잃은 햄스터처럼 잠시 현실감각을 잃고 지나친 모험을 감행했다.”

▲시스템 때문 아니다 호르몬 탓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월스트리트 베테랑 트레이더였다. 어느날 문득 그는 상승장과 하락장에서 트레이더들이 보이는 비이성적 행동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신분을 바꾼 건 2004년. 이때부터 금융시장과 인간생리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리스크에 처했을 때 몸이 느끼는 판단력, 뉴로이코노믹스(Neuroeconomics)의 가능성을 타진한 셈이다.

구체적으론 ‘테스토스테론(스테로이드계 남성호르몬)이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력을 밝혀낸 실험’이다. 2005년 그는 금융회사 트레이더 250명을 대상으로 2주간 타액샘플을 체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날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높은 날과 낮은 날의 차이는 1년 기준 100만달러(약 11억원)에 육박했다. 실험에서 그는 리스크를 무릅쓴 행동 뒤엔 생물학적 요인이 있음을 확신했다. 이른바 ‘승자효과’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고 쓸데없이 영토를 차지하려 들고 천적의 세계에 겁도 없이 침범한다. 바로 이것이 금융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잉태한 주범이었다.

저자의 목적엔 사람을 이성적 경제기계로 보는 시각이 실패했단 진단이 들어 있다. 호모이코노미쿠스가 허상에 불과한 걸 생물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흔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탐욕’이니 ‘이성적 분석오류’니 하는 관점에도 반한다. 분명 ‘흥분’을 야기하는 화학물질이 있으며 그것이 테스토스테론이란 거다.

▲“회사는 성과 좋은 직원 때문에 망한다”

승자효과 패턴대로 트레이더는 수익을 올릴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증가한다. 늘어난 수치는 자신감과 리스크를 향한 갈망에 불을 지펴 더 규모가 큰 매매에 나서게 한다. 유망한 트레이더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 되는 건 이때부터다. 갈수록 ‘업’된 트레이더가 위험한 포지션을 매매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설사 수익이 떨어진다고 해도 트레이더, 경영진 모두 딱히 신경쓰지 않는 단계. 회사가 성과 좋은 직원으로 인해 몰락을 맞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가. 저자는 먼저 펀드매니저·은행관계자들이 리스크를 향해 덤벼드는 트레이더의 몸을 관리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간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정책은 시장을 성공적으로 안정시키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납게 날뛰는 몸을 길들이질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리스크 관리자는 극단적 상황에서 트레이더가 빠질 수 있는 병적 상태를 염두에 두란 거다. 호르몬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알리고, 트레이더 행동을 관찰하라고 했다. 수치에만 의존해선 위기를 제대로 예측·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거다.

▲시장의 생물학적 성격 바꿔야

또 다른 방법은 ‘야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비교치로 금융시장 내 ‘젊은 남성’ 대 ‘나이든 남성과 여성’을 들었다. 우선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등 전설적인 투자자 대부분이 나이가 든 뒤 성공했단 점에 주시했다. 테스토스테론이 떨어지는 시기다. 또 여성은 태생적으로 남성의 10~20% 정도만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한다. 승자효과에 덜 취약하단 얘기다.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왜 금융계 여성비율은 5%에 불과한가다. 저자는 이를 남성이 트레이딩 플로어를 지배한 까닭으로 대신 설명한다. 여기서 이뤄지는 거래가 거의 단타 매매라는 것. 남성은 이런 종류의 빠른 의사결정과 매매의 신체접촉을 즐긴다는 거다.

하지만 이도 이젠 한계다. 빠른 결정은 컴퓨터가 하면 된다. 미래의 트레이더가 지녀야 하는 유일한 자질은 시장에 대한 판단력과 리스크에 대한 이해뿐이다. 그러니 여성과 중년 남성의 수를 늘려 금융시장의 생물학적 성격을 바꾸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들이 나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팽배한 젊은 남성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쪽 중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르다’는 것이 전부다. 다양성의 폭이 늘어날수록 시장은 안정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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