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좌천 인사…檢 정치중립성 확보 `공수표` 될라

검찰인사 마무리 이틀만에 검사 21명 줄사표
`환경부 블랙리스트` 現정부 겨냥 검사 좌천
`우병우 사단` 솎아내자 `윤석열 사단` 메꿔
통합진보당·종북콘서트 논란…공안검사 몰락
  • 등록 2019-08-03 오전 9:46:15

    수정 2019-08-03 오전 9:46:15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양복 상의를 벗어 흔들며 “무엇이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어디서 흔드는 겁니까? 옷(검찰) 말고 흔드는 손(정치권력)을 봐야 합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지난 5월16일 대검찰청 기자간담회)

“검찰에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은 법집행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실천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윤석열 현 검찰총장, 지난달 25일 취임식)

고검 검사급(차장·부장검사) 검찰 중간간부 인사 이틀 만인 2일 법무부는 검사 21명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고 의원면직 처리했다. 줄줄이 의원면직 처리된 21명의 검사 명단 중엔 권순철(50·25기)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와 주진우(44·31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 검사가 눈에 띤다. 두 사람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을 기소했다. 권 차장은 서울고검 검사로, 주 부장은 안동지청장으로 각각 발령났지만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주 부장은 이번 인사에 강도 높은 비판이 담긴 사직의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올렸다. 주 부장은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며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했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들의 상관이던 한찬식(51·21기)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59·23기) 검찰총장 취임을 이틀 앞두고 사의를 밝힌 바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날 한웅재(49·28기) 경주지청장 역시 사퇴했다. 한 지청장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을 전담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 근무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최순실 씨 등이 검찰에 고발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했다. 이후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2017년 국정농단 수사를 이어갔다. 한 지청장은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그는 이프로스를 통해 “점점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가려내고 법을 집행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사건 수사와 재판을 하면서 또 이런 저런 간접적으로 사람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고 지금 좋아 보이는 자리·권력·재물이 계속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소회를 적었다.

같은 날 사표를 낸 이선봉(53·27기) 군산지청장은 지난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비리 사건 수사에 참여해 우병우 당시 대검찰청 중수1과장이 노 전 대통령을 신문할 때 배석했다. 이때 입회했던 노 전 대통령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이다.

전 정권에서 이른바 `우병우 사단`이 문제가 됐다면 이번 정부에선 소위 `윤석열 사단`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인사가 발표됐을 때도 한바탕 태풍이 불었다. 이즈음 검찰에서는 23명이 사표를 던졌다. 법무부는 검사장 승진 대상을 사법연수원 27기까지 대폭 낮췄는데 이번 검사장 진급 막내 기수인 27기에선 2명의 검사장 승진자가 나왔다. 한동훈(46·27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승진과 동시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이원석(50·27기) 해외불법재산환수 정부합동조사단장이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각각 발령났다. 모두 윤 총장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등 적폐 수사를 함께 했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안검사 몰락 또한 두드러진다. 지난달 28일 사의를 표명한 김광수(51·25기) 부산지검 1차장검사는 대표적 공안 검사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당시 노무현 정부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직접 조사했다. 그 이튿날 사표를 던진 최태원(49·25기) 서울고검 송무부장은 2013~2015년 수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내란음모·내란선동 사건을 수사했다.

김병현(54·25기) 서울고검 검사는 지난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 중 마지막 남은 인물이었다. 당시 울산지검 검사였던 그는 강금실 법무장관을 향해 “검찰이 바라는 것은 검찰을 통제하는 장관이 아니고 검찰을 위해서 외풍을 막아주고 정치인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장관”이라고 했다. 김 검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으로 있을 때 종북콘서트 논란을 일으킨 재미동포 신은미 씨를 조사해 강제 출국시켰다.

내 사람 심기는 여전하고 정부·여당 목소리에 반하는 인물에 대해선 좌천 인사가 단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살아있는 권력도 제대로 수사해 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가 공수표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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