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원점으로 회귀한 생보사 상장

  • 등록 2000-08-23 오후 12:04:53

    수정 2000-08-23 오후 12:04:53

금감위원장에게 생보상장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금융-기업구조조정을 누구보다 잘 처리한 이헌재 초대 금감위원장이 임기중 최대 구설에 휘말린 것이 바로 이 생보사 상장문제였다. 지난해 6월30일.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삼성생명과 교보가 기업공개(상장)를 요청해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혀 생보상장 논쟁의 첫 포문을 열었다. 이에대해 당시 여론은 정부가 삼성자동차 처리를 위해 삼성가(家)에 엄청난 특혜를 안겨주는 생보상장과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을 너무 손쉽게 맞바꿔 버렸다며 연일 집중포화를 퍼부어댔다. 금감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생보상장과 삼성차 처리는 연관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청와대까지 불러가는 등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일부 금감위 직원들은 생보사 상장문제를 "이헌재 최대의 말 실수"로 기억하고 있다. 이같은 쓰라린 기억때문에 금감위는 그동안 상장에 따른 이익중 상당수는 계약자의 몫으로, 그것도 원칙적인 배분방식은 주식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이같은 입장은 이용근 위원장때도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시민단체나 계약자들도 이같은 약속에 상당한 기대를 해 온 것이 여태까지의 상황이었고, 당초 약속한 연내 생보상장을 위해 8월말까지는 정부안이 나오기로 돼 있었다. 이헌재 위원장의 발언이 있은지 약 1년2개월후인 7월 22일 오후.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허겁지겁 금감위 기자실로 내려왔다. 이날 석간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에 대해 급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석간은 "자산재평가 적립금 등 계약자 몫을 나눠주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고 법률적으로 줄 방법도 없다"는 발언을 인용, 생보사 상장이익 배분방식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썼다. 그동안의 논의과정을 볼 때 이같은 발언은 계약자에게 주식을 줄 수 없다는 생보사 논리에 손을 들어준 것처럼 비쳐졌다. 이 위원장은 생보상장에 따른 법과 근거의 문제를 거론하며 인터뷰에서 말한 것은 예로 들어 말한 것이라고 일단 해명했다. 하지만 기존의 논의는 법과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정해진 법과 근거에 따라 상장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안 확정을 1주일여 앞두고 10년을 넘게 끌어온 생보사 상장문제가, 그것도 공청회와 외부용역을 거쳐 거의 마무리가 돼야 할 시점에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반응은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 주식을 나눠주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해왔던 생보사들은 금감위의 입장변화를 반겼고 시민단체와 계약자측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금감위원장의 발언은 원칙적으로 틀린 것이 없다. 현행법상 재평가차익은 손실보전이나 자본전입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이를 계약자에게 배분하려면 기존 주주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동의를 받더라도 이는 증여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전임 금감위원장들과 상장 실무를 전담한 금감원 부원장보, 보험감독국장이 이같은 법과 원칙을 몰라서 상장이득을 계약자 몫으로 배분하는 상장안을 마련키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종전까지 금감위의 분위기는 생보사 상장이 안되면 상호회사로 전환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계약자 몫을 배분해줘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득력을 갖고 있었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삼성생명과 교보가 현재와 같은 덩치와 자산가치를 갖게 된데는 분명 보험계약자들의 공이 절대적이었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계약자 몫을 배제할 경우 별로 기여한 바도 없는 삼성가(家)의 기존주주들만 엄청난 이익을 독식하게 되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금감위는 이를 감안, 모양을 갖추기 위해 지난해 학회와 민간연구원 등이 주최하는 4차례의 공청회와 생보사상장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 재평가차익을 자본전입하면서 계약자에게 주식을 배분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고 주식배분율을 차별화해 2가지 안을 마련했었다. 이에 대해 신임 금감위원장은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보니까 충분한 법률적 검토없이 논의된 것이 많았고 따라서 이번에는 명확한 법과 근거에 따라 최종방안을 확정하겠다"면서 "작업이 늦어지면 아주 늦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삼성이 내놓지 않겠다는 것을 뺏을 수는 없다고 말했듯 법과 근거를 어겨가면서 상장문제를 빨리 결정하라고 촉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보사 상장문제는 정부가 지난 90년 주식시장 침체를 이유로 1차 보류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삼성의 사재출연 발표시기에 때맞춰 상장방침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는 점등에 비추어 언젠가는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임에는 틀림없다. "생보사 상장 전면 재검토"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신임 금감위원장이 생보사 상장문제를 "미뤄조지기"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삼성,교보와 1400만 계약자, 그리고 이들의 대주주와 시민단체, 학계 등의 이견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대안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금감위의 법과 근거에 따른 전면 재검토 방침이 뜨거운 감자를 가급적 피해가겠다는 빌미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생보사 상장문제를 지켜보는 대다수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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