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Cafe)누가 진정 코스모폴리탄인가

  • 등록 2005-11-11 오후 12:15:28

    수정 2005-11-11 오후 12:15:28

[이데일리 김대환 칼럼니스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 사이에 국경을 정하는 협상이 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양측이 국경을 합의했는데, 집 한 채가 여전히 문제가 됐다. 새로운 국경선이 집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협상 담당자들은 집 주인을 찾아가서 물었다.

“당신은 폴란드에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소련에 살고 싶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국경이 정해질 것입니다.”

집 주인은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협상 담당자들은 이에 동의했다. 하루가 지난 후 협상 담당자들은 다시 이 집 주인을 찾아갔다. 이에 집 주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저는 폴란드에 살기로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소련은 겨울에 춥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냥 우스개 소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폴란드인의 반러시아 감정을 엿 볼수 있게 해 주는 우스개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면, 시내 한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다. 바르샤바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황색의 이 건물은 크기도 크지만 왠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풍기며 관광객들의 이목을 끈다. 중세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세 건축 양식은 아니다.

모스크바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건물이 모스크바 대학본부 건물, 그리고 `미드`라고 불리는 구소련의 외교부 건물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실제로 바르샤바의 건물은 소련 정부가 모스크바에 있는 건물들을 본 따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바르샤바에서는 이 건물을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고 한다. 어쩌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심정이었을까? 결국은 예산상의 문제로 건물철거는 없었던 일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폴란드에 대한 감정이 좋기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러시아에서는 올해부터 볼세비키 혁명기념일 11월7일을 국경일에서 제외시키고 대신 러시아가 폴란드 짜르의 점령에서 벋어난 것을 기념, 11월4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러시아 내에서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던 17세기 초, 폴란드의 짜르 라디스라우스가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이에 맞서 평민 출신의 꾸즈마 미닌이 저항군을 조직하였고 왕족인 드미뜨리 빠자르스끼와 세를 합쳐 폴란드 군을 러시아에서 몰아냈다.

이 일로 미닌과 빠자르스끼는 러시아 민족의 영웅이 됐다. 러시아의 새 국경일은 이들을 기리는 날이고,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도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후 소련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칼리닌그라드를 러시아에 합병시켰다. 칼리닌그라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속했던 것도 아니고, 러시아와 국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독일에 속해 있던 도시이지만,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에 속했어야 할 도시다.

올 여름에는 바르샤바에서 러시아 외교관 자녀들이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고, 이 일이 알려지자마자 모스크바에서는 폴란드 외교관에 대한 보복 폭행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시아건, 동유럽이건, 이웃나라하고 사이좋게 지내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일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는 거나, 일중 관계가 복잡하게 되는 것도 별로 유별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멕시코 사람들이 별 호감을 못 갖는 거나,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을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 류의 현상이 아닐까?

국가간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때일수록 국제주의자 혹은 코스모폴리탄의 존재가 부각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민족감정으로 칼날을 세우고 있을 때 이 같은 간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이 아닐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친다. 그런데 폴란드와 러시아의 관계만 놓고 보면, 공산주의가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한듯 하다.

사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외침은 역설적으로 자본의 국제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윤 추구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수익률 추구에 있어 자본은 민족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고, 역사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같은 무조건적 국제주의에는 부정적 면이 분명 있지만, 때로는 긍적적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야 어쨌든 일본 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가장 반대했던 그룹은 일본의 자본가들이라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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