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 칼럼)불안, 혼돈, 그리고 호들갑

  • 등록 2001-09-21 오전 10:22:05

    수정 2001-09-21 오전 10:22:05

[edaily] 미국의 심장부가 가미가제식 테러 공격을 받은 후 전운(戰雲)이 감도는 가운데에 혼돈스럽던 한 주간이 지나갔습니다. 누가 무엇을 노리고 벌인 만행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곧 전쟁이 벌어진다."는 막연한 얘기만 오갈 뿐, 누가 누구를 왜 죽이고 어디를 공격해야 할 지도 애매모호한 기가 막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그 시장을 컨트롤 해 나가야 할 정부당국은 솔직히 지난 한 주간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분단국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며 오로지 수출 하나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테러사건" 이후 보여 준 행태는 뒷맛이 씁쓸합니다. 그야말로 혼돈스럽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호들갑.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그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투기세력 포함)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테러사건 발생 다음날(9월12일 수요일) 개장을 세시간이나 늦춰 가며 열린 증시에서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2.02%(64.97포인트)나 폭락하여 세계 최고의 주가하락률을 기록하였다. 물론 바로 다음날 4.97%에 달하는 급등세를 보이면서 세계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도 빠뜨리면 섭섭해진다.(언제부턴가 우리는 아시아권 최고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라야 양에 차는 것이다) 증시에 비하면 듬직한(?) 모습을 보인 외환시장이라 할 수 있겠지만 국제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움직임과는 동떨어진 달러 매수열기를 한 사흘 내뿜나 싶던 원/달러 시장은 1300원대에 버티고 있는 매물벽과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모처의 모종의 시그널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편안한(?) 박스권 거래로 회귀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용을 써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진땀을 흘리던 손오공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IMF 외환위기 직전의 37억달러 남짓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연말 달러표시 국민소득을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숫자로 만들겠다고 달러매도개입을 단행하다 결국 뚜껑이 열리는 장세를 만들었던 그 때 그 시절의 외환당국에 비하면 요즘은 아주 세련되고(?) 강력해졌다. 1천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는 확실히 아무나 덤벼들기에는 부담스러운 막강한 화력이다) 테러발생 직후인 9월12일 아침에는 국제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급락세를 반영하여 전일 종가대비 13원 넘게 환율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우리 원화도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의 통화인 척 하였으나, 정유사를 비롯한 달러수요가 있는 기업체들의 불안심리에 따른 매수세, 그리고 최근 서울 원/달러 시장을 강하게 주도하고 있는 롱마인드(달러상승 기대심리) 강한 딜러들의 "끌어올리기"가 먹혀 들면서 지난 월요일 일중 고점 1300.50원을 찍기까지 원/달러 환율은 엔/달러 환율의 하락세는 애써 외면하는 "따로국밥 장세"를 연출하며 원/엔 환율을 100엔당 1100원대로 끌어 올렸다. 9월10일부터 18일까지의 영업일 기준 7일 동안 스위스 프랑(5.6%), 유로화(3.2%), 엔화(3.2%) 등이 달러대비 강세를 보였고 심지어 태국 바트화(1.2%), 싱가포르 달러화(0.9%), 대만달러(0.2%) 등의 아시아권 통화마저 절상을 기록하는 동안 우리 원화는 0.5%의 절하율을 기록하여 인도네시아 루피아화(-5.1%), 브라질 레알화(-3.7%), 인도 루피아화(-1.3%), 필리핀 페소화(-0.5%) 등과 같은 줄에 서게 되었다. 무늬만 OECD 국가였지 아직도 개도국의 반열에 서 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있음이 환율 움직임에서 확인된 셈이다. ◇불안 지난 한 주간의 환율 움직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중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달러보유심리"는 여간 강한 것이 아님이 재차 확인되었다. 국제외환시장에서는 테러사건 이후 미국 경기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달러 매도세가 강하게 일어나는 와중에도 서울에서는 "전쟁 = 달러강세"라는 해묵은 공식과 향후 유가급등과 수출부진에 따른 국내경기의 침체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논리로 달러 매수세가 일고 매도세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엔/달러 환율만 약간의 상승세를 보여 주었더라면 1320원 정도까지도 치달을 기세였으나, 일본의 연일 계속되는 구두개입 및 실제 개입에도 불구하고 118엔 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엔화 환율과(엔/달러의 경우 이제는 118.50~60 레벨은 아주 강력한 저항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레벨을 딛고 올라서야 달러 상승세에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지금은 일본 당국의 결사적인 방어로 116엔대 진입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 보면 되겠다) 예상 외로 선방하는 모습을 보이는 뉴욕증시 및 세계증시의 움직임에 서울의 롱플레이어들도 일단 1300원 근처에서는 선뜻 달러매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왜 서울에서는 이토록 달러가 인기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않는 것도 아니다. 97년 말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800~900원대의 환율이 1900원대까지 치솟는 것을 경험했고 작년 말부터 금년 4월까지 이루어졌던 환율 급등세에 두 번 놀란 가슴들이니 달러를 보유하고 업체들로서는 웬만해서는 그 물량을 내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원화가 급히 쓰일 데도 없는 시절이고 필요하면 싼 이자 물고 끌어다 쓸 돈이 은행마다 넘치는데 언제 환율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달러는 꼭 끌어안고 있어야 할 "돈 되는 놈"이다. 거기에다 지난 5월 하순부터의 장세에서 확인되었듯이 지금 당장은 1280원 아래는 누군가가(?) 막아 줄 것 같은데 달러 사야 할 사람이 초조하고 급하지 달러 들고있는 입장에서 서두를 건 없다는 논리다. 만약 달러화의 약세기조가 세계적으로 굳어지면서 철썩같이 믿고 있는 1280원이 무너지고 원화강세가 재현된다 하더라도 그 때는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다 그러한 환율급락에 따라 망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인즉 함께 묻어서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지만 괜히 잘난 척 앞서 내다 팔았다가 환율이 튀어 오르기라도 하면 병신소리 듣기 좋은 상황이 아닌가? ◇혼돈 거래하기가 참 힘들어졌다. 엔화환율만 쳐다보든지 증시만 보든지, 하다못해 차트라도 제대로 맞아 주든지 해야 하는데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인 지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체면이 많이 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국방부 건물에 비행기가 떨어질 때까지 멍청하게 앉아 있었던 미국의 대안으로(이 대목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유럽지역으로의 자금이동이 예상되면서 유로화나 스위스 프랑, 영국 파운드화 등이 강세를 띠고 있다. 일본 엔화도 지난 주 강력한 지지선이었던 118.50이 무너지면서 117엔조차 일본 재무성의 개입이 아니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환시의 움직임만 따라 가기에는 국내외 증시의 움직임과 피부로 느끼는 경제 펀더멘털이 여전히 춥다. 그래서 서울의 환율은 강한 하방경직성을 보이고 있는 중이며 아래가 여의치 않아 위를 시도하자니 세계적인 달러약세 현상이 마음에 걸리고 거기에다 더욱 강력한 걸림돌은 당국의 타이트한 환율관리다. 웬만한 시장참여자들은 눈치채고 있겠지만, 지금 외환당국의 입장은 "해외 변수가 급변하지 않는 한 1280~1300원 안에서 놀아라."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경기침체 속에 환율마저 하락하여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면 곤란하다는 것이 환율하락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인 듯 하고(이 부분은 차후에 상세히 한 번 다루도록 하겠다), 환율이 급등하여 물가에 불안을 주거나 증시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환율급등 또한 불가하다는 이유이다. 지금까지는 당국의 의도에 순응하여 1280원 근처에서는 매수, 1300원 근처에서는 매도를 하는 자들이 승리하는 게임이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한 거래패턴이 높은 수익률을 올려 줄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 증시가 다시 열린 이후로 국제외환시장의 분위기는 뉴욕증시 상승은 달러강세, 뉴욕증시 하락은 달러약세라는 추세를 형성 하고 있다. 이 또한 서울의 원/달러 거래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달러가 엔화 대비 강세를 보이면 달러 사자에 달려들어야 할 것 같은데 뉴욕증시가 오르면 우리 증시도 오르면서 외국인들의 투자자금까지 유입되기에 함부로 사자고 덤비기도 어려워진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기에도, 그렇다고 테러사건을 없었던 일로 돌리기에도 마땅찮은 상태에서 향후 미국의 대응과 그에 따른 달러화의 움직임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가장 거래하기 쉬운 경우의 수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뉴욕증시가 오르는 와중에 엔/달러 환율이 추가하락 한다면 원/달러도 빠져야 된다. 반면 뉴욕증시가 무너지면서 달러는 엔화나 유로화 대비 강세를 보일 수 있다면 앞뒤 잴 것 없이 달러매수에 나서면 된다. 그러나 이런 조합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 우리를 혼돈스럽게 만든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지금까지 롱플레이어들은 버티면 본전은 할 수 있었다. 반면, 이것저것 아는 것 다 꿰 맞추어 가며 환율이 떨어질 만 하다 싶어 매도했던 세력들은 번번이 다쳤다. 복싱 경기에 비유하자면 숏과 롱 둘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레프리가 둘을 떼 놓을 때 마다 꼭 숏의 뒷통수를 때려대는 격이다. 그래서 차트도 이상해지고 딜러들은 환율이 조금만 빠졌다 싶으면 비드(Bid : 매입) 주문을 갖다 대는 습관(?)이 생겼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시장의 자생력(自生力)이나 내성(耐性)은 갈수록 약화되고 시장참여자들의 비굴한 눈치보기 기술만 더욱 단련되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매수 헤지(Hedge)만 있고 매도 헤지는 없는 시장...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환율이 가 줘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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