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친구분들이 하나, 둘 할머니 옆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구례 5일장 서던 날이었다. 5일장이 설 때마다 만나니까 닷새마다 모이는 반가운 친구들이다. 할머니들은 서넛씩 모여 앉아 손님을 부르고 나물을 판다. 매달 3과 8로 끝나는 날 서는 구례 5일장은 옛날부터 규모가 크기로 이름 높았다. 바구니처럼 폭 패인 분지로 경남 하동과 전남 순천, 곡성, 구례 사람과 물건이 몰렸다.
구례장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원과 화엄사 방향으로 난 19번 국도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국도변 5500여평 장터에는 일반 상가가 아닌, 조선시대 한양에 있었을 법한 장옥(場屋)이 200여채 들어서 있다. 구례군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낡은 장옥을 헐고 말끔하게 새로 지어 올렸다. 장사하기 편하라고 벽은 두르지 않았지만 네 기둥 위에 기와지붕은 번듯하다.
그 요란한 시장 통에서 요즘 제일 돋보이는 것은 단연 봄나물이다. 봄이 만개한 구례에는 지금 보드라운 햇나물이 한창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캔 산나물, 그리고 들에서 키운 들나물이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하다. 쑥부쟁이, 돌미나리, 미나리, 부추, 엄개나물, 돌나물, 도라지, 두릅, 쑥, 고사리, 취나물. 구산리서 온 할머니와 그 친구들이 가져온 봄나물만 12가지를 헤아렸다. 여기에 말려뒀던 호박이며 시래기 등 묵은 나물까지 합치면 스무 여가지가 넘는다. 신선한 봄 냄새가 말할 수 없이 짙다.
투덜대던 할머니가 나물을 종류대로 한 줌씩 봉지에 담아 서울 깍쟁이에게 건넸다. 저울에 달아 파는 야박한 모습은 5일장에서 찾기 어렵다. 눈 대중으로 넉넉하게 판다. 덤도 듬뿍듬뿍 준다. 한 바구니에 얼마, 검정 비닐봉지 하나 가득 담아서 얼마 하는 식이다. 할머니는 “떨이 했다”면서 1000원어치보다 훨씬 많은 나물을 봉지에 담아줬다. 가져온 나물은 모두 팔아 치웠으니, 할아버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바구니 포개는 손에 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