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8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겸재 정선 전시회>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호방(豪放)>이었다. 이 작품은 겸재가 사공도의 시론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공도 시품첩> 중의 한 작품이다.
‘시품’은 시를 쓸 때 갖춰져야 할 품격을 스물네 가지로 요약한 글이다. 정선은 시품의 각항마다 그에 상응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 화첩은 문학과 그림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독특한 예다.
또한 정선이 74세 되던 해인 1749년에 그린, 제작연도가 표기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호방(豪放)’은 작은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의기와 거리낌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호방>은 정선 70대의 활달하면서도 호방한 필치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럼 사공도의 시품에 나오는 시(詩) “호방”은 어떤 내용일까.
“호방”
꽃을 구경하는 것 막지 않으면서
온 누리를 삼켰다 토했다 한다.
도리에 따라 호연지기로 돌아가니
처신을 과격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천상의 바람이 물결치는 듯하고
참된 힘 가득 차 있고
만상은 곁에 있다.
앞으로는 세 천체 부르고
뒤로는 봉황새 끌어온다.
새벽에 여섯 마리 큰 바다 거북 채찍질하여
부상에서 발 씻는다.
정선의 작품 <호방>에서는 시의 내용에서와 같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인물을 표현하기는 하였으나, 꽃이나 봉황새 등 시 속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동식물의 묘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호방함”의 이미지를 담았다. 파도가 이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발을 담그고 앉은 인물은 그 어떤 것에도 걸릴 것이 없는 “호방함”의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겸재의 <비로봉도>와 <여산폭포도>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두 작품은 겸재의 수직준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수직준은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 내린 기법으로 정선이 창안한 것이다.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금강산 내외경의 뾰족한 바위산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하였다.
<비로봉도>는 비로봉이 뭉게구름처럼 하늘로 오르고 아래쪽에 위치한 암봉들은 비로봉의 기세를 받쳐주는 듯 도열해 있다.
비로봉의 부드러운 피마준과 암봉들의 칼날 같은 수직준을 대조시켜 극적인 효과를 준다. 피마준은 마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선을 반복하여 그린 것으로 , 바위 없는 산을 그릴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겸재 정선 전시회에서는 겸재가 36세 때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 13폭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정선이 마흔 한 살에 그린 초기작으로, 당시 잔치 장면을 담은 기록화 <북원수회도첩>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이수미 박사는 “정선의 초기작이 많이 나와 뜻있는 전시다”고 평가하고, “이번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겸재 작품의 유형별 전시에 그쳤지만, 앞으로 간송미술관과 리움 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세 기관에 흩어져 있는 겸재 작품을 한데 모아 연대기별로 전시해보려는 의욕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1925년 독일인 신부 베버에 의해 독일에 건너가 성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다가 2006년에 반환된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도 10월 13일부터 전시된다.
전시기간: 9.8-11.22
전시장소: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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