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랍보다 무서운 `월가의 봄`

  • 등록 2011-10-07 오전 10:46:26

    수정 2011-10-07 오전 11:59:15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한국인에게 시위만큼 익숙한 장면은 없다. 어릴 적부터 봄만 되면 유난히 자주 맡았던 매캐한 최루탄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화염병 투척에서 평화로운 촛불시위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시위 문화는 우리의 삶 속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이 있으니 바로 요즘 미국 월가에서 벌어지는 시위다. 이미 전 세계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동 민주화 사태인 `아랍의 봄`은 물론 최근 고강도 긴축에 분노한 유럽 국가의 시위, 영국 런던에서 벌어졌던 폭동 사태까지 모두 경제 부진으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분출된 영향이 크다.

이런 와중에 나온 월가 맨해튼의 시위는 유독 눈에 띈다. 처음엔 다소 장난처럼 시작된 시위는 3주째 이어지며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처음엔 시위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던 시위자들은 복귀하지 않고 진을 치기 시작했다. 이젠 뉴욕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로 꼽히는 미국 보건의료노조(NHWU) 등이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또다른 전기를 맞는 양상이다.

시위 참가자들도 인터넷을 보고 모여 든 청년층에서 더 나아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싱글파파부터 피자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님까지 다양해졌다. 난생 처음 시위에 참가하거나 번듯한 직장이 있는데도 결근을 불사하고 시위에 참석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연방준비제도(Fed)의 부양책이 미국 일반인들에게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분노하고, 주변 가족들의 집이 차압 당하는 걸 보면서 지원책이 잘못됐다고 맹비난한다.

결국 뜯어보면 목적과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최근 막대한 재정적자와 부채 감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 부진한 경제 지표만으로도 미국인들이 분노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위기에 대체로 순응하며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던 미국인들마저 들고 있어났다는 점이다. 9.11 테러 당시에도 숙연한 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로 똘똘 뭉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그만큼 미국인들의 분노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던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의 상황은 비단 한국에서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치솟는 전세값에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며 부쩍 높아진 먹거리나 기름값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겪고 있는 공통의 고충이다.

한국에서도 등록금 시위가 아직 열리고 있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응도 격화되고 있다. 그만큼 세계 경제위기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달 26일 열리는 서울 시장 재보선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권에 월가의 낯선 봄이 반면교사가 되길 바라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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